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일곱 나팔 심판 1

믿음찬교회 0 61 2022.03.01 18:41
일곱 나팔 심판 1
계 8:1~13
2022.02.25

오늘 말씀인 8장 일곱 나팔 심판으로 들어가기 전에, 7장의 한 말씀을 잠깐 보도록 하겠습니다.
7:13~14 말씀입니다. “...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는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제가 너무 쉬운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 용서받는 대속을 의미하고,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의 죄에 대한 예수님의 대속을 말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의 대속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대속 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신자가 고난 받으신 어린 양의 피에 자신의 옷을 씻는 비유적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그분의 고난과 자신의 고난을 일치시키는 신앙적 모습입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흰 옷 입은 그 사람들이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자신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며 살아온 믿음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런 고난과 믿음의 삶을 표현해서, 어린 양의 피로 자신이 옷을 씻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 여기서 요한계시록은 그런 믿음과 삶을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지, 단순히 어떤 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는 필요한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신학이나 교리의 눈으로 읽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일곱 인 심판 다음에 나오는 일곱 나팔 심판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요한계시록의 일곱 심판 시리즈는 3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 3번의 심판 시리즈는 모두 완전한 하나님의 심판 사이클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세 번  반복하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중복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곱 나팔 심판은 시간상 일곱 인 심판 다음에 오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또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여기선 어떤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것인가?...
네, 앞서 일곱 인 심판은 하나님의 심판을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지 않고 동일하게 놓고 말씀했습니다. 종말의 환난은 신자와 불신자에게 동일하게 임하고, 오히려 신자에게 좀 더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에 비해 지금의 일곱 나팔 심판은 하나님의 심판의 초점을 오직 불신자들에게 맞춥니다. 종말의 하나님의 심판이 불신자들, 즉 계속 우상숭배를 하고 끝내 하나님을 거부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곱 나팔 심판이 그와 같은 불신자를 겨냥한 심판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여기엔 신자들이 고난 받거나 어려움을 겪는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둘째, 8:2~5을 보면 일곱 나팔 심판은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의 심판이라는 사실입니다. 천사는 성도들의 기도 후에 향로에 제단의 불을 담아 땅에 쏟습니다. 그렇게 시작되는 심판이 바로 이 일곱 나팔 심판입니다.
셋째, 나팔에 담긴 상징적 의미입니다. 나팔은 여러 상황에서 불리어지지만 일반적으로 전쟁과 관련성이 높습니다. 특히 여러 개의 나팔이 불리는 것은 ‘지금 적과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강하게 의미합니다.
넷째,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 일곱 나팔 심판의 내용이 구약의 하나님의 한 심판 모델을 암시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출애굽의 10재앙입니다.
물론 여기엔 출애굽의 10재앙이 다 등장하지는 않고, 네가지 재앙만 나오죠. 첫째 나팔은 우박 재앙과 비슷하고, 둘째와 셋째 나팔은 피 재앙, 넷째 나팔은 흑암 재앙, 다섯째 나팔은 메뚜기 재앙과 비슷합니다.
그러면 출애굽의 10재앙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네, 그것은 애굽과 바로에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 심판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애굽과 바로에게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보이고 그들의 죄를 묻는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상의 내용을 고려하면 우리는 이 일곱 나팔 심판의 목적과 대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심판의 목적과 의미는 불신자들을 돌이키거나 회개시키는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완악하게 하고 결국 그들을 최후의 심판대에 세우기 위함입니다. 이 두렵고 곤혹스러운 사실은 이 심판이 애굽과 바로에 내렸던 하나님의 심판과 동일하고, 또 그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받은 사명과 동일하고, 또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지 가르치신 이유와 동일합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사명은 백성을 돌이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과 눈과 귀를 어둡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루터기의 희망을 말하는 이사야 6:13 말씀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그러나 최근 NET 영어번역은 이 말씀을 정반대 의미로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 땅에 거룩한 사람들을 상징하는 높은 산당의 성스러운 돌기둥이 내던져지고 성스러운 나무와 아세라 기둥이 파괴됨 같이, 그 중에 십분의 일이 남게 되더라도 그것은 파괴될 것이다.”(사6:13, 의역)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곱 나팔 심판이 바로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이 담긴 두려운 심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을 아십니다. 이 땅에 거하는 사람들을 아십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은혜를 베푸셔도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끝내 거부하고 결코 회개하지 않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전능하심을 보이시고 정의를 실현하시고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기 위해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물론 불신자들 가운데서 일부 사람들은 돌이킬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심판의 일차적인 목적은 어디까지나 그들에 대한 철저한 심판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일곱 나팔 심판의 세부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이 심판의 묘사들이 문자적인 의미인지, 혹은 비유적인 의미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얼핏 우리가 이 내용을 보면,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이 땅의 자연에 대재앙을 내리시는 것 같습니다. 땅이 타버리고, 바다가 피가 되고, 강과 호수들이 쓴 물이 되고, 하늘의 빛들이 어두워지고 ... 그러나 우리가 좀 더 주의해서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이 묘사들은 비유적 표현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셋째 나팔에서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그 별이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별 하나가 어떻게 여러 강들과 물 샘에 동시에 떨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첫째부터 셋째 나팔까지 재앙들은 어떻게 그 모든 피해가 정확히 삼분의 일씩 일어나는 걸까요?
또 넷째 나팔에서 해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는 것이 어떻게 낮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는 결과가 될 수 있을까요?
이런 이상한 표현들은 다섯째 나팔과 여섯째 나팔로 갈수록 더해집니다. 여섯째 나팔에 나오는 말들은 그 힘이 입과 꼬리에 있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대로 상상하기에 매우 이상합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들은 문자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일곱 나팔 심판의 표현과 내용이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결론 내려야 하겠습니다.

이제 오늘 마지막으로 첫째 나팔의 내용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이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이 말씀이 인용하거나 암시하는 구약 본문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대표 본문은 출애굽기 9장과 에스겔서 5장입니다. 
출애굽기 9장엔 애굽의 10재앙 중 우박 재앙이 나옵니다. 거기서 우박 재앙의 목적은  애굽의 식량에 타격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 우박이 밭의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꺾었으되”(출9:25), “그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출9:31~32) 물론 출애굽 우박 재앙이 우박에 초점이 있는 반면에 이 첫째 나팔은 불에 초점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박이 결국 기근을 유발하고, 이 불도 결국 기근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그 둘은 서로 같습니다.
다음으로 에스겔서 5장을 살펴보면, 이 말씀도 기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예루살렘에 대한 엄중한 심판을 말씀하시면서 ‘내가 예루살렘에서 양식을 끊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에게 명하시기를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삼분의 일은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칼로 치고,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요한계시록 일곱 나팔의 ‘삼분의 일’이란 표현이 나온 것 같습니다. 이 에스겔서 말씀에서 성읍 안에서 불로 죽는 삼분의 일은 실제 불이 아닌, 포위된 성 안에서 기근으로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이 첫째 나팔이 가리키고 있는 구약의 두 말씀, 출애굽기와 에스겔서 말씀은 모두 기근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첫째 나팔의 의미가 바로 기근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이 땅에 쏟아져 땅과 수목과 각종 푸른 풀을 태워버립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종말에 불신자들을 기근으로 심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기근은 영적 기근과 실제적 기근을 다 포함합니다. 그래서 모든 갈증과 기근과 결핍은 마지막 때의 보편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목이 마르고 물을 찾고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갈증을 세상적인 방법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이런 갈증과 기근과 기갈의 마지막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은혜와 좋은 공동체를 통해서 늘 생명수 샘물을 풍성히 마셔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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