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악에 대한 하나님의 나라 (2)

믿음찬교회 0 11 04.08 12:04
악에 대한 하나님의 나라 (2)
막 5:1~10
2024.04.05.

지난번에 우리는 오늘 말씀이 단순히 군대 귀신을 축출하는 내용이 아니라, 악에 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는 내용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배후이자 악의 세력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신 예수님은 일부러 갈릴리 건너편 거라사인의 땅으로 가셔서, 거기 있던 군대 귀신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악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보여주시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의 악을 이길 것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악과 싸워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악과 싸워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면 이제 문제는 그 올바른 대상과 올바른 방법입니다.
우리는 과거 중세 시대에 있었던 십자군 전쟁을 잘 압니다. 십자군 전쟁은 교황과 교회의 이름으로 시작한 전쟁입니다. 십자군 전쟁은 악과의 싸움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전쟁은 교황은 교황대로 영주들은 영주대로 상인들은 상인대로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계산이 있었던 전쟁이었습니다. 결국 십자군 전쟁은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군 전쟁은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싸워야 할 대상과 방법에 대해 분별이 필요함을 교훈해 주는 하나의 좋은 사례입니다.

분별하지 않으면, 우리는 엉뚱한 것을 악으로 생각하고 싸우게 됩니다. 이런 일도 있었죠. 어떤 예수 믿는 사람이 절에 찾아가 불상을 훼손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사건 동기를 우상숭배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악과의 싸움을 올바르게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네,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상을 믿는 사람이 먼저 예수를 믿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지, 보이는 우상 몇 개 없앴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싸우기 위해 먼저 잘 분별하여서, 무엇을 향해 싸워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세심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악과 잘 싸우고 있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얼마 전 코로나 사태가 있었습니다. 그때 정부는 종교 집회를 일시 금지한 일이 있었습니다. 대다수 교회는 정부의 그 취지에 공감해서, 예배를 온라인으로 전환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부 교회는 정부 방침을 기독교 탄압으로 인식하고,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고 정부와 싸웠습니다. 성명서를 발표하고 재판에 소송을 하고 대면 예배가 정당하다는 세미나도 열었습니다.
저는 당시 정부가 기독교를 싫어하고 탄압하려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대면 예배를 금지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처음에 코로나가 급속히 확산되어 그로 인해 전국민이 크게 염려할 때, 정부가 취했던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교회가 그때 그런 조치를 행한 정부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싸웠던 일은 좋은 싸움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교회는 악과 싸우고 사탄과 싸워야지,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잘못된 대상을 악으로 규정하여 싸우게 되면 과거 중세 교황청과 다름없는 모습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을 분별하여서 올바른 대상을 향해 올바른 방법으로 싸워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악과 싸울 때,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악과의 싸움을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의 능력과 지혜 안에서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악과 싸우고 악의 현실을 극복해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는 돈키호테와 같이, 악의 풍차를 향하여 무조건 돌격해서는 안 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세상은 넓고 악의 현실은 광범위합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 속에서 돈키호테처럼 모든 악의 현실을 문제 삼으며 좌충우돌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바치고 헌신한들, 악의 현실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결코 극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십 수년간 한국교회의 비리와 부패들과 싸운 한 기독교 NGO 운동가가 있습니다. 제가 그분의 글을 읽었는데, 그분은 자신의 활동으로 한국교회가 나아질 것이란 희망과 기대를 하며 그렇게 그 일에 오래동안 헌신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한국교회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이 헌신한 그 일에 회의가 들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비리를 폭로하고 부패를 고발하는 자신의 방법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는 것입니다.
네, 그분의 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악의 현실은 개선되기 어렵습니다. 낡은 부대는 바뀌지 않습니다. 마지막 그날까지 세상은 바뀌지 않고 교회 안의 잘못된 것들도 별로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악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 안에서 그것과 지혜롭게 맞서야 합니다. 이 싸움은 존재론적인 싸움이고 그날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감당해야 하는 장기적인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싸움은 지금 여기서 이기겠다는 순진한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땅에서 악을 다 몰아내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악과 싸우는 것은 악의 지배를 거부하고, 악에 물들지 않고, 세상 속에서 우리 믿음을 지키는 우리의 존재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싸움의 의미입니다. 악의 최종적인 몰락은 그날에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악과 싸우려면, 우리가 미리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싸움에서 오히려 패배하고 불이익을 당하고 초라해지고 밀려나는 일이 더 많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극적인 영광과 승리들도 있겠죠. 그러나 대체로 우리는 이 악한 세상에서 악과 싸울 때 실패와 쓴맛을 더 많이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과 같이, 그런 어려움과 고난을 더 많이 겪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궁극적으로 패배를 통한 승리이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우리의 초라함과 패배 속에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싸우기 위해 그런 각오를 해야 합니다. 악과 싸우는 사람은 꽃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영광스러운 일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악과 싸우며 패배 속에 전진할 때, 하나님은 그런 우리 교회와 믿는 자들을 전능하신 손길로 지켜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과 악의 이와 같은 종말론적인 싸움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서,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의 능력과 지혜 안에서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 안에서 싸워야 합니다.
대통령이 되고 총리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판검사가 되어도 이 세상 악의 현실을 그다지 개선 시킬 수 없습니다. 큰 교회 담임목사가 되어도 교회 안팎으로 개혁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하물며 일개 공무원이나 일개 신입사원이나 일개 교인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지나친 환상은 금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완전히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앞에 내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가 나타나고 내 몫의 악의 현실이 나타날 때, 우리는 그것과 용감히 싸워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믿고 말이죠.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착한 종으로 여기시고 기뻐하십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단순한 귀신 축출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악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승리입니다.
우리는 그런 승리를 보여주신 주님을 이 세상에서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성도님들은 그 승리를 바라보시면서... 오늘 우리의 싸움을 분별하시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지혜롭고 용감하게 싸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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