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어린 아이같이

믿음찬교회 0 7 11.16 14:56
어린 아이 같이
마 18:1~4
2021.11.14.

등산을 좋아하시고 산행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 줄 압니다. 그분들에게 ‘왜 산에 가십니까?’라고 물으면, 다양한 대답을 하시죠. 건강을 위해서, 산이 좋아서... 어떤 산악인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산이 거기 있어서...
저도 산을 좋아하고 산행을 좋아합니다. 안 가본 산도 많지만, 나름 지리산 종주도 하고 한라산도 몇 번 오르고 설악산도 몇 번 다녀왔습니다. 산을 오르고 찾다 보니, 저도 나름 산을 오르는 이유가 자연스레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왜 산을 갑니까?’라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깊은 산으로 가면, 거기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몇 번의 경험이 제게 있었죠. 지리산 능선의 한 봉우리를 돌면서, 한라산 백록담 밑의 한 대피소를 지나면서, 문득 내가 지금 다른 곳에 있구나 하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꼭 등산이 아니라도 비슷한 경험이 여러분들에게도 많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늘 설교를 이렇게 시작한 이유는... 산으로 치면 지금 우리는 마태복음이라는 산의 매우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어느 덧 마태복음 깊은 곳으로 왔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은 이 말씀 내일은 저 말씀 듬성 듬성 볼 때는 얻을 수 없는 열매입니다.
깊은 곳에 왔다면, 뭐가 있을까요? 네, 우리가 평소 알던 것과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지난 주 말씀도 그렇고, 오늘 말씀도 그렇고... 평소 잘 모르던 마태복음의 깊은 내용을 보게 됩니다. 지난 주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있었던 그 사건... 거기엔 베드로의 깊은 고민과 예수님의 깊은 사랑이 있었죠.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이 감추고 있는 또 다른 말씀이라할까... 우리가 알던 기독교가 아닌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조금 생소한 기독교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속한 마태복음 18장 전체는 마태복음이 말하는 예수님의 5개의 설교 중 4번째 설교입니다. 우리는 산상수훈을 들었고 제자파송을 들었고 천국비유를 들었습니다. 이제 이 4번째 설교의 주제는 공동체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어떤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가... 그것이 18장 말씀입니다.
그런데 18장 말씀의 첫 번째 내용인 오늘 본문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을 잘 이해해야 18장 전체를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4개의 말씀 중에서 단연 핵심 말씀이라고 꼽는다면, 그것은 3절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우리는 예수님의 이 엄숙한 경고를 쉽게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정말 큰 일입니다.
그런데 대체로 우리는 구원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면, 구원은 그리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에 대해 여러 차례 엄숙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19:17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9: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천국과 구원과 영생에 대한 말씀을 쭉 모아보면, 예수님께서는 천국과 구원과 영생에 대해 여러가지로 다각도로 말씀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구원을 쉽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큰 관심을 가지고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가장 큰 잘못과 죄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무지입니다. 모르는 것이 큰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구원에 대해 말씀하시는 이 여러 말씀들을 종합적으로 잘 생각하여, 구원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와 구원을 연관지어서 말씀하시는 것이 마가복음에도 나옵니다. 그래서 먼저 그 마가복음 말씀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막 10:14~15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마가복음 말씀은 오늘 본문과 비슷하지만, 같은 말씀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19:14에 나오는데, 그러나 마태복음 19:14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 같이 받들어야 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 구원과 어린아이를 연관지어서 하신 말씀은 2개입니다. 마가복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 같이 받들어야 한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2개의 말씀을 각각 잘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마가복음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 같이 받들어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이 ‘받들어라’는 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안타갑게도 번역이 좀 잘못되었는데, ‘받들어라’가 아니라 ‘받아들이라’로 고쳐야 합니다. 원어도 그렇고 영어번역도 그렇습니다. 영어로 receive입니다. 그렇죠. 어린아이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받들어 올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 같이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깨끗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자신의 마음과 삶에 받아들이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잘 받아들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린아이들과 같이 순수하고 깨끗한 심령이 되지 않으면, 즉 그렇게 도덕적으로 또 영적으로 순수하고 깨끗한 모습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그와 같은 ‘도덕적 영적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입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같이 사회적으로 낮은 모습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은 작은 자 한 사람에 대해 말씀하시는 5절 이후 말씀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린 아이들이 매우 높은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유대는 어린아이들이 매우 낮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가난하고 못 살고... 어린아이들은 많았던 사회였습니다. 우리나라도 불과 몇십년 전에 그랬습니다. 동네에는 항상 아이들이 많았고, 학교에도 많았고, 교회에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잘 안 보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아이는 지금 1명 밖에 없죠. 그래서 좋은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엔 아이들이 흔했고, 늘 무시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가 크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누가 크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어떤 생각과 가치관이 들어있을까요? 서열, 순서, 계급... 그런 세상적인 생각과 가치관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만 있을까요? 아니죠. 그 뒤에는 권력, 힘, 돈 ... 그런 세상적인 본질이 숨어 있습니다. 권력으로 서열을 정하고, 힘으로 순서를 정하고, 돈으로 계급을 정하고... 세상은 그렇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은 권력도 없고 힘도 없고 돈도 없습니다. 그에 따라 서열도 없고 순서도 없고 계급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형제자매이고, 서로 지체입니다. 누가 높고 누가 낮고 하는 그런 세상적인 개념이 없습니다. 천국은 어떤 세계이냐 하면... 한 마디로 수평적인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라”는 말씀은 그런 세상적인 생각과 삶의 방식을 버리고 천국의 방식을 받아들여, 너희는 가장 낮은 자리에 서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이제 앞으로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죠. 제자들은 이제 앞으로 사도들이 다 될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되고 현실적으로 사람들 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그들이 오히려 더 낮아져서 어린아이같이 될 때, 그들의 공동체는 높고 낮음이 없는 수평적인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떤 분들은 이런 의문이 들 것입니다.
‘천국이 서열, 순서, 계급 없고, 높고 낮음이 없는 곳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수평적인 것이 물론 좋죠.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어린 아이같이 나 자신을 낮추지 않는다고 천국에 못 간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구원과 그렇게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했는데, 어린 아이가 못 되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니...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린 아이도 되어야 하고, 우리 의도 바리새인과 서기관 보다도 더 나아야 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기도 해야 하고, 계명들도 잘 지켜야 하고, 부자도 되면 안 되고... 구원 받는 것이 이렇게 어려우면 도대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네, 여러분도 혹 이런 의문이 드십니까?
그런데 여기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이 모든 것을 일일이 다 해야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안에 이 의미들이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하나의 진리를 각각의 상황에서 다르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이렇게 종합적으로 잘 이해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못 되면 왜 천국에 못 들어가는가? ... 네, 그것은 그 사람이 아직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자기 죄를 고백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영적인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반드시 그런 역사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여전히 자기 중심이 살아있고 자기 의가 존재하고... 그래서 서열과 계급과 차별과 권력과 힘과 돈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아직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직 구원의 첫 발걸음도 시작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이루어질래야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사도 바울의 변화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본래 정통 유대인이고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고 벤야민 지파 사람이고 가말리엘 선생 밑에 유대 최고의 율법 엘리트로 성장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인을 차별하고 율법을 모르는 백성들을 못 마땅하게 여기던 사람이었죠.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그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특히 사람을 대하는 면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세운 고린도교회가 자신을 배신하고 자기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바울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세운 교회였지만 그 교회가 자신의 권위 밑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를 향해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한다’고 편지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선교팀 안에서도 그런 수평적인 동역자 관계를 맺었습니다. 빌레몬에게도 오네시모를 위하여 간곡히 부탁했지, 사도로서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또 로마서 마지막 16장을 보면 거기에 바울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소개하는 인사말이 나오는데, 우리는 그 말씀에서 바울이 그들을 동역자로서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율법적이고 차별적이고 수직적인 사람에서 수평적이고 평등하고 동역자 의식을 가진 따뜻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역사이고 구원의 역사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낮아져야 한다는 진리를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나중에 사도가 되어, 세상과 다른 그런 수평적인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 사도도 교회에 대하여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교회 가운에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무엇이요, 그 다음은 무엇이요... 그렇게 말씀했지만 그것은 역할과 기능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는 다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가 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런 1세대 사도들이 순교하고, 사도들 후임으로 감독들이 세워지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이와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점점 퇴색되어 갔습니다. 급기야 로마제국은 기독교 신앙을 공인하고 나아가 기독교를 국교화했죠. 그때부터 교회는 계급과 서열과 돈과 권력이 있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중세 1,000년을 그런 잘못된 모습으로 흘러왔습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났죠.
그러므로 우리 교회들은 예수님이 처음에 말씀하신 그 수평적이고 평등하고 따뜻한 교회 공동체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구원을 이루어가고 성화되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 교회들을 한번 비판적인 눈길로 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뜻을 잘 따르는 교회도 있고, 그렇지 못한 교회도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 때 서울의 어느 큰 교회는 예배를 마치고 퇴장하는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제일 먼저 나가고, 그 다음에 장로님들이 따라나가고, 그 다음에 회중석 앞 자리부터 차례대로 일어나 예배당을 나갔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이런 크고 작은 서열과 계급의 모습이 여전히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지 않고 성경이 말씀하지 않은 이런 모습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네, 우리의 오랜 의식과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래도록 유교적인 신분 차별 사회였습니다. 해방 후에는 정치적인 지역 차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의식과 문화가 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사람을 재산과 직업과 사는 곳으로 차별하는 의식과 문화는 여전합니다. 며칠 전에도 뉴스에 어떤 아파트에서 자기 아파트 놀이터에 다른 데 사는 아이가 놀러왔다고 그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관리실에 데려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말씀과 복음을 잘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모든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 신앙이고 구원입니다.
우리가 이곳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고 사람들을 인도해야 하죠. 세상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을 인도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어린 아이 같이 되라” 이 예수님의 말씀은 내려가는 것이지 내려오라는 것은 아닙니다. 노력 없이 모두가 똑같은 대접을 받는 공산주의를 만들자는 것도 아닙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 속에서 우리가 좀 더 낮아질 수 있을 때 좀 더 낮아져서 따뜻한 새로운 세계를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그런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여러분들은 세상과 다른 것을 보셨습니까? 우리가 말씀의 눈이 열려, 이런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자꾸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들에핀믿음찬교회는 우리 모두가 서로 낮추고 서로 섬기는 좋은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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