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세상을 이기는 승리

믿음찬교회 0 113 2023.05.28 11:44
세상을 이기는 승리
요일 5:1~5
2023.05.28.

제가 신대원 학생이었을 때, 한 학기 동안 요한일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때 요한일서를 강의해주신 교수님은 신약성경 사본 연구로 학위를 받은 분이셨는데, 한 학기 동안 강의를 잘 해주셨습니다. 그 수업은 제가 신대원 3학년 때 받았는데,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요한일서 본문에 대해 발표 자료를 준비하는 방식의 수업이었습니다. 학생이 해당 본문을 여러 주석을 참고하여 자료를 만들어와서 발표하면, 교수님이 그것을 고쳐주고 정리해주고 그렇게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본문이 그때 제가 맡았던 본문이었습니다. 5:1~12절까지 이 부분을 제가 맡아서, 자료를 만들고 발표를 했습니다. 전도사님들이 신대원에서 어떻게 수업을 받는지... 궁금하시죠? 먼저 본문을 원어로 분석하고 직역합니다. 그리고 주요 단어나 문장을 설명하고, 또 여기에 신학적 견해나 논쟁이 있으면 해설을 넣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해한 본문의 전체 의미를 말하게 됩니다. 요한일서를 그렇게 한 학기 동안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한 학기 수업을 들었지만, 요한일서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한 예로 저는 오늘 본문 1~3절이 앞의 본문에 속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에 형제를 사랑하라는 내용이 여전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단순히 형제를 사랑하라는 내용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든지 중생이라든지 계명이라든지 이런 내용이 더해져서 새로운 말씀으로 나아가는데, 그때는 그것이 느껴지지 못했습니다.
요한일서를 어느 정도 편안히 이해하게 된 것은 학교를 졸업하고 좀 더 성경을 보고 책을 보고 또 이렇게 설교를 준비하면서, 점점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요한일서가 전체적으로 어떤 말씀인지, 지금 사도 요한이 이 말씀을 왜 하는지, 어디서 새로이 말씀이 시작되는지,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래서 여러분도 이런 흐름을 보면서 요한일서를 보시면, 그때 전도사이고 신대원 3학년이었던 저보다 훨씬 더 요한일서를 잘 아는 성도님이 되실 수 있습니다. 그런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고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덧 우리는 오늘 요한일서 마지막 장인 5장에 들어섰습니다. 흐름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래서 지금까지 흘러온 요한일서 말씀을 잠시 간단히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요한일서는 요한복음의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과 같이 서론이 있고 2개의 본론이 있고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가 있습니다.
서론을 지나 첫 번째 본론에서는 공동체를 나간 자들을 염두에 두고, 우리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말씀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 말씀을 통해 그들의 잘못된 모습을 비판하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첫 번째 본론을 통해 우리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어둠에 행하면서 믿는다고 하고, 계명도 안 지키면서 그분을 안다고 하고, 사랑도 없으면서 교회라 하는 것은 전혀 기독교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본론으로 넘어오면, 이제 사도 요한은 공동체에 남아있는 초라한 신자들을 염두에 두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 두 번째 본론에서는 특히 2가지 내용을 중점적으로 말씀하게 됩니다. 하나는 그 남은 신자들이 서로 사랑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남은 신자들이 좀 더 확신을 가진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3:11부터 두 번째 본론이 시작되는데, 그 첫 번째 내용은 가인의 후손과 예수의 후손이었습니다. 너희는 예수의 후손이 되어 사랑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로 너희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세 번째로는 너희는 영들을 분별함으로 다시 한번 확신의 사람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는 우리가 지난 2주간 살핀 바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여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네, 지금까지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을 해왔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죠. Q.T.도 있고, 성경공부 교재를 가지고 공부할 수도 있고, 장별로 내용을 정리해 볼 수도 있고, 성경 100독 하는 방법도 있고... 한 때 저는 원어로 성경을 보면서 제 나름대로 번역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이해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구조와 흐름과 문맥을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그 이유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성경 저자들이 구조와 흐름과 문맥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뜻을 이해하고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본론을 이렇게 말씀해온 사도 요한은 이제 오늘 본문으로 넘어오게 되는데, 오늘 본문을 포함하여 1~13절까지는 두 번째 본론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한 번 맞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무엇을 말씀하게 될까요?
네, 돌아보면 사도 요한은 지금까지 두 번째 본론을 이런 순서로 말씀했습니다. 사랑, 확신, 사랑... 그러면 이제 무엇을 말씀하실 차례일까요? 네, 이제 사도 요한은 1~13절까지 마지막으로 확신을 말씀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5:1 오늘 본문을 시작하면서, 믿음을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이렇게 말씀을 시작한 사도 요한은 5:1~13절까지 ‘믿는다’는 말씀을 모두 7번 합니다. 요한일서 전체로 ‘믿는다’는 말씀이 총 10번 나오는데, 이 마지막 부분에 무려 7번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요한이 이제 마지막으로 신자들을 향하여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의 확신의 사람들이 되도록, 마지막 힘을 다 쏟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요한의 이와 같은 마음을 헤아리면서, 오늘 본문을 읽어야 하겠습니다.

1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는 올바른 믿음은 중생 즉 거듭남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올바른 믿음과 중생은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이렇게 사도 요한은 1절에서 믿음과 중생과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을 하나로 말씀합니다. 그리고 2절로 넘어갑니다.
2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여기서 사도 요한은 계명이라는 새로운 내용을 추가합니다. 그리고 1절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과 계명 준수를 하나로 말씀합니다.
3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3절 말씀은 2절 말씀과 같은 내용입니다.
이렇게 해서 1~3절 말씀은 믿음과 중생과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과 계명 준수... 이 5가지를 모두 다 하나로 통합하고 있습니다. 본래 똑똑한 사람은 분석하고 쪼개고 나누고 하지만, 그러나 대가는 서로 연결하고 전체를 말하고 하나를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데 사랑이 없거나, 사랑은 있는데 계명이 없거나, 거듭났다는 구원의 확신은 있는데 사랑이나 계명이 없으면...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죠. 우리 신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런 모든 것이 하나가 될 때,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1~3절을 말씀한 사도 요한은 이제 4~5절에서 새로운 내용으로 나아갑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믿는 자의 믿음의 승리입니다. 이 내용은 믿는 자의 확신에 대해 말씀하는 1~13절 전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긴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니카오’이고, 승리라는 말은 ‘니케’입니다. 그래서 이긴다는 말과 승리라는 말은 같은 말인데, 요한일서 안에는 이긴다는 말이 6번, 승리라는 말이 1번, 이렇게 총 7번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같은 요한문서인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 전체로 확대하여 찾아보면, 요한복음에 1번, 요한계시록에 17번 정도 나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네, 요한복음에 1번 나온 말씀이 시간이 지나서 요한일서에 7번이 나오고,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서 요한계시록에 17번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사도 요한과 사도 요한의 교회 공동체는 우리 믿는 자의 믿음의 승리를 특별히 말씀하는 사도와 교회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사도 요한은 이 말씀을 어떤 의미로 하는 걸까요? 우리 믿는 자들이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이 말씀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이 말씀을 최초로 한 분을 찾아야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말씀을 특별히 사용한 분이지만, 그러나 이 말씀의 원조는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일까요? 사도 바울일까요? 네, 사도 바울도 승리라는 말과 이긴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였지만, 그러나 그분도 원조는 아닙니다.
네, 이 말씀을 처음 의미있게 말씀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처음 하셨는데, 놀라운 점은 그 시간입니다. 승리를 말할 수 없는 가장 어두운 시간과 상황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은 그 예수님의 말씀을 유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마태복음에도 이긴다는 말은 나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이긴다는 말은 다른 단어입니다. ‘승리한다, 정복한다’는 의미의 니카오를 말씀하는 곳은 요한복음이 유일합니다. 그 말씀은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시면서 하신 긴 말씀의 맨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때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불과 몇 시간 남겨두신 때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잡혀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시게 되는데, 이런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예수님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혹 어떤 분은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키는 의미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당연히 승리이죠. 그러나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 골로새서 말씀을 참고해야 합니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네, 예수님의 십자가 자체가 승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그 승리는 바로 십자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십자가가 승리가 될 수 있을까요?
첫째, 그것은 세상에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것은 세상의 폭력적인 방법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선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것은 악한 세상과 성전당국에 맞서 타협하지 않은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그것은 승리였습니다. 흔히 불교에 생과 사가 없다고 말합니다. 생사가 따로 없고, 생사를 초월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기독교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도 승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사도 요한이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승리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잘 되고 부자가 되고 인정 받고 두각을 나타내고 높아지고 ... 그런 것이 승리가 아닙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잘 되어도 그것은 우리가 그저 잘 된 것이고 감사한 일이지, 승리는 아닙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우리가 세상에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세상의 방식에 동화되지 않고, 세상에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일관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부산의 평범한 곳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신자들이지만, 우리나라의 부와 권력과 지식이 다 모인 곳에 가면, 거기에 얼마나 세상의 유혹과 세상의 방식과 세상의 힘이 작용하고 역사하는지 모릅니다. 마지막 때에 사탄과 악한 영은 세상의 중심에서 활발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세상적인 방법을 다 하는지 모릅니다. 권력과 부를 가지기 위해 얼마나 인간적인 노력과 최선을 다하는지 모릅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합니다. 자식을 좋은 대학과 좋은 곳에 보내기 위해 얼마나 세상적인 가치관과 노력을 다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죄를 보지 않고 매일 매일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그렇게 세상의 중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거짓말하고, 자기 합리화하고, 설교는 설교로만 듣고, 하나님은 우상처럼 박제된 하나님으로 여기고, 마치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하듯 세상 속에서 세상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승리자가 아니라 실패자와 패배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유혹에 굴복하거나 세상과 동화되거나 세상과 타협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이익이 많이 남습니다. 이렇게 처신하면 당신에게 유리합니다...’ 그런 유혹이 있으면 하나님이 ‘괜찮다’ 말씀하실지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접촉사고를 당했을 때, 이상이 없는데 며칠씩 병원에 입원하고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자신을 속이고 돈을 받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오로지 이윤과 돈을 쫓고 가옥에 가옥을 더하고 전토에 전토를 더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지금은 돈을 쫓는 시대이고 투자와 투기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구분하십니다.
시류에 따라 강한 자의 편에 서서 흰 것을 검다고 하고 검은 것을 희다고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피해자의 편에 서지 않고 가해자의 편에 서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세상은 돈이면 다 되고 힘과 권력이면 다 되는 세상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런 말을 우리 입으로 하며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살아있는 믿음은 심지와 같고 뼈대와 같습니다. 심지가 없고 뼈대가 없는 사람은 세상 속에서 시대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우리가 세상의 물결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세상의 가치관을 이기고, 세상의 방법을 이기고, 다수의 힘을 이기고,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 우리의 길에 성공과 실패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곧 승리이듯이, 그 길을 걷는 것이 곧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차라리 고난과 실패의 쓴잔을 마시더라도, 세상과 동화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꺾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제가 요즘 자주 듣고 있는 한국사 강사 한 분이 있습니다. 75년생이라고 하니까 아직 50이 되지 않는 젊은 분인데,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 잘 몰랐던 많은 내용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분이 서울대 국사학과를 나오고 석사까지 하셨지만, 그 이상 공부를 하지 못하고 학교를 나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에는 이너그룹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이너그룹에 들지 못하면 학계에 발을 들여놓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개인적으로 강사 활동을 하고 강의를 다니고 계속 공부를 했는데, 다행히 최근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한국 근현대사는 매우 미묘한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사는 지금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역사 문제입니다. 한국교회의 역사도 그와 같은 한국 근현대사와 맞물려 지금도 여전히 왜곡된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사나 한국 근현대사나 이렇게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사람은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습니다.
돌아보면, 예수님도 그런 모습이셨습니다. 그 능력에 그 말씀에 그 리더십에 그 수많은 따르는 사람들에 ... 예수님은 존경받으며 한 시대를 잘 사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지배와 성전당국의 정치와 종교와 율법 왜곡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그들을 거슬러 하나님의 뜻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언제나 역사를 살펴보면, 세상을 따라 사는 사람이 항상 다수입니다. 시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그래서 나중에 역사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세상을 이기는 그러한 영적인 소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믿음을 주셔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며 살아가는 신앙이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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