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다니엘의 감사

믿음찬교회 0 99 2023.11.05 11:45
다니엘의 감사
단 6:10
2023.11.05.

한 해의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모든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우리 신약의 교회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구약의 각종 규례나 절기들을 율법적으로 지키지 않고, 꼭 필요한 것만 신앙적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을 공통적으로 특별히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절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고백하고 찬양하고, 성탄절을 통해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찬양합니다.
그러면 추수감사절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네,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통해 한 해의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가을은 열매의 계절이고 추수의 계절입니다. 신앙적으로 우리는 한 사람의 농부입니다. 한 해 동안 하늘을 바라보고 농사를 지은 농부는, 가을에 하늘을 향해 감사하는 마음이 넘칩니다.
우리도 이 가을에 그런 영적인 농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비록 올해의 수확이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크든 작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은 그 영광을 받으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그러므로 우리 신앙에 필수 요소 중 하나가 감사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은 감사를 잘 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자주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감사하고 기도로 감사하고 믿음으로 감사하고... 그리고 권면하기를 감사의 말을 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시편의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전심으로 감사하고, 춤추며 노래하며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우리가 신앙의 한 부분으로 꼭 배워야 할 내용입니다.
언제까지 배워야 할까요? 언제 우리는 감사라는 학교를 졸업할 수 있을까요?
감사가 우리 안에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작은 빵을 앞에 놓고도 감사하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도 감사하고, 요나처럼 고래뱃속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맞아, 성경이 말씀하는 귀한 한 명의 감사의 인물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사람은 바로 다니엘입니다.

우리가 묵시와 환상의 책인 다니엘서에서, 오늘 본문은 비교적 잘 알고 친숙한 본문입니다.
이때의 다니엘은 나이가 상당히 든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처음에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 때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때 소년이었던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고, 일약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는 총리와 박수장이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 이후 그의 아들들이 왕으로 세워졌는데, 그때 다니엘이 무엇을 했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다시 등장한 것은 바벨론의 마지막 왕인 벨사살 왕 때입니다.
그때 벨사살은 메대 바사와 전쟁 중에 있었고 바벨론 도시는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벨사살은 금성철벽 같은 바벨론 도시를 믿고 귀족들과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거기서 벨사살은 큰 실수를 하는데,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은 금 기명으로 술을 마시려 했습니다. 그러자 그 연회장의 왕궁 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미지의 글자를 쓰게 됩니다.
벨사살 왕을 비롯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놀라고 두려워할 때, 그 글자를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다니엘이 부름을 받습니다. 벨사살 왕은 그 글자의 해석을 다니엘에게 부탁하며, 나라의 셋째 통치자를 약속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때 바벨론 왕은 따로 있었고, 벨사살은 그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그 글자를 읽었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한마디로 바벨론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날 밤 바벨론 도시는 함락되고 벨사살 왕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왕은 고레스입니다. 그런데 그는 계속 외부 정복 전쟁을 하고, 대신에 내부 통치를 자신의 숙부이자 장인인 다리오에게 맡겼습니다. 이 다리오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왕입니다. 다리오는 성경상 이름이고, 역사적 문헌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다리오는 고레스의 위임을 받아 페르시아 제국을 통치하는데, 유능한 인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다니엘이 전국을 다스리는 세 총리 가운데 수석 총리가 됩니다. 우리는 다니엘이 얼마나 뛰어난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다니엘은 상당히 나이가 든 노년의 다니엘입니다. 사자굴에 들어간 다니엘은 이렇게 나이가 많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다니엘이 노년이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때 다니엘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특별한 환상을 많이 체험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마지막 때의 일들에 대해 특별한 환상과 계시를 주시고 계셨습니다.
아울러 이때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통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70년 동안만 버려두신다는 귀한 소망의 예언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그때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와 환상,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놀라운 예언, 그리고 자신의 총리로서의 막중한 자리로 인하여, 하루에 3번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다니엘은 어릴 적 고국을 떠나 노년이 되었지만, 이방의 제국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의 계시와 역사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30일간 왕을 제외한 모든 신에게 경배하는 자는 사자굴에 들어가게 된다고 하는 특별금지령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여기서 이 다니엘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진정한 감사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첫째, 진정한 감사는 어렵고 사나운 환경 한가운데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감사하고, 젊은이는 시험에 합격하고 감사하고, 장년은 뜻한 바를 이루며 감사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평범한 감사입니다.
감사할 이유가 있고 감사할 수 있어서 감사하는 것은 평범한 감사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해야 하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어렵고 환경이 힘들어도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감사한다면, 그것만큼 귀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 다니엘을 보면,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 멀리 보나 가까이 보나, 다니엘은 별로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나라는 망하고 평생을 이방 나라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다니엘입니다. 총리를 여러 번 했으니, 감사가 넘칠 것 아니냐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다니엘이 원한 바가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은 총리가 되어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삶을 살고자 한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이방 나라 가운데에서 어렵게 산 동포들에 비하면 나은 삶이지만, 그러나 왕궁에서의 호화로운 생활도 고달픈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이방 나라와 그들의 우상과 무도한 왕들과 숱한 정치와 권모술수 속에서, 다니엘의 영적인 삶은 늘 메말랐을 것입니다. 차라리 낮은 곳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조용히 사는 것이 더 낫다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가까이 보아도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면, 결정적으로 목이 달아날 상황입니다.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못하는 법은 엄하고 왕이라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사자 굴이 눈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 늘 하던 대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다니엘의 감사를 배워야 합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과 환경이라도, 우리는 그 속에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래 전 예화로 들었던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독일의 한 병원에서 혀에 암이 생긴 한 환자가 수술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수술을 하면 이제 그는 더이상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의사는 수술을 시작하면서, 그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경 주석가로 유명한 매튜 헨리 목사의 한 일화도 있습니다. 매튜 헨리 목사가 하루는 집으로 돌아오다가 골목길에서 강도를 만났습니다. 매튜 헨리 목사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아 정신을 잃었습니다. 가까스로 깨어난 그는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는데, 놀란 가족들을 두고 서재로 들어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목숨만은 건지고 돌아와 가족을 다시 보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예수님을 안 믿었다면, 그 강도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강도가 아니라 목사가 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천국을 소유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런 매튜 헨리 목사의 기도는 우리도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려운 상황과 환경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한 다니엘의 감사는 불가능한 성경 속의 감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의 현실에서 언제나 가능한 감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빵을 앞에 두고도 감사할 수 있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 사방이 에워싸여도 감사할 수 있고, 시련의 바람이 부는 외로운 길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감사는 다니엘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드리는 온전한 감사입니다.
그런 감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그 사람의 감사를 언제나 기억하실 것입니다.

둘째,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드리는 감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니엘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때 다니엘은 단순히 자신의 삶과 일상을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이 감사한 특별한 이유는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이 망하고 메대 바사 제국이 세워졌을 때,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내용은 다니엘서 9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다니엘은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민족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이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주의 백성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지체하지 마옵소서”
이렇게 기도한 다니엘은 그 후로 매일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에게 있어서,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한 최우선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감사할 수 없는 상황과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 때문입니다.
비록 나는 실패하고 망하고, 비록 나는 애매한 고난을 당하고, 비록 나는 초라하고 아무것 없어도, 내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언제나 거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거기 계신 하나님... 이런 말을 프란시스 쉐퍼라는 분이 의미있게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뜻은 성취되고, 하나님의 계획은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내 상황이 어렵고 힘들고, 지금 세상이 어지럽고 형편 없고, 아무리 지식이 발전하고 과학이 발전해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여전히 거기 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은 마침내 승리하고, 마침내 눈물을 거두고, 마침내 주님의 품에 평안히 안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바라보고, 오늘 나의 현실 속에서도 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기로 하고 그분을 믿고 있고,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하고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그냥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언약 속에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흐르고 있습니다.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가호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가호가 있습니다. 그 언약적 관계로 인해, 우리는 이 세상에 홀로 외로운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
그 언약적 관계는 내가 그것을 깨뜨리지 않는 한 취소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스스로 떠나고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한, 내가 넘어지고 쓰러져도 그 언약은 하나님이 붙들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그와 같은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저를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내가 혹 억울하고 힘든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내가 내일의 양식이 없고 가난하고 힘들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떡과 고기를 보내주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잘못된 마음을 먹을 때, 하나님께서 항상 깨우치시고 책망하시고 바로잡아주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목사이고 사역자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있습니다.

언약적 관계에는 언약적 특권이 있고 언약적 복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받는 놀라운 혜택들이 많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언약적 관계를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복은 하나의 모델로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신자의 복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복을 받고, 또한 죽어도 부활의 최종적인 복을 받는 복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이유가 없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의 이유 따위는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가을에 마음을 모으고 이런 다니엘의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다니엘과 같이 우상과 이방의 세계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돔 성의 롯과 같이 이방의 거친 세상 한가운데에서 날마다 우리 심령이 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만들었느냐 마시기에 피보다 독하다...’ 우리의 인생은 그럴 때가 많지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언제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우리의 언약적 관계를 생각하고, 무엇보다 나를 사랑해주시고 구원해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여... 감사가 넘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언제나 감사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께서 사랑과 은혜로 늘 함께하여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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