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2)

믿음찬교회 0 62 2023.11.21 13:00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2)
막 2:21~22
2023.11.17.

우리는 지난주 새 포도주와 새 부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새 포도주는 예수님의 새로운 말씀과 가르침이고, 새 부대는 그런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담는 새로운 신앙 형식과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만큼이나 새 부대가 중요합니다. 새 부대가 없으면, 새 포도주를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주에 새 부대는 첫 번째로 교회이다라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둘째, 새 부대는 율법과 의식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약 신앙은 성전과 율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성전만큼이나 중요한 옛 신앙의 중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아 율법을 지키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하면 그것은 ‘하라’는 계명과 ‘하지 말라’는 계명으로 이루어진 체계입니다.
그래서 하라는 계명에 대해선 하고, 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선 하지 않는 것이 율법을 준수하는 삶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과 삶은 율법 계명을 외적으로 준수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율법 계명의 중심에 제사 제도가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율법의 엄격한 규정을 따라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옛 신앙에 있어서 의식과 형식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율법과 율법 준수는, 바울이 말씀한 바와 같이, 어디까지나 복음이 오기 전의 몽학 선생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방식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방식과 다릅니다.
그것은 단순한 외적 순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듣고 이해하는 가운데 따르는 성숙한 순종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새로운 신앙 방식을 제자들에게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엔 우리가 잘 아는 간음한 여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여자는 간음 중에 잡혔고 따라서 율법으로는 그 자리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건을 그렇게 율법적으로 처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마음과 사정과 형편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통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방식은 율법적인 방식과 다릅니다.
우리는 율법적으로 문자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여 성숙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잘 이해하는 일입니다.

이후 그런 예수님의 새로운 신앙 방식을 사도들이 계승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사도 바울이 잘 계승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율법적으로 문자적으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한 예로 예수님은 ‘복음을 따르는 자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는 이방지역에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값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것이 이방인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복음 전파에 유용했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은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만일 신앙적인 이유로 갈라서게 되면 갈라서라고 권면합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님 말씀을 율법적으로 따른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이해하여 성숙하게 따른 것입니다. 복음 전파에 있어서는 효과적인 복음 전파라는 예수님의 뜻을 이해했고, 이혼에 있어서는 약자 보호와 가정 보호라는 예수님의 뜻을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을 과거 율법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율법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것을 오늘의 상황과 다양한 환경 속에서 성숙하게 적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과정에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의 가장 큰 표시는 말씀 충만, 즉 말씀을 성숙하게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에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가 성경 말씀에 대한 열의와 이해도가 낮고 그에 따라 율법적인 옛 신앙과 미신 신앙에 머무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미신적인 상급 신앙과 구약적 축복 신앙과 외적인 기적과 능력을 추구하고, 율법적 정죄 의식으로 사람을 정죄하고, 율법 의식으로 법과 제도와 규정을 자꾸 말하고, 신앙생활에 불필요한 구약적인 의무나 이런저런 금지사항을 많이 말하는 것은 새 부대가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의 헌금 체계나 직분이나 구조도 가급적 단순하게 하고 분위기도 밝게 하여, 교회를 무거운 조직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따뜻한 유기체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새 포도주에 걸맞는 새 부대를 가진 교회와 신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셋째, 새 부대는 신앙의 주체가 모세나 제사장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성전과 율법과 의식이 중심이었던 구약 신앙은 신앙의 중심이나 주체가 지도자들에게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면 백성들은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했죠. 그것은 이를테면 종의 종교이고 순종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새로운 신앙은 신앙의 중심과 주체가 지도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개인 개인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임재와 활동을 볼 때에도 매우 분명합니다. 구약시대에 성령님은 지도자 및 특정한 인물에 한정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엔 위대한 인물과 영웅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였고 하나님도 그렇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가 되면 성령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하시게 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우리 모두에게 밝혀주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직접 이해하는 주체가 됩니다. 이로써 우리 모두는 중간 매개체 없이 하나님과 바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신앙은 종의 신앙이 아닌 아들의 신앙으로 발전하고, 순종의 신앙이 아닌 성숙한 주체적 신앙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바울서신에 나오는 바울의 기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그들의 눈이 밝아지고 분별력이 갖추어지고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가득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교회를 세우고 목회한 단순한 목회자가 아니라, 사람들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세워나간 그런 목회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목회자였기 때문에 바울은 성도들이 자라고 성장하는 것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바울이 그런 목회를 어디서 배웠을까요? 네 그것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그렇게 양육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많이 어설프고 미숙하고 어리석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점점 온전히 세워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앞두신 그 마지막 특별한 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제까지 하지 않으셨던 전혀 새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희는 이제부터 내 친구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내 친구가 되어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너희가 이제 내 친구가 되었다는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제자들이 예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친구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셨고, 이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나와 있는 그 기도의 한 내용은 바로 ‘이제부터 이들을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우리 안에 하나로 있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동등한 교제 안으로 초대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새로운 신앙의 형식은 바로 주체적인 우리 자신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종이나 백성의 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의 아들이고 친구입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이 아들로서의 주체적인 신앙의 틀과 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새로운 부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디 가서 기도 받고 자꾸 상담하고 그러지 마시길 바랍니다. 말씀의 가르침을 받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목회자는 자꾸 신자들에게 안수하고 영적 권위를 많이 행사해선 안 됩니다. 목회자는 말씀을 위해 존중을 받고 영적 권위라는 것도 물론 있지만, 그러나 목회자와 신자는 역할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한 형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체적인 신앙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새 포도주가 부어지는 새 부대입니다.

아무쪼록 새 부대를 통해 예수님의 그 귀하신 새 포도주를 온전히 받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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