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독수리 같이 청년 같이

믿음찬교회 0 81 2022.01.04 12:27
독수리 같이 청년 같이
사 40:27~31
2022.01.02.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 배경을 조금 살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야곱과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어찌하여) 네가 이르기를... ”
여기에 나오는 야곱과 이스라엘은 누구일까요?
네, 그들은 지금 바벨론 포로생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지금 무려 70년간의 포로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에 포로 생활을 시작할 때, 그들은 다른 민족과 다른 여호와 신앙과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포로 생활이었지만, 그들은 회당을 만들고 율법을 가르치며 자신들의 공동체와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무려 70년이 지났습니다. 1세대들은 죽고 2세대들은 노인들이 되고 바벨론에서 나고 자란 3세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은 여전히 강력했고 자신들의 포로 해방은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 민족 대다수가 일제강점기 말기 해방과 독립을 불가능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그들도 그 무렵 모든 믿음과 기대를 잃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복역의 때를 끝내고, 그 민족을 다시 일으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이사야서 40장부터 이스라엘을 향해 다시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이사야 40: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자신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은 이제 그들의 70년 포로생활을 끝내시고 그들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을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도록 하시고자 하십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네, 하나님은 그들이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는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바벨론 포로생활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제2이사야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과 회복이 선포되는 제2이사야서의 첫 장의 한 말씀입니다.

그들이 포로생활 동안 얼마나 해방과 귀환을 염원하고 기도했을까요? 그러나 1세대들이 다 죽고 2세대들도 다 노인이 되고 이렇게 세월이 계속 흐른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다 바벨론 사람들이 되고, 초라한 히브리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크고 위대한 바벨론 신들을 다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바람이 불고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자를 통해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하고 지친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우리를 돌아보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이제 능력과 힘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하나님은 지혜와 명철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에 바로 그것이 필요하죠. 해방을 맞이하고 독립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려면 힘과 능력과 지혜와 명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힘과 능력과 지혜와 명철... 특히 힘과 능력을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그런데 여기에 유일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새 힘을 받기 위한 하나의 조건... 그것이 무엇일까요? 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가 되면 새 힘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밖으로 바벨론 제국은 강력하고 해방과 독립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안으로 그들은 믿음을 잃고 약해졌지만...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를 앙망하면’ 너희에게 새 힘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앙망’이 무엇일까요?
네, 이것은 우러러볼 앙, 바랄 망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보는 것이죠. 히브리어로  보면 ‘카바’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그러나 여호와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는 자는 자신의 힘을 바꾸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너무나 멋진 말씀입니다. 누가 이렇게 확신을 주는 말씀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이런 확신과 미래를 말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내려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앙망할 수 있을까요? 네, 이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의 이 절대적인 문제를 앞에 두고, 기도를 포함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보며 기다리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계속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것입니다. 계속 하나님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도 시간에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아니죠. 일상의 삶을 살고 생활을 하면서도 우리 마음 중심에 계속 하나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가 진짜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앙망하면 놀랍게도 우리에게 새로운 힘이 생깁니다. 우리의 지치고 고단한 힘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힘이 우리 안에서 생겨납니다. 갑자기 생기기도 하고, 서서히 생기기도 합니다. 둘 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제가 참 좋아하고 은혜를 많이 받은 말씀 중 하나는 룻기입니다. 룻은 아시다시피 모압 여인인데, 그 시어머니는 나오미이죠. 그때가 사사시대인데, 유대땅에 큰 흉년이 들어 나오미는 살기 위해 남편과 두 아들과 함께 모압 땅으로 이주합니다. 그 결정이 잘못된 결정이었을까요? 살기 위해 모압 땅으로 간 나오미는 그 10년의 세월 동안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고 며느리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아들들이 죽은 마당에 며느리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오미는 이방 땅 모압에서 홀로 살아남은 기구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불행한 사람에 대해, 옛날 미신적인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팔자 사납고... 남편 잡아 먹고 아들 잡아 먹은 여자다...” 참 안 좋은 말이죠. 이런 미신적인 불행한 말이 지금은 많이 사라져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을 믿고 이런 미신적인 저주와 어두운 말이 사라진 줄 믿습니다.
아무튼 나오미는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이방 땅에 살기 위해 갔는데, 남편과 자식 다 잃고 그곳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하고 절망스러울까요? 거기서 더 살 수도 없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도 없고...
룻기는 그런 나오미의 고뇌와 비참한 모습을 자세히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말씀합니다. “...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년쯤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그런데 저는 그런 절망과 고통의 상황 속에서 나오미가 무언가를 했다고 믿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사방이 다 막힌 상황 속에서, 나오미는 간절히 하나님을 찾았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이 곳 이방 땅에 온 것이 혹시 잘못된 결정인지 하나님께 회개하기도 하고... 자신과 남편과 아들들이 하나님께 무엇을 잘못했는지 묻기도 하고... 그러면서 하나님께 홀로 남은 자신을 인도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하고 한 숨 쉬고 기도하고 한 숨 쉬고... 며느리들 한 번 보고 하나님 한 번 바라보고... 그렇게 막막한 시간을 보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나오미는 하나님을 간절히 앙망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의 소식 하나가 나오미에게 들려옵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오랜 흉년을 끝내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풍성한 수확을 주셨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때가 아주 중요한 영적인 순간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나오미는 룻기 말씀처럼 일어나 그 땅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소식을 듣고도 나오미는 그대로 그 땅에 계속 머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갈림길에서 나오미가 일어나려면, 일어나서 그 땅을 떠나 돌아오려면, 그것을 결단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곳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자신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인정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고향에서의 새로운 삶과 사람들의 시선과 수모를 극복할 수 있는 힘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일어났습니다. 일어나 그 땅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합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있던 곳에서 나오고...”
저는 나오미가 이렇게 일어나 모압 땅을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하나님을 앙망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을 붙잡았고,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앙망하는 자에게 이렇게 새 힘을 주십니다.

대개 우리 한국교회 안에는 새로운 힘과 능력 하면, 보통 그것을 주로 기도의 능력이나 성령 체험과 결부시켜 이해합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성령 체험을 하면 그 사람에게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힘의 일부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힘은 은사주의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은사주의적 능력과 힘은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현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힘이라는 것은 더 크고 더 깊고 더 넓고 더 역사적으로 오랜된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생각과 마음과 영혼과 삶에 미치는 큰 능력입니다. 단지 방언을 하고 병을 고치고 신비 체험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삶을 바꾸고 새로운 길로 인도하고 불가능한 것을 결단하게 하는 그런 실제적인 능력입니다.
그런데 그런 힘과 능력을 하나님은 자기를 앙망하는 자에게 내려주십니다. 자기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자에게 내려주십니다. 

제가 목사 안수를 받는 그날은 제가 그 교회를 사임하고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는 그날에 저는 교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사실 목사가 되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큰 책임을 지는 일인줄 알았기 때문에, 저는 싫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삶에 몰리다보니 선교단체 간사를 하고, 간사를 하다보니 신학을 하고, 신학을 하고 나니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안수를 받고 교회를 나오고 나서, 1년 정도 개척 준비를 했습니다. 교회를 시작할 장소와 이사할 집을 구하는데, 그렇게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기간 동안 처음에 저는 새벽시장에서 일을 몇 개월간 했습니다. 오전까지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책을 보고 그럴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일을 해보니 피곤하고 오후에 책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자기 관리도 잘 안 되었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자기 일을 하며 목회를 하신다고 하지만, 저는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게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개척을 준비하며 조금 심적으로 방황하는 2012년 어느 날, 저는 우리 교회에서 가까운 한 기독교서점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한참 둘러보다가 책을 몇 권 고르고 나오는데, 어떤 책 한 권이 제 눈에 띄었습니다. 제목이 ‘그 사람의 서재’ 였는데, 2012년 5월에 막 나온 책이었습니다. 그 책은 여러 저명한 기독교 지식인들이 자신이 감명 깊게 본 책들을 소개하는 책이었습니다.
제가 그 책을 보면서 거기에 소개된 많은 책들을 내가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성경과 신학책만 보고 말씀과 기도만 말하는 목사가 아니라, 뭔가 좀 두루 아는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좀 어려워도 이제 일하는 것은 그만 두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서점을 나와서 여고중학교 옆길을 걷는데, 무언가 새로운 방향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믿음찬교회가 여기 이 자리에 있었죠?
여러분, 제가 그때 그런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생각을 하면서, 이 교회 옆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제가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조금씩 받고 힘을 얻어,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네, 이 말씀에서 말하는 새 힘이란 한 사람의 마음과 심령에 임하는 새 힘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기다리는 그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답답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각을 초월하는 이해할 수 없는 힘을 주셔서 새 길을 걷게 하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하나님께 새 힘을 받아 살아야 합니다.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고 다시 일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의 힘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독수리같이 청년같이 살 수 있습니다.
2022년도 신년에 우리가 이와 같은 소망을 품으면 좋겠습니다. 영원한 청년이 되는 것... 사도바울의 귀한 고백처럼 ‘우리의 겉사람은 날로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세상과 인생 속에서 매일 낡아지고 있습니다. 매일 우리는 힘을 잃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믿음과 영원의 시간 속에서 늘 청년 같이 독수리 같이 살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의 몸은 낡아질지언정, 우리의 정신과 믿음은 낡아져셔는 안 됩니다. 노인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노인이고, 청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청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과 소통하고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믿음의 사람은 그 마음이 늙지 않습니다. 모세처럼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영적인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아무쪼록 이와 같은 귀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2022년도 우리 삶과 우리 교회에 충만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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