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히브리서의 서론

믿음찬교회 0 121 2023.07.30 11:49
히브리서의 서론
히 1:1~4
2023.07.30.

오늘 본문인 1~4 말씀은 히브리서의 서론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의 단순한 서론이 아니라, 히브리서 전체 말씀을 담고 있는 서론입니다. 그래서 이 서론의 짧은 말씀이 점점 확대되어 히브리서의 전체 말씀을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언뜻 보면, 서론 말씀은 4절까지가 아니라 3절까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3절 마지막이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문장을 마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4절 마지막은 “얻으심이니”라고 되어 있어서 5절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또 4절과 5절에 천사라는 말이 같이 나오면서, 서로 연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히브리서 서론이 3절까지이고, 4절부터 히브리서 본론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4절까지가 히브리서 서론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원문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원문은 4절 마지막에 마침표가 있죠. 물론 이 마침표는 성경 고대 사본엔 없고 후대에 여러 사본을 편집한 성경을 만들면서 넣게 된 것이지만, 그러나 대체로 신뢰할만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2~4절까지 교차 대칭구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2~4절의 교차 대칭 구조는 이렇습니다. 첫째로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으니’와 ‘천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가 대칭되어 있습니다. 둘째로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와 ‘죄를 정결케 하시는 일을 하시고...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가 대칭되어 있습니다. 셋째로 ‘모든 세계를 지으셨으니라’와 ‘만물을 붙드시며’가 대칭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앙에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와 ‘본체의 형상’이 서로 대칭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교차대칭 구조에서는 가장 중앙에 있는 내용이 핵심이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와 본체의 형상이시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런 구조가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4절까지를 히브리서 서론으로 보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누가 봐도 4절과 5절에 천사라는 단어가 있어서 4절과 5절이 서로 잘 연결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3절까지를 서론으로 보고, 4절부터 본론이 시작한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
네, 이와 같은 의문에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천사라는 단어는 서론과 본론을 연결하는 연결어라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뛰어난 수사학을 구사하고 있는데, 그런 뛰어난 수사학의 한 방법이 바로 그와 같은 연결어의 사용입니다. 연결어는 앞 문단의 마지막과 뒤 문단의 처음에 등장하면서, 두 문단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천사라는 말이 연결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서론과 본론의 경계선을 오해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내용을 고려하면, 현재 히브리서 서론을 3절까지로 오해하게 하는 우리말 성경을 이렇게 조금 수정하면 좋겠습니다.
“...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으니,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라”
이렇게 우리는 4절까지를 히브리서의 서론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히브리서 서론이 말씀하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네, 그것은 지금까지 많은 시간 동안 많은 방법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제 이 역사의 마지막 날에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결정적으로 말씀하셨(시)는데, 이제 우리가 그의 아들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만유의 상속자이시고, 그로 말미암아 세계가 창조되었고,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며 본체의 형상이시고, 그리고 그가 지금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시고, 또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고, 그래서 그는 천사보다 뛰어난, 바로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히브리서 서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우리에게 말씀하면서, 우리는 최종적인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제 이와 같은 서론 말씀이 본론으로 확대됩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히브리서 본론은 3가지 큰 주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천사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천사보다 뛰어나시다’라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은 천사가 전해준 모세의 율법보다 훨씬 귀하고 중요한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 주제는 모세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모세와 비교할 수 없는 분으로,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이 아닌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론의 세 번째 주제는 진정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이 정한 대제사장이 아닌, 멜기세덱의 계보를 잇는 진정한 대제사장이시다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히브리서 본론은 이와 같은 3개의 큰 주제를 말씀합니다. 이런 말씀이 10:18까지 길게 진행됩니다. 이후 10:19~12장 마지막까지는 이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한 권면입니다.
이 권면은 참 따뜻하고 눈물 나는 말씀이지만, 그러나 이 권면은 12장 마지막에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히브리서의 결론입니다. 히브리서는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신자들을 향해 이와 같은 말씀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히브리서의 본론과 결론은 히브리서의 서론 즉 우리는 그분의 아들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확대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잠시 히브리서 전체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히브리서 전체를 간단히 살펴볼 수 있는 것은 히브리서 서론이 본론과 결론을 그 안에 다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히브리서를 시작하고 있지만, 히브리서의 마지막을 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그의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
그래서 이 경고를 아는 사람은 히브리서를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고, 이 경고를 모르는 사람은 히브리서를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한편 히브리서는 이와 같은 마지막 말씀 후에 13장의 에필로그를 말씀하며 은혜 가운데 끝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오늘 본문인 서론으로 돌아와, 지금 서론이 말씀하는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의 최고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예수님의 모습은 요한일서가 말씀하는, 우리가 만져 본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과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사실 예수님의 깊이도 모르고 높이도 모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낮아지셨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지금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얼마나 높아지셨는지를 말씀하는데, 사실 이 말씀 하나하나는 우리가 잘 모르는 엄청난 말씀이고 상상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첫 번째 말씀은 ‘그분은 만유의 상속자이시다, 그분은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다’ 입니다.
만유는 히브리서 당시로는 사람의 눈으로 보이는 땅과 하늘이고, 지금 현재로는 우리가 보는 온 우주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 내용을 글로 이해하고 머리로 이해하긴 하지만, 사실 와 닿지 않고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우리는 우주 만물이 아직 무엇인지 모르고, 우주 만물을 상속한다는 개념도 모릅니다.
금세기 들어 엄청난 과학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우주에 대하여 하는 말은 ‘이 우주는 무한하고 끝이 없다, 이 우주에 우리밖에 없다면 그것은 엄청난 공간의 낭비이다...’ 그런 정도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한한 우주에 주인이 있고, 그런 이 우주를 하나의 나라처럼 상속하고 상속받게 된다는 이 말씀은 우리 이해의 범주 너머에 있습니다.
죄를 정결하게 한다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개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 개인 차원에서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만유의 상속자이시다’라는 말씀과 대칭을 이루는 이 말씀은 우주 전체적인 차원에서의 죄의 정결과 구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주적인 구원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말씀을 고린도전서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15:24~28)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우주적인 구원의 한 부분으로 행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그때가 되면, 우리를 포함한 모든 만물의 구원은 완성되고 우리 주님은 그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리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말씀은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입니다.
우리는 최근 과학의 발달로 이 우주의 나이가 얼마 정도 되는지를 압니다. 또 빅뱅 10의 몇 초 후부터 우주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도 압니다. 원시 우주가 어떻고, 원시 우주에서 현재의 우주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 그런 가설들도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으쓱해하면서 마치 우리는 이 우주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아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피조물이고,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고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시작과 목적을 모릅니다.
우리는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를 관찰하고 원자와 전자의 실제 사진도 보지만, 그 이상은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빛이 있어야 그 이하의 세계를 볼 수 있는데, 빛의 광자는 그 세계를 간섭하고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파동으로 존재하는 그 세계는 빛이 비추어지는 순간 입자로 변하고 물질이 됩니다. 과연 우리가 물질의 경계를 넘어선 그 세계를 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주에 근원적인 몇 가지 힘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핵력, 전자기력, 중력... 그러나 우리는 그 힘들이 왜 있고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왜 우리는 전자들이 원자핵 주위를 그렇게 무서운 속도로 지금도 회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근원적인 그 힘이 없다면 원자핵과 전자는 순식간에 붕괴되고, 우주는 소멸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 주님께서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과학적인 진술은 아니죠. 우리 이해의 범주 밖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다만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우리 주님을 찬송하고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세 번째 말씀은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다’입니다.
예전에 삼위일체를 잘못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태양 본체이시고, 예수님은 빛이시고, 성령님은 열이시다...’ 이런 설명은 대단히 잘못된 설명이었고, 지금은 이렇게 설명하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삼위일체를 오해하는 분이 아직도 있다면, 이 말씀도 이렇게 오해하실 것 같습니다. ‘아~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영광의 광채시구나, 아~ 예수님은 하나님 본체가 아니라 그 본체의 형상이시구나...’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영광 그 자체이시므로 그 광채가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하나님 본체이시므로 그 본체의 형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도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2,000년 전 이 땅에 오셔서 역사적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분이 어떻게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성자 하나님이신지... 그래서 어떻게 그런 하나님이 우리 위해 이 땅에 오시고 그렇게 죽으셨는지...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높으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하는, 지극히 높으신 예수님에 대한 이 말씀을 가지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이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네, 우리가 이 말씀 앞에 해야 할 일은 조용히 무릎을 꿇고 이런 예수님을 우리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은 언제나 우리의 이해와 이성과 함께 가는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의 신앙과 믿음은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 앞에서는 홀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주님의 신실하심을 알기에, 다 이해되지 않아도 지극히 높으신 주님을 찬송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치 저 멀리 밤하늘에 있는 별빛 같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손을 뻗쳐도 잡을 수 없는 별빛입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별빛입니다. 그러나 그렇지만 또 그걸 안 본다고 우리 삶에 지장이 있는 그런 별빛도 아닙니다.
아무런 지장이 없죠. 2,000년 전에 계셨던 그분이 만유의 상속자이고, 모든 세계를 지으시고, 만물을 붙드시고,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고... 예수님이 그런 분이라는 이 말씀 하나도 몰라도.... 우리가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당장 오늘 내 스케줄이 중요하고, 누구와 만나는 일이 중요하고,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 건지가 중요하죠.
그런 점에서 오늘 말씀은 당장 나에게 필요도 없고 아무 의미도 없는 먼 말씀 같습니다. 사실 나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다 이 땅에 있죠. 그래서 우리는 평생 고개 한번 들지 못하고 이 땅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개를 들어 저 하늘을 보고 빛을 보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의 영혼 속에는 영원한 빛을 바라보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다 이해되지 않고 당장 내 삶에 필요하지 않아도, 오늘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해야 할 일은, 말씀드린 것처럼 조용히 무릎을 꿇고 이런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치 큰 예배당 안에 혼자 있는 사람처럼 이 말씀으로 예수님 앞에 나아가, 우리 주님을 그렇게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당신은 만유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세상 만물을 지으시고, 지금도 세상 만물을 붙드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런 찬송 받으실 주님은 바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우리는 다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입에서 이런 주님에 대한 고백이 흘러나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주님을 내 주님으로 고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예전에 함석헌 선생의 책을 보면서, 그분이 노년에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내 주님이라야 예수님밖에 더 있갔어요?” 그분 특유의 평안도 억양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분은 노년에 장기려 박사가 자신의 신앙을 걱정하면서 묻자,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장기려 박사가 함석헌 선생의 그 고백을 듣고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장기려 박사가 그 고백을 듣고 운 것을 보면, 우리는 그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이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아무리 많은 존경을 받고 아무리 많은 고생을 했다 해도, 그 고백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내 주님이 아니라면, 함석헌 선생은 실로 불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기려 박사님이 함석헌 선생의 대답을 듣고 안심하는 마음에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많은 교회가 있고 많은 신자가 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많지만, 예수님을 그저 예수님으로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그것은 아직 참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어느 날 내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내 주님은 예수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떤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그런 고백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예수님과 참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이 됩니다.
특히 오늘 본문 같이 우리가 다 이해하기 어려운 예수님을 말씀하는 말씀 앞에서도, 우리는 그분을 내 주님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다 몰라도 고백할 수 있습니다. 믿으면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그런 믿음의 마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고백하면, 언제가 우리는 그렇게 찬란하신 영광의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런 은혜와 고백과 영광이 우리 들에핀믿음찬교회 모든 성도님들에게 언제나 있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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