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서로 사랑하자 (2)

믿음찬교회 0 74 2023.05.21 11:51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2)
요일 4:11~21
2023.05.21.

지난 주일 우리는 요일 4:7~12절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사도 요한의 말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사도 요한의 말씀은 4:7~21절까지입니다.
사랑에 대한 사도 요한의 말씀이 4:7~21절까지이고 이 전체가 한 문단임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맨 처음 7절과 마지막 21절에 같은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7절에 ‘서로 사랑하자’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21절에 ‘형제를 사랑할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개의 말씀이 전체 말씀을 앞뒤로 감싸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에 대한 사도 요한의 말씀이 7절에서 시작하여 21절까지 하나의 내용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지난 주일에 12절까지 살펴본 것은 이 말씀의 반 정도만 살펴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주일에 이어서 21절 말씀까지 마저 살펴보고, 과연 사도 요한이 사랑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7절에서 사도 요한은 사랑의 시작을 말씀했습니다. 8절에서는 하나님의 본질을 말씀했습니다. 9~10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말씀했습니다. 11절에서는 서로를 사랑하는 사랑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12절에서는 하나님을 보는 것과 사랑의 완성을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서로 사랑하라는 이 11~12절 말씀이 중요합니다.
사도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위해, 사랑의 시작을 말하고 하나님의 본질을 말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그렇게 여기까지 말씀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11~12절 말씀이 중요한데, 이 말씀이 중요한 만큼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인지,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이 되는지... 이 말씀으로는 부족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보는 것에 대해선 더 자세히 말씀하지 않는데, 이 내용은 제가 지난 주일에 요한복음 15장을 통해서 설명 드렸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의 관심사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완성되는지... 이 내용을 말씀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사도 요한은 이 내용을 곧바로 말씀하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이 사랑의 완성에 대한 말씀을 다시 하는 것은 17절입니다. 우리 생각엔 12절에 이어서 바로 그 내용을 말씀할 것 같은데, 묘하게도 사도 요한은 13~16절까지 4구절이나 다른 주제를 말씀합니다.
13~16절 전체는 한 마디로 우리의 믿음의 확신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13절 성령을 통해서, 14절 사도의 증언을 통해서, 15절 우리의 고백을 통해서, 16절 사랑을 통해서... 이렇게 우리는 확신을 갖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와 같은 13~16절은 이미 사도 요한이 앞에서 했던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미 앞에서 다 했던 말씀을 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했던 말씀을 반복할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뭔가 이상하게 보입니다.
더구나 이 반복되는 말씀은 이 말씀을 신중히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글의 논지를 잃게 하고 초점을 흐리게 하고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글이 뱅글뱅글 맴도는 것 같고 시원하지 않고... 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요한일서의 높은 문학적인 특징입니다.
제가 지난번 1장 말씀을 전할 때, 오른쪽 여우 왼쪽 여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평범하게 글을 쓰지 않고, 만일 이렇게 하면 만일 저렇게 하면... 사도 요한은 서로 대조를 이루는 ‘만일’이라는 문장을 6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평범하게 글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여기서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 앞에서 했던 말씀을 반복하며 일부러 문맥을 이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음악에 비유하자면, 음악이 아주 아름다운 선율과 정확한 리듬으로 진행하다가, 갑자기 어느 지점에서 선율이나 리듬이나 박자나 이런 것들이 막 뭉개지면서 일부러 요란하고 불편하고 힘든 구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일거에 다시 원래의 아름다운 선율과 경쾌한 리듬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름다운 음악을 만끽하게 되죠.
네, 그래서 우리가 13~16절을 읽으면서 ‘사도 요한이 왜 했던 말씀을 반복하시지, 왜 자꾸 뭔가 글이 맴도는 것 같지, 혹시 나이가 많으셔서 이렇게 말씀하시나...’ 이런 마음이 들게 되는데, 그러나 17절에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의 문맥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 말씀은 12절 말씀과 다시 정확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네, 이렇게 사도 요한은 17절에서 다시 사랑의 완성에 대해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네, 이와 같은 17절과 18절 말씀은 사랑의 완성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날을 위해서,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사랑은 우리 안에서 완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사도인 사도 요한이 우리의 구원을 사랑으로 설명하는 고차원적인 말씀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의 구원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구원은 중생으로도 설명할 수 있고, 열매로도 설명할 수 있고, 하나님의 형상으로도 설명할 수 있고, 성화로도 설명할 수 있고, 천로역정처럼 하나님의 나라로 향하는 순례길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의 구원은 사랑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 사랑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도달하여, 그 사랑이 우리를 죄악의 사람에서 사랑의 사람으로 만들고, 그래서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가 변화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완성되는 것이 곧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17~18절에서 사랑의 완성이 필요한 이유를 말씀한 후에, 이어서 19~21절까지 마지막으로 사랑의 완성이 무엇인지를 말씀합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사랑의 완성을 3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 이 3가지 사랑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사랑은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마지막 21절에서 이 전체 말씀의 결론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사도 요한은 이것을 주님의 계명이라고 말씀하며 이 전체 말씀을 마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와 같은 오늘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과 은혜를 받아야 할까요?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과 목적을 아는 성숙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사야서 55장에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그분의 뜻을 이루며 그분의 일을 온전히 성취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목적을 다 이루게 됩니다. 사람의 말은 수시로 땅에 떨어지죠. 말에 아무런 믿음과 힘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으로부터 나온 사랑은 헛되이 그분에게로 돌아가지 않고, 그 사랑의 계획과 목적을 온전히 성취합니다. 
그 사랑의 계획은 자신의 아들을 사랑의 증거로 이 세상에 보내시고, 그 아들을 통해 이 세상에 사랑을 심고 사랑의 백성을 만드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과 목적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그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져 우리의 모든 두려움을 내쫓고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과 목적은 마침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과 목적을 이해하는 성숙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는 만큼, 우리는 구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자들도 그날에 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 신자들이 의외로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날에 아무런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고, 그러므로 담대함이 필요하고, 그러므로 사랑의 완성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4장에서 같은 말씀을 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요한계시록 20장 말씀도 동일합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자도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다만 그 심판이 구원에 대한 심판이냐 삶의 행위에 대한 심판이냐... 그런 차이가 있는데, 우리 믿는 자들이 받는 심판은 구원에 대한 심판은 아니고 삶의 행위에 대한 심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막연히 쉽게 생각해선 안 됩니다. 그저 예수 믿으면 다 쉽게 구원받고 천국 간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 구원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도 그분을 따라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거듭나고 변화되고 사랑의 완성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구원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이 곧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입니다. 사랑이 완성되어야 구원이 완성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해질 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만 하는 신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사랑이시다라는 말씀을 잘 압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의 사랑은 놀라운 사랑이라고 잘 압니다. 그러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통해 천국에 가는 것만 압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과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와 사랑의 공유와 교제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우상 신들과 매우 다른 하나님입니다.
인간의 사랑을 원하는 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의 교제를 원하시고 사랑의 공유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기를 사랑할 뿐만 아니라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랑의 신입니다. 사랑의 나라를 만드시고, 사랑의 세상을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할 때, 일찍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신명기 말씀은 단지 율법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말씀은 율법을 뛰어넘고 율법적 의무를 뛰어넘는, 우리 신앙과 사랑의 본질적인 말씀입니다. 사랑은 본래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방적 사랑은 사랑이 아니죠. 서로 주고받고 나누고 교제하고 함께 기뻐할 때,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에 눈을 뜨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너무나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해 편견을 갖거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종교적 의무라고 힘들게 생각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삶과 마음을 사랑으로 두드리시는 하나님을 향해 여러분도 마음의 문을 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해 여러분의 사랑의 손을 내미는 성숙한 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신앙은 어떤 분이 말씀한 것처럼, 종의 신앙을 벗고 아들의 신앙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엎드려 절하고 받기만을 바라는 종의 신앙으로 살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처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과 사랑의 대화를 하고 하나님께 사랑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아들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고 기뻐하시는지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실천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 중심의 생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하나님과 나누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생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선택하고 결정하는 성숙한 모습, 나에게 잘못한 이를 믿음으로 용서하는 모습, 힘든 사람을 돌아보는 마음과 손길,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은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런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의 완성에 이제 마지막 하나가 남았습니다. 사랑의 완성은 우리가 하나님만 사랑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퍼즐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공동체 내부적으로 우리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을 말하지만, 넓게 보면 우리가 세상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사랑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사는 것까지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내부적으로 우리 믿는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자 복음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외부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내부적으로 사랑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교회의 사명을 전도와 선교에만 두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도와 선교와 복음 전파만 열심히 하고, 내부적으로 서로 사랑하고 사랑을 나누고 하나 되는 일은 소홀히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의 대안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없는 것이 교회에 있고, 세상이 채울 수 없는 것이 교회에 있고... 교회는 그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내 힘든 영혼이 편안히 쉴 수 있고, 내가 비록 못난 사람이어도 사랑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랑의 대안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과 같은 곳이 되어서, 사랑보다는 계급이 느껴지고 돈이 느껴지고 차별이 느껴지고... 그런 곳이 된다면, 교회는 주님의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조그마한 교회라도 사랑의 교회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늘 선포된다면, 그 교회는 서머나교회 같고 빌라델비아교회 같은 귀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목회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서로 돌아보고 서로 사랑의 말을 하고 서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그렇게 예배와 모임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가 작을 땐, 그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커지면, 조직이 생기고 계급이 생기고 정치가 생기고 사랑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베소 교회도 그렇게 해서 주님의 두려운 책망을 받았습니다. 다 잘했는데, 그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요즘 신앙의 트렌드가 개인 신앙이 강조되고 교회 신앙을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개인 신앙이 물론 중요하고 코로나 영향도 있고 좋은 교회가 많이 없고 여러 가지 이유가 많지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교회가 무너지면 개인도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교회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함께 신앙을 위해 노력할 때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주 설교를 들어주시는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제가 설교할 수 있고, 제가 목사로서 설교하기 때문에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제가 마른 막대기와 같이 개인적으론 아무것도 아니지만, 여러분이 있고 교회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좋은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교회가 많은데, 적당히 다니고 내가 원하는 아무 교회나 가면 되지... 그런 마음으로 교회 다니시면 안 됩니다. 어느 교회를 다니시더라도, 이곳은 내가 사랑하고 섬기고 은혜받는 영적인 보금자리이다... 그런 마음을 꼭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요한은 남은 신자들이 그런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공동체를 지켜가기를 원하고, 또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사랑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내용에 대해선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기 때문에, 더 말씀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요지는 사랑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만 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성숙한 믿음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청년들도 사랑받고 사랑하는 그런 아름다운 사랑을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도 부모님께 사랑을 표현하고 보답하는 사랑을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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