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심판의 주

믿음찬교회 0 56 2022.11.10 12:47
심판의 주
계 19:11~13
2022.11.04.

앞 본문에 어린 양의 혼인 잔치와 신부에 대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어지는 오늘 본문에 드디어 신랑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백마를 탔고 눈은 불꽃 같고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네, 우리는 이렇게 강렬하게 등장하는 이분이 누구인지 압니다. 바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여자가 해산한 아들로 하늘로 올려졌고, 하늘 보좌의 어린 양으로 등장하셨는데, 이제 역사의 마지막에 완전하신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장엄한 환상과 계시의 요한계시록의 주인공이 백마를 타고 드디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매우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자세히 말함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이 어떤 분인지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어떠한가? 크게 2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시는데, 오늘은 그 첫 번째 모습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모습은 최후의 심판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백마를 탄 분으로 등장하시죠. 오늘 말씀을 자세히 읽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치 백마를 탄 멋진 신랑이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랑스런 신부의 멋진 신랑이 아닌, 지금 강하신 최후의 심판주로 등장하고 계십니다.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그가 피뿌린 옷을 입었는데...”
네, 이 말씀은 우리가 알던 기존의 예수님 모습과 많이 다릅니다. 낯설고 생소하죠.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대개 어떤 모습으로 아십니까?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주로 십자가의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으로 기억합니다. 그것은 고난 받으시고 연약하신 모습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의 시각으로 이해할 때 주로 떠올리게 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을 설명하는 바울서신이 주로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 대표적인 말씀인 빌립보서 2장이죠.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 말씀은 매우 아름답고 은혜로운 말씀이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이 말씀은 예수님을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십자가와 사랑과 구원의 예수님으로만 이해하게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모습은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계셨던 예수님의 실제 모습을 바울 서신을 지나 복음서를 볼 때,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살아있는 생생한 모습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당시 유대 땅의 정치 사회 및 불의한 현실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치열하게 전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거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서를 통해 그런 예수님의 생생하고 치열하신 모습을 발견하면, 우리 신앙은 한층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복음서에서 멈출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은 역사에 마지막 날에 진정으로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예수님은 다시 오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최종적으로 구원하시고 동시에 악한 자를 최종적으로 심판하시는, 그런 능력과 위엄의 주님으로 오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거기까지 가야 완전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최후의 심판주 묘사하고 있는 오늘 본문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최후의 심판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라는 작품이 생각납니다. 미켈란젤로는 그 훌륭한 작품을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 옆에 있는 시스티나예배당 전면에 그렸습니다.
미켈란젤로의 그 작품을 직접 가서 보면 큰 감명을 받습니다. 그 예배당의 천정에는 천지창조를 비롯한 천정화가 가득 그려져 있고, 앞쪽 벽에는 최후의 심판이 벽 전체에 그려져 있죠. 그 풍성함과 웅장함과 정교함은 보는 이를 감탄하게 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미켈란젤로는 그 그림의 중앙에 최후의 심판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그렸습니다. 그가 그린 예수님은 단호한 얼굴로 오른손은 위를 향해 들고 왼손은 아래를 향해 막고 있는 모습입니다. 미켈란젤로는 그렇게 예수님을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은 예수님의 최후의 심판을 요한계시록이 아니라 단테의 신곡의 내용을 배경으로 르네상스 화풍으로 그린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작품은 대단한 작품이지만, 성경 말씀과의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결정적인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아무튼 거기에 모두 391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오른쪽에는 천국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고, 예수님의 왼쪽에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맨 아래 가운데에는 지옥의 입구도 있죠. 미켈란젤로는 예수님의 최후의 심판을 배경으로 서서 권위를 주장하고 싶었던 교황 바로 등 뒤에 그렇게 지옥의 입구를 만들어놓았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그런 숨은 작업을 자신의 작품 여기저기에 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튼 미켈란젤로의 최후 심판 그림은 단테의 신곡과 르네상스 분위기를 바탕으로 그려졌고,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다만 일곱 천사의 나팔이나 두 권의 두루마리 책 등 간단한 내용만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작품을 만약 평소 성경을 잘 알고, 그래서 요한계시록 말씀에 충실하게 그렸다면 어땠을까요? 그렇다면 그 그림은 오늘 본문으로부터 20장까지의 내용을 담았을 것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예수님의 최후의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백마를 타신 예수님과 그분의 피에 물든 옷과 하늘의 군대와 최후의 전쟁과 크고 흰 보좌 등을 그렸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 작품은 얼마나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다시 오실 예수님의 심판주로서의 모습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지막에 나타날 새로운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예수님의 모습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요한이 그 환상을 보았고 우리에게 그모습을 이렇게 전달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심판주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이름은 충신과 진실입니다. 이 이름은 신실과 참됨으로 바꾸어 번역할 수 있죠. 그래서 이 이름의 의미는 그날에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공의로 신실하고 참되게 심판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지금 세상이 얼마나 형편 없고 엉망입니까? 정의는 바로 서지 못하고, 악인이 득세하고 잘 사는 어둡고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 분노하고 눈물 흘리고 견딜 수 없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땅의 악과 죄와 불의와 모순을 그날에 우리 주님께서 온전히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믿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세상을 답답해 하거나 힘들어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래 그런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항상 정의에 편에 서서 살아가야 하지만, 그러나 온전한 정의는 그날에 실현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이름도 역시 심판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날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하시고, 특별히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대로 심판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한계시록 같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이렇게 미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예언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으니, 다시 오실 것입니다. 교회는 참된 신자와 함께 마침내 승리할 것입니다. 바벨론은 멸망하고 악인은 다 심판 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에 담긴 이 의미를 알고, 또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