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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과 짐승이 역사하는 2가지 방법

믿음찬교회 0 136 2022.05.24 15:33
사탄과 짐승이 역사하는 2가지 방법
계13:6~15
2022.05.20

우리는 지난주에 사탄과 짐승의 정체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사탄과 짐승이 역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 성경 본문은 사탄과 짐승이 마지막 때에 어떻게 역사하는지 그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2가지입니다. 첫째는 박해이고 둘째는 속임수와 미혹입니다.

사탄과 짐승이 역사하는 첫 번째 방법은 박해입니다. 그들은 마흔두 달의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박해를 겪어보지 않기 때문에 박해의 어려움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신자의 믿음을 좌절시키는 사탄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사탄은 언제나 교회를 박해해 왔습니다. 박해는 사탄과 짐승이 특히 교회 안의 강한 자들과 성숙한 자들을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때 박해를 이기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박해를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사탄과 짐승이 역사하는 두 번째 방법은 속임수와 미혹입니다.
이것은 주로 약한 자들과 어린 자들에게 역사하는 사탄의 방법입니다. 어린 아이는 속이기 쉽죠. 사탄은 약한 자들에게 그렇게 역사합니다. 
그런 사탄의 모습이 12장에서 이미 나온 바 있습니다. 12장은 뱀이 여자의 뒤에서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한다고 말씀합니다. 광야에는 가끔 큰 홍수가 발생하곤 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그런 실제 홍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구약과 여러 유대 문헌 속에서 속임수와 거짓을 말하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거짓 가르침과 속임수로 교회를 변질시키고 무너뜨리는 사탄의 역사를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탄이 사용하는 둘째 짐승이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는 용처럼 말을 하고 큰 이적을 일으키고 심지어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합니다. 이것은 엘리야 선지자를 모방하는 것으로, 마지막 때에 사탄과 짐승은 그런 거짓 기적과 가르침으로 연약한 신자들을 속이고 미혹합니다.
사탄과 짐승이 역사하는 두 방법 중에, 적어도 지금은 박해의 시기는 아닙니다. 반면에 속임수와 미혹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는 사탄의 미혹과 속임수를 잘 분별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번 지방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는데, 저는 지난 지방선거 때 옛 교회 친구로부터 카톡 하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소위 찌라시 카톡인데,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좌파 인본주의 정치인을 좋아하는 여러분은 예수님을 밀고하는 유다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번 헌법 개정에 찬성하고 교육감을 전교조로 뽑고 시장과 도지사와 시의원 및 도의원을 좌파 인본주의자로 뽑을 경우 그들은 헌법과 시 도 조례 및 학생인권 조례를 통해 목사님과 참 성도들을 감옥에 가두게 될 것입니다. 이 영상을 보십시오. 영국의 차별금지법 제정 이후 동성애와 이슬람을 혐오했다는 이유로 목사님이 구속되었습니다...
그것을 보낸 친구는 참 신실한 신자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같은 교회를 다니던 청년 때, 노래방을 가자고 하니 자기는 그런 곳이 영적으로 안 좋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우리가 다 못 간 기억이 납니다. 고지식할 정도로 예수님을 잘 믿는 그런 친구이죠. 그런데 그가 그때 그런 카톡을 보내니 마음이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선거 때마다 그런 카톡이 유독 교회와 신자들 사이에 많이 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보낸 카톡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와 신앙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정치를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동성애나 차별금지 문제로 어느 한쪽을 반기독교로 규정하고, 결국 보수정치인에 표를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 안에는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것이 많습니다.
교회와 교인들 사이에 이런 카톡이 왜 이렇게 많이 돌아다닐까요? 많은 신자들이 분별하지 못하고 쉽게 선동되기 때문입니다. 왜 쉽게 선동될까요? 그것은 오래도록 교회와 목회자들이 신자들에게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원리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열심히 교회를 다녀도 신앙은 뜨겁지만 정치와 사회의 여러 현안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친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 한국교회 전체가 그렇게 한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이렇게 작은 카톡 하나에도 교회와 신자들이 휘둘린다면 더 어려운 정치 사회 문제와 또 본인의 여러 문제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데, 왜 이렇게 어두울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우리 눈을 밝게 하는 말씀인데, 우리는 왜 이렇게 어두울까요? 우리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이 깊고 좋고 성숙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뜻에 밝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대체로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주로 신앙을 뜨거움으로만 가르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령충만도 뜨거운 것이고 믿음도 뜨거운 것이고 그래서 이렇게 신앙을 그저 뜨거운 것으로만 가르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뜨겁지만 어두운 신자들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가 말하는 이상적인 신앙은 성숙한 사랑이고 야고보서가 말하는 이상적인 신앙은 성숙한 지혜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자주 인용하는 다니엘서도 특별히 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부분에서 왕의 진미를 거절하는 다니엘의 지혜를 말할 뿐만이 아니라, 뒷부분에서 많은 종말론적인 말씀 가운데 지혜를 강조합니다.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속임수(부드러운 말)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단11:32),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단12:3),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단12:10) 특히 단 12:10을 보면 악한 자와 선한 자를 대비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악한 자와 지혜 있는 자를 대비합니다. 왜 그럴까요? 분별하는 지혜와 지식이 없으면 마지막 때에 믿음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왜 이렇게 지혜와 지식이 없는 모습이 되었을까요? 그 이유를 찾으려면, 한국교회가 막 시작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많이 빗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근본주의 선교사들의 선교로 기독교 신앙을 처음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신앙마저 곧 일제 강점기 시기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그 어려운 시기 동안 천국 가는 좁은 신앙과 신비주의 신앙과 권력에 부역하는 그릇된 신앙이 일찍부터 만들어졌습니다. 일제는 그런 신앙은 결코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정의를 추구하고 부당한 현실과 불의에 저항하는 참된 신앙은 철저히 막았습니다. 요한계시록 같은 그런 말씀은 읽지도 못하고 전하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깨어있는 목회자는 철저히 탄압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가 과연 하나님의 말씀과 정신과 뜻을 제대로 배운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매우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 교회들은 예수 믿고 천국 가고 잘 되는 구원과 은혜만 알지, 하나님의 나라 속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롭게 살아가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한국기독교는 지금까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많은 인물을 배출했지만, 그리스도인으로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몇 년 전 저는 사랑의 교회 사태가 일어났을 때, 사랑의 교회 갱신위원회에 속하는 한 분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랑의 교회 갱신위원회는 사랑의 교회의 현 담임목사인 오정현 목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은 오랜 시간 오정현 목사를 반대하며 싸웠죠. 오정현 목사가 목사가 된 과정이라든지, 학력이라든지, 논문이라든지... 많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들 중 한 분이 자신들의 투쟁을 돌아보며 이런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옥한흠이 만든 괴물은 오정현 뿐인가?”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신들은 지금까지 오정현 목사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돌아보니 그런 오 목사를 후임 목사로 선택한 옥한흠 목사가 잘못되었고, 나아가 그런 옥한흠 목사 밑에 배운 자신들도 다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옥 목사님은 존경받는 목사님 중 한 분이지만, 그러나 그분의 신앙과 신학은 십자가와 복음에 대해선 뜨거워도 사회정의나 이웃에 대해선 관념적이고 무지했고, 한국의 성장 속에 성공과 성장의 궤도를 자연스레 따르는 모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그런 신앙을 무분별하게 따랐고 그 결과로 그런 모습과 성향의 오 목사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사랑의 교회가 그런 교회가 아니었다면, 오 목사가 그렇게 자신의 학력과 경력과 논문과 목사안수를 속이며 후임목사가 되려고 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옥한흠 목사 아래에서 오정현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 모두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수년간 거리와 마당기도회 등에서 피켓을 들고 전단지를 돌리며 싸운 시간을 통해 편안한 예배당에 앉아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예수님의 예언자적 신앙에 대해 알게 되었다며 글을 마쳤습니다. 
여러분, 한국교회의 대표적 목회자로 추앙받는 옥한흠 목사님에 대해 이 정도로 반성적 비판을 하긴 쉽지 않습니다. 네, 옥한흠 목사님은 분명 훌륭한 목회자입니다. 그래도 그분의 목회에 잘못된 점은 없을 수 없겠죠. 옥한흠 목사님과 그분의 목회가 이 정도로 비판받는다면 다른 대다수 목회자들은 더 말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분별과 지혜를 가지고 우리의 교회를 돌아본다면, 많은 교회가 알게 모르게 왜곡된 복음과 신앙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배후에는 사탄과 짐승의 역사가 있습니다. 사탄과 짐승은 교회의 순수한 가르침과 말씀을 언제나 두려워하고 활발히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교회는 무엇을 자랑하거나 바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시 잘 배워 바른 신앙을 정립하는 것이 급선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밝고 성숙하시고, 바른 삶을 가지시고, 그리하여 사탄과 짐승의 거짓을 이기시는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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