설교영상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나라 (1)

믿음찬교회 0 16 04.16 15:54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나라 (1)
막 5:21~43
2024.04.12.

마가는 오늘 본문을 마치 샌드위치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이로의 딸, 혈루증 여인, 야이로의 딸... 이렇게 글을 마치 샌드위치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글을 이렇게 쓰는 이유는 이 2개의 사건을 묶어서 하나의 주제로 말씀하기 위해서입니다.
혈루증 여인은 병으로 고통받고 있고, 야이로의 딸은 병을 앓다가 죽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건은 같은 주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혈루증 여인은 치유를 받고, 야이로의 딸은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오늘 본문을 통해 질병과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합니다.
앞서 하나님의 나라는 자연 만물 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악의 세력 위에 있었습니다. 이제 마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인간의 질병과 죽음 위에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자 합니다.

인간의 병이나 고통이나 그 본질은 죽음입니다. 그리고 죽음은 인간 최대의 문제입니다. 냉정히 말해서, 인간은 한마디로 죽음에로의 존재입니다.
일전에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많이들 보셨죠? 누구의 인생이나 인생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는 것을 말하는 감동적인 드라마였습니다.
네, 우리는 눈이 부시게 살고 있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드라마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운 인생을 죽음 안에서 말하였습니다. 인간은 눈이 부시게 살고 있고 눈이 부시게 죽고 있습니다.

여기 병으로 고통받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야이로의 딸입니다. 그 사랑하는 아이는 지금 집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무명의 혈루증 여인입니다. 그녀는 열두 해를 그 병으로 앓아 왔고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절망적인 상태에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죽음 앞에 무기력한 인간 전형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러나 절박한 이 두 사람을 구원할 구원자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은 죽음의 짙은 그늘 아래 안타깝게 놓여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성령 안에서 깊이 읽는다면, 이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야이로의 딸도 너의 모습이고, 절망적인 혈루증 여인도 너의 모습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죽음을 아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인간은 죽음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의 문제를 스스로 아는 고귀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 답을 모른다는 비극적인 존재입니다.
어느 날 하루 저는 어렴풋이 알고 따라부르던 어떤 노래의 가사가 궁금해진 적이 있었습니다. ‘혜화동’이라는 노래입니다.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제가 이 노래를 듣다가 문득 그 내용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살펴보았더니 이 노래가 반복하는 중요한 가사가 있었습니다. 5번이나 반복되는 그 가사는 바로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였습니다.
이 노래는 우리 인생의 안타까움을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것은 단지 우리 인생의 안타까움 정도가 아니라, 사실 그것이 바로 죽음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어렵게 말하지 않고 현실 그대로 말한다면, 잊어버리는 것 그리고 잊혀지게 되는 것... 그것이 죽음입니다. 죽는다는 것이 죽음이 아니죠. 죽는다는 것은 과정이지, 죽음의 의미가 아닙니다.
죽음은 인간의 기억이 아무것도 남지 않고, 그래서 그런 기억마저 영원히 없어지는 것입니다. 죽음은 무이고 무의미이죠. 그래서 죽음은 무섭고 슬픕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우리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귀한 이유는 여기에 인간의 근본 문제에 대한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그 여인의 혈루 근원을 즉시 마르게 하셨습니다. 죽음이 멈추어진 것입니다. 여인은 자신의 인생의 문제가 한 번에 완전히 해결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 여인만이 경험한 전율이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회당장의 집에 가시어 그 소녀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 쿰” 여기서 ‘달리다’는 ‘소녀야’ 라는 말이고, ‘쿰’은 ‘일어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소녀는 잠을 깨듯이 즉시 일어났습니다.
이번에 놀란 것은 거기 있던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이의 죽음을 알고 있던 그들은 살아난 아이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렇게 죽어가던 여인과 죽은 아이... 이 두 사람에 대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병과 고통과 죽음을 이기고 존재함을 놀랍게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을 구원하고, 인간 최대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와 같은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죽음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모든 근본적인 문제 위에 존재한다는 놀라운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인격도 있고 자유의지도 있고 힘과 지혜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때론 살면서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여러분 삶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각자 다양할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적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것이 제 삶의 근본 문제였습니다.
백내장, 포도막염, 합병증... 그런 병들이 제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생겼습니다. 다행히 몇 번의 수술 끝에 병은 치료가 되었지만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햇빛을 보면 눈을 찡그리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저는 그것이 제 인생에 어떤 의미가 될지 잘 몰랐습니다.
수술받기 전 병원은 저의 놀이터였습니다. 열심히 휠체어를 타고 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내렸습니다. 혼자 엘리베이터에 손이 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수술 후 제가 학교를 다니고 점점 성장할수록,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저의 모습은 제가 바라보기 싫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저는 눈을 위해 기도도 해보았지만, 하나님이 제 눈을 고쳐주셔야 할 이유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기도도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그런 제 삶의 근본 문제를 가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비록 제 눈은 고쳐주시지 않았지만, 제 삶을 잘 인도해주셨습니다. 학교도 졸업하고 직장도 얻고 결혼도 하고 ... 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저의 이 문제는 주님 안에서 해결되고 극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 인생의 두 번째 근본 문제는 ccc 간사 생활과 교회 개척이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처음 간사가 될 때, 저는 후원을 받는 간사 생활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역이야 할 수 있지만, ‘후원 받고 어떻게 계속 살 수 있을까? 한 10년 정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건 기적이야...’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딱 10년을 하고 신대원 마칠 무렵 ccc를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 들으십니다.
간사 후에는 2년 뒤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는데... 그때는 교회 개척이 저의 인생의 근본 문제였습니다.
그때 저는 40이란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직장을 제대로 다닌 것도 아니고 주님의 일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나는 도대체 뭔가?...’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그래도 ‘주님이 부르셨다’라고 믿고 이제 교회를 시작하는데, 만약 잘 안되면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시작하면 열에 일고여덟이 사라지는 현실 속에, 이렇게 놀랍게 아직까지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이제 저의 인생의 근본 문제는 없습니다. 하나님 잘 믿는 것 외에 다른 근본 문제는 없습니다. 제 인생의 남은 시간... 아프면 아프면 되고, 가난하면 가난하면 되고, 성실히 살다가 하나님께로 가면 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의 인생의 근본 문제들도 주님께서 다 아시고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모든 문제 위에 든든히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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