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두 증인의 권세와 예언과 죽음

믿음찬교회 0 104 2022.04.26 17:24
두 증인의 권세와 예언과 죽음
계 11:1~13
2022.04.22.

우리는 지난 몇 주에 걸쳐 10장과 11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잠깐 돌아보면...
10장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한 힘센 천사의 2가지 메시지를 말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그 비밀’이고 다른 하나는 ‘작은 두루마리’였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그 비밀’은 교회의 고난과 패배를 의미하고, ‘작은 두루마리’는 세상을 향한 요한의 예언을 의미했습니다.
이와 같은 10장의 내용은 11장으로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11장에는 ‘짓밟히는 성전 바깥마당’과 ‘두 증인의 예언’이 나옵니다. ‘짓밟히는 성전 바깥마당’은 교회의 고난과 박해를 의미하고, ‘두 증인의 예언’은 교회의 예언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기간들은 각각 42달과 1260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서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부터 온 동일한 시간이었습니다. 즉 그것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모든 종말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이상과 같이 전체적으로 10장과 11장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런 전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11장 말씀의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2절 말씀을 다시 보면, 여기에서 말씀하는 ‘성전’과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과 ‘성전 바깥마당’과 ‘거룩한 성’은 모두 비유적인 말씀으로 동일한 하나의 의미입니다.
‘성전’은 지상의 하나님의 공동체 즉 교회를 의미합니다.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은 교회가 고난받고 희생당하며 존재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짓밟히는 ‘성전 바깥마당’과 ‘거룩한 성’은 교회가 종말의 시간 동안 일정부분 계속 타격을 입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3절에서 이제 교회는 두 증인으로 나타납니다. 두 증인이 그렇게 교회 공동체를 의미하는 이유를 다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1) 두 증인은 4절에서 두 촛대라고 표현되고 있죠. 촛대는 요한계시록 1장에서 이미 교회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나온 바 있습니다.
2) 두 증인은 7절에서 짐승과 전쟁을 합니다. 이것은 두 증인이 결코 두 명의 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3) 두 증인의 죽음은 9절 이하에서 세상 모든 불신자들에게 목격됩니다. 이것 역시 두 증인이 결코 두 명의 개인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4) 두 증인의 예언 기간은 1260일입니다. 이것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42달, 3년 반과 동일한 시간으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 종말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두 증인의 예언 기간은 교회 시대와 일치하기 때문에 교회로 보아야 합니다. 
5) 요한계시록 곳곳에서 교회 공동체는 예수에 대한 증언의 공동체로 나옵니다. 그래서 두 증인을 교회로 보아야 합니다.
6) 두 증인은 6절에서 엘리야와 모세의 능력을 동일하게 부여받고 마치 쌍둥이같은 한 사람처럼 사역합니다. 두 증인은 예언자적 쌍둥이로서, 각각 따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두 증인은 교회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상과 같은 해석을 바탕으로 두 증인을 마지막 때의 교회로 이해하여야 하겠습니다. 
3절에서 두 증인은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증언과 예언이 기본적으로 심판의 메시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심판의 메시지는 비록 우리가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지만, 그 복음의 바탕에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 이 두 증인은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스가랴서 4장 말씀으로부터 온 내용입니다. 스가랴서 4장에는 순금 등대 환상이 나옵니다. 그 순금 등대 옆에는 그 등대의 등잔에 기름을 공급하는 두 감람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종말의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능력을 공급받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고 늘 힘차게 사역해야 하겠습니다.

5절에서 이 두 증인은 대적과 원수를 제압합니다. 그들을 향해 입에서 불이 나오고 삼켜버리고 그들을 죽입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영적전쟁을 의미합니다. 입에서 불이 나온다는 비유적인 표현은 그들을 향한 심판과 정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날선 검이 나온다는 말씀이 있죠. 네, 그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종말에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그런 영적인 권세를 가지고 원수 및 대적들을 심판하고 승리하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6절은 두 증인의 권능을 엘리야와 모세의 권능으로 묘사합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을 심판하기 위해 비가 오지 못하게 했고, 모세는 바로 왕을 심판하기 위해 물을 피로 변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교회가 그런 권능으로 세상을 심판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 말씀은 종말의 참된 교회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그렇게 세상을 심판하는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와 같은 길을 걷지 않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7절 이하에는 두 증인의 패배와 죽음이 나옵니다. 두 증인이 그 증언을 마칠 때, 즉 교회 시대가 끝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은 두 증인과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것은 사탄이 마지막 때에 자신의 존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말씀입니다.
대체로 교회시대 동안 사탄은 배후에서 역사했지만, 마지막 최후의 시간이 오면 세상 나라와 권세를 통해 전면에 등장할 것입니다. 그때 교회는 박해로 거의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패배와 죽음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8절에 나오는 두 증인의 시체가 놓인 큰 성은 바벨론 성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그렇게 세상 속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처럼 동일한 운명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11절에서 삼 일 반 후에 교회는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삼 일 반이란 시간은 삼 년 반과 비교되는 짧은 시간입니다. 교회는 그런 짧은 시간 후에 하나님의 역사로 극적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여기서 생기가 들어간다는 말씀은 에스겔서의 마른 뼈 환상에서 온 말씀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다 죽은 것 같았는데, 극적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는 12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음성은 두 증인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그들을 정죄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지만, 최후의 순간에 하나님은 그들을 살리심으로 그들의 정당성을 인정하시고 그들의 무죄와 의로움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올라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승인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하는 것은 잘 알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인정과 승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고 싶지만, 요한계시록은 다만 그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대변자이자 증인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여기서 말하고 있습니다.
일부 해석가들은 이것을 휴거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근거가 부족한 휴거보다는 우리는 이것을 신자의 몸의 부활이나 혹은 어떤 극적인 구원 사건으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무튼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동시에 13절에서 세상 사람들은 큰 지진을 경험하고 또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은 최후의 시간에 일어나는 크신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사건들로 인해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은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회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네, 우리는 이상으로 오늘 11장 말씀을 세부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증인의 권세와 예언과 죽음과 부활을 봅니다. 두 증인의 그와 같은 모습은 곧 우리의 모습이고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마지막 때에 어떤 신앙의 길과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종말에 참된 능력과 선한 권세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및 사탄과 영적인 싸움을 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과 사탄은 마지막 순간에 노골적으로 교회를 박해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최종적인 구원과 인정을 바라보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그때에 믿는 자는 세상 속에서 소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지키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쪼록 여러분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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