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중풍병자 사건 (2)

믿음찬교회 0 92 2023.10.09 16:55
중풍병자 사건 (2)
막 2:1~12
2023.10.06.

지난 시간에 우리는 중풍병자 사건을 마가복음의 전체 흐름 안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이 사건을 오늘 본문 자체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지난주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 본문은 단순히 한 중풍병자의 치유를 말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그것을 말합니다. 한 중풍병자가 기적적으로 치유가 되었죠.
그러나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보다 더 깊은 내용입니다. 이 중풍병자 치유 사건은 죄 사함의 문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병자에게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의 병을 치유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렇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언제부터 아팠느냐?,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그리고는 “네 병이 나음을 받았느니라”, 혹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라고 말씀하셔야 하죠. 그러나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도대체 왜 예수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여기에 대해 주석마다 설명이 다양합니다. 대략 이런 설명들이 있습니다.
‘그 환자의 병은 죄와 관련이 있었다’, ‘그 환자의 병은 죄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환자가 그렇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거기 있던 서기관들을 염두에 두시고 일부러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네 이런 다양한 해석과 설명이 있는데, 그러나 가장 좋은 해석과 설명은 이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님이 그때 그 중풍병자를 보실 때, 예수님은 그 사람의 병만이 아니라 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보셨다는 것입니다. 1차원에 사는 사람은 2차원에 사는 사람이 보는 것을 못 보고, 2차원에 사는 사람은 3차원에 사는 사람이 보는 것을 못 보고, 3차원에 사는 사람은 4차원에 사는 사람이 보는 것을 못 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와 차원이 다른 예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 병자와 그 병자의 문제를 영적인 깊은 차원에서 보셨다는 것입니다. 병도 인간의 문제이지만, 죄는 더 깊은 인간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은 그런 깊은 차원에서 한 사람의 질병과 죄의 문제를 동시에 보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마가도 1장에서 병의 치유를 다루고, 이제 2장에서 죄의 치유를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보느냐... 이것은 인류 역사 속에 무수히 많은 질문과 대답을 낳은 큰 주제입니다. 종교마다 철학마다 시대마다 많은 다양한 대답이 있어왔습니다.
만약 오늘날의 무신론적 과학적 시각에서 생각해본다면, 그 대답은 무엇일까요? 그분들에게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그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다... 쏘아올린 우주 탐사선의 망원경을 180도 회전시켜 지구를 향하게 하고 지구 사진을 찍어 보았더니, 희미한 작은 점에 불과하더라... 그러므로 인간은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분들은 우리가 신이나 종교에 헛된 기대를 두지 말고 그저 나름대로 잘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고 믿습니다.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라는 분도 그런 비슷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지금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신데... 이 우주와 생물에는 목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주와 생물을 연구한 과학의 솔직한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엔 유시민씨도 그분의 유튜브에 나와서 같이 대담하면서, 자신도 그런 결론에 동의한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본래 이 세계는 무의미한 세계이니까, 우리가 너무 의미를 찾으려고 아웅다웅하고 애쓸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선택을 한 그분들의 고뇌를 우리가 다 알 수 없지만, 안타까운 것은 혹 그런 그분들의 선택 배경에 이와 같은 인간과 인생에 대한 무신론적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의미 없는 인생 끝까지 살 필요가 어디 있나? 내가 원할 때 그만두면 된다...’ 점점 이런 어두운 생각들이 사람들 속에서 커지는 것 같아 안타깝고 두렵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 문제는 매우 중요한데, 지금 여기서 예수님은 인간을 어떤 한 중요한 관점으로 보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죄로부터 용서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인간존재에 대한 이런 근본적인 시각을 예수님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 높은 사람 낮은 사람... 그런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냐는 사실입니다. 죄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계의 무의미와 무목적을 믿기보다는, 하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인간의 죄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유교는 죄 문제를 다루지 않고 다룰 깊이도 없습니다. 불교는 죄를 알긴 하지만 인간의 근본 문제를 죄로 보지는 않습니다. 철학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일반 사람들도 죄를 인간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냐 안 되냐는 신경 쓰지, 하나님이라는 절대자 앞에서 혹은 양심 앞에서 죄가 되냐 안 되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경 외에 인간의 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우리는 죄 문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죄를 잘 모릅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겁니까?... ’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보시면서 그 문제를 다루고 계십니다. 질병도 인간의 문제이지만 죄는 더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오늘 말씀을 통해 죄에 대해서, 죄 사함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근본 문제에 대해서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죄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만 믿으면 죄 문제가 쉽게 한 번에 해결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죄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한 번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이단은 그것을 한 번에 해결될 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그분들은 그래서 이단이 된 것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예수님의 피로 사함을 받고 해결을 받지만, 그러나 그것은 믿는 우리가 현재와 미래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예수님의 속죄는 완성되었지만, 그러나 아직 우리의 현실은 최종 구원을 향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의 죄까지 한번에 다 해결되었다는 가르침은 예수님의 속죄와 우리의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믿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며 계속 죄를 처리하고 극복해 가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늘 죄에 매여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죄를 멀리하고 경건한 삶을 살되, 큰 죄와 작은 죄를 구분하고, 반복적인 죄와 실수 같은 죄를 구분하고, 또 죄를 넘어설 수 있는 힘과 성숙을 지향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죄 문제를 다루며 계속 극복해 가야 합니다.
아무도 죄 문제에 있어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은혜를 받고 성령을 받아도, 돌아서면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죄를 극복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단순한 중풍병자 치유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이유가 되는  사건이자, 우리 인간의 죄 사함의 문제를 말씀하는 사건입니다.
아무쪼록 이 중풍병자와 같이 예수님의 죄 사함을 받는 복된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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