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예수님의 귀신 축출

믿음찬교회 0 204 2023.08.02 19:17
예수님의 귀신 축출
막 1:21~28
2023.07.28.

우상과 신화와 미신과 문맹이 지배하는 고대에 악한 영과 귀신의 활동은 활발했습니다. 그들의 활동은 인간의 무지와 죄와 어두움과 관련이 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종교와 문명과 역사가 신화와 미신과 우상의 그늘을 벗어남에 따라, 악한 영과 귀신의 직접적인 활동은 많이 사라지게 됩니다. 대신 지금 그 존재들은 보다 은밀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세상 가운데 역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예수님 당시 그 존재들은 팔레스타인과 지중해 세계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주요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유대 백성들은 성전과 율법 체계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 무지하고 또 각종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악한 영과 귀신들이 활동하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는 당시 백성들을 짓눌렀던 가난과 질병과 율법과 악한 정치와 함께, 매우 힘든 주된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영과 귀신에 시달리는 그와 같은 백성들을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귀신 축출은 예수님의 단순한 능력 과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종말론적인 임재이자 도래를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신 축출을 중요한 자기 사명의 하나로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신 후 “너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느니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들어가셨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안식일에 그곳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데, 여기서 한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가버나움이 어떤 곳인지 먼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대개 우리 생각에 그저 작은 갈릴리 마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곳은 교역과 상업이 번성한 갈릴리 해변의 주요 도시였습니다. 로마 군대가 파견되어(마8:5~13) 있고 세리와 세관(막2:14)도 있고 왕의 신하(요4:46)라고 하는 상주 공무원도 있었습니다. 인구는 추정컨대 최대 1만 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버나움은 당시 예루살렘 인구가 약 5만 정도임을 고려할 때, 결코 작은 시골 마을이 아닌 엄연한 도시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초기 사역이 갈릴리의 그런 도시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졌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편 그 도시의 규모를 고려하면 그 중심에 있는 회당은 결코 작지 않은 규모였을 것입니다. 안식일에 모이는 성인 회중의 수도 수백 명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가버나움 회당은 당연히 회당장을 비롯한 회당 지도부에 의해 잘 통제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런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셨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회당 지도부가 무명의 인사를 아무렇게나 세웠을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내용은 예수님께서 그 지역에서 공개적으로 활동하시고 그래서 충분히 알려진 분이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그 지역에서 꽤 알려진 떠오르는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은 기존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파격적으로 달랐습니다. 기존 서기관들의 가르침이 율법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반복하는 것이었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율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자 율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해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테두리를 넘어 구약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본질적인 뜻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은 가버나움 회중들을 사로잡았고 매우 놀라게 했습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은 그렇게 완전히 새로운 말씀으로 당시 대중들을 사로잡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23절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회중 가운데 어떤 이가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 
갑자기 소리 지른 그 사람은 귀신들린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귀신들림은 처음에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거기서 진작부터 이상 행동을 하고 있었다면 사람들이 알았을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그 귀신은 그 사람 안에서 정체를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자신을 대적하는 강력한 능력자가 나타날 때 더 이상 정체를 숨기지 못하죠. 그래서 그 귀신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게 되는데, 그 귀신은 모두 세 마디의 말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입니다.
귀신이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로 부른 것은, 귀신이 예수님의 출신 지역을 말함으로 내가 너를 알고 있고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하는 말은 쉽게 말해 ‘상관 말고 물러나라’는 의미입니다. 귀신은 지금 방어기제를 작동하고 있고 예수님에 대해 저항과 반발을 하고 있습니다.
귀신의 저항과 반발은 두 번째 말로 이어집니다.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귀신은 자신들을 향한 예수님의 궁극적인 목적과 의도를 폭로함으로 계속 저항과 반발을 합니다.
귀신의 세 번째 말은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입니다. 여기서 귀신이 예수님을 이렇게 말하는 것은 결코 예수님을 칭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드러냄으로 예수님을 제압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귀신의 저항과 반발과 제압 시도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잠잠하라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여기서 ‘잠잠하라’는 말은 피모세티인데, 이 말은 단순히 ‘조용하게 되라’는 의미가 아닌, ‘묶이다, 결박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일상적으로도 쓰이고 또 전문적으로 즉 마술이나 마법에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것을 일종의 주문 형식으로 보고 예수님께서 귀신 축출에 주문을 사용하신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을 주문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모습과 방법이 당시 마법사나 귀신 축출자들과 얼마나 달랐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귀신 축출에 있어 특정한 도구나 특정한 말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고대 이집트나 바빌론 문헌들, 또 유대 랍비 문헌들을 보면 여러 도구와 주문들이 등장합니다. 머리카락, 매듭, 나뭇가지, 야자나무 가시, 사람의 젖, 부적, 재, 설익은 올리브에서 짠 기름, 물이 담긴 대접... 그리고 귀신 축출을 할 때 향을 피우고 음악을 연주하고 특정한 주문을 외우고 또 특수한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 그런 도구나 주문은 없었습니다. 단지 귀신을 향해 일상적인 말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기도를 하시거나 외부의 권능이나 이름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보통 귀신 축출자는 의식을 하기 전에 자신이 어떤 권위를 사용하는지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누구의 사제이며 마법사이다, 나는 누구의 사자이다. 위대하신 누구께서 나를 보내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자신의 권위와 능력으로 물리쳤습니다.
그래서 이상과 같은 예수님의 귀신 축출을 지켜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법사나 마술사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귀신을 물리치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인물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그 회당에 있는 귀신을 물리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그 사람에게 경련과 큰 소리를 일으키고 빠져나갔습니다. 그러자 그날 회당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정말 놀라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그동안 알던 귀신 축출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또 매우 권위 있는 방식으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의 탁월한 권위에 놀라는 이 장면을 오늘날의 시각이 아니라 당시의 시각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정말 놀라운 분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관련 최근 고대 문헌의 귀신 축출에 관한 연구를 했던 한 학자는(E. F. Kirschner)는 이렇게 말합니다.
  “현존하는 문헌 속에 복수의 여러 이야기로 상세하게 묘사되는 단 한 명의 축귀 사역자는 바로 나사렛 예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내용을 통해, 당시 예수님이 얼마나 큰 권위를 가지셨으며 또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오늘 마가복음 본문을 살펴보았습니다. 본문에 대한 설명이 다소 길었지만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내용은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놀라운 권위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교회와 신자들은 예수님을 대체로 어떤 분으로 이해하고 있을까요?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고마우신 주님, 나를 사랑해주시는 은혜의 주님, 항상 좋은 것을 베풀어 주시는 좋으신 예수님... 그래서 어떤 교회에는 마음 좋게 환하게 웃는 예수님 그림을 걸어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그렇게 가볍게 한없이 좋은 분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최근 기독교 일부이기 하지만 예수님보다 높은 교회와 예수님보다 높은 목회자가 계속 나오고 있고, 그리고 그런 영적 분위기 속에 예수님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교회와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으로부터 예수님의 권위를 재발견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렇게 믿어도 될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우리가 오늘 그 가버나움 회당 현장에 있었다면, 우리의 귀가 열리고 눈이 커지고 심장이 뛰고 숨이 멎을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신앙과 삶에 그런 권위 있는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만약 최근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한 일이 있다면, 여러분과 저는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권위 있는 예수님을 여러분의 삶 속에 더 깊이 발견하시고 더 깊이 초청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든 악한 영과 어두움을 물리치는 복된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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