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하나님의 인 2

믿음찬교회 0 16 01.25 16:05
하나님의 인 2
계 7:1~4
2022.01.21.

우리는 지난주에 144,000과 흰 옷 입은 큰 무리에 대해 살펴보았고, 하나님의 인의 구약적 배경과 의미와 그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인은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우리는 그것을 이 마지막 때에 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일차적으로 이 하나님의 인은 그분의 이름입니다. 14:1과 22:4을 보면 그 인은 그분의 이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4,000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14:1),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22:3~4)
한편, 하나님의 참된 신자들의 이마에 그분의 이름이 있는 것처럼 불신자들의 손이나 이마에는 짐승의 이름이 있게 됩니다. 그 짐승의 이름이 곧 짐승의 표입니다. “...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13:16~18),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14:9~10)
이렇게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는 요한계시록 안에서 뚜렷이 대조되고 있는데, 그것은 일차적으로 각각 하나님의 이름과 짐승의 이름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이름의 인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한은 이 인의 정체를 요한계시록 안에서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경을 해석하는 우리들이 연구하고 찾아야 하는 내용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인과 하나님의 인으로 인치신다는 것이 어떤 실제적인 표식이나 행위가 아닌,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라는 것은 대부분의 해석자들이 동의합니다.
그것은 이단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제가 인터넷을 뒤져보니까, 이 하나님의 인과 관련해서 가장 홍보를 많이 하는 곳은 유월절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서는 하나님의 인을 이렇게 해석하여 말합니다.
‘인자는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라는 말씀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는 말씀과 유월절 식사를 하신 예수님의 주의 만찬을 종합하여, 하나님의 인은 예수님이고 그 예수님을 유월절을 통해 살과 피를 먹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해석이 성경해석으로서 가능한 해석일가요?
우선 하나님의 인을 예수님이라고 하는 해석은 억지스럽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았다는 말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인이라는 말은 다른 말입니다.
나아가 설사 그렇다 해도, 예수님을 꼭 자신들이 행하는 유월절 의식을 통해 믿어야 한다는 것은 신학적 해석이 아닌 자기주장일 뿐입니다. 제가 알기로 그들은 예수님을 중요하게 믿기 보다는, 과거 안*홍이 살아있을 때는 안*홍을 더욱 믿었고 현재는 그의 부인인 어머니 하나님 장*자를 더욱 믿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저 수단일 뿐입니다.
한편, 신*지 이단도 자신들의 해석을 널리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의 이름이나 예수님의 이름이라고 말합니다. 여기까지는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은 요1:1에 ‘말씀’이라고 되어 있고, 그래서 하나님의 인은 다름 아닌 ‘말씀’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진리의 대언자인 이*희의 말씀을 받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네, 이런 그들의 해석은 역시 성경해석이라고 하기 어렵고, 단순한 그들의 주장에 불과합니다.
이 외에도 찾아보면 하나님의 인과 관련한 여러 주장과 해석들이 많이 떠돌고 있습니다.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런 주장들이 나오는 이유는 요한이 그것을 정확히 말씀해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일반 정통 교회는 하나님의 인을 무엇으로 해석할까요?
대부분의 일반 정통 교회는 이 하나님의 인을 성령님으로 봅니다. 그것은 많은 성경구절들이 그것을 성령으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1:22),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이 밖에 요한일서를 보면 그것을 조금 다르게 ‘기름부음’이라든지 ‘하나님의 씨’라든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요한일서는 결국 그것을 성령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3:24)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이 말씀한 하나님의 인을 성령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신약성경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하나님의 인이 어떤 다른 특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성령님이라고 하니, 어떤 분들은 조금 실망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네, 요한계시록은 비록 그것을 묵시의 틀 안에서 신비하게 말씀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떤 마술적인 표지 혹은 어떤 영적인 또다른 표지가 아니라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성령님입니다. 우리는 그 정체를 비밀스럽고 신비하게 말하는 것에 미혹되어 이단으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아무튼 그것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그것이 성령이시라는 점에서 그리 어렵지도 않고, 또 우리는 성령님을 이미 우리 신앙 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이 무엇이냐 하는 그 정체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의 중요한 의미는, 이 마지막 때에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인이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1세기 당시의 박해와 우상숭배의 시기에 많은 명목상의 신자들은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많은 이들이 처형과 투옥과 가난과 불이익과 불안한 미래 때문에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렇게 넘어지는 그들을 보면서 겉으로 보이는 신앙이 아닌,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은 신앙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정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인치심이 있는 신앙이 되지 못하면, 이 어려운 환란의 마지막 때를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 때는 위기와 위험의 연속입니다. 굳이 영적으로 보지 않아도, 매일 사건과 사고가 터지고, 사람들은 양심을 잃고 인간성을 잃고, 가정은 깨어지고, 직장과 사회는 전쟁터 같고, 세상은 정의롭지 못하고 혹독합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어둡습니다. 도처에 상처입고 억울하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그러므로 이런 시대 속에 한 개인이 뜻을 가지고 올바른 신앙과 삶을 사는 것이 무척 어렵습니다. 잘못하면 유혹에 넘어지고 잘못하면 시험에 빠지고 잘못하면 신앙을 잃고 맙니다. 그러므로 오늘 요한계시록 말씀은 신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 성령이신 하나님의 인치심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인과 하나님의 손길로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만이 아닌 성령이신 하나님의 인으로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저는 가끔 어떤 믿는 분을 보면서, 저분에게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려움 중에도 굿굿하고 흔들리지 않고 평화롭고... 믿음의 비밀이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네, 바로 성령님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이신 성령님의 인도와 지배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기도에 힘쓰고, 말씀에 힘쓰고, 사랑에 힘쓰고, 정의에 힘쓰고, 욕심을 버리고, 교만을 버리고... 그렇게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르는 신앙과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성령님도 우리를 영적인 보호와 물리적 보호로 지켜주시고, 우리는 이 마지막 때를 실족하지 않고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인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기름부음과 하나님의 성령이 당신의 영혼과 마음과 삶에 있느냐?...
믿음과 기도와 사랑과 거룩함을 가진 신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선한 양심과 선한 삶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성령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인치심이 있는 신자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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