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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 교회의 고난과 승리

믿음찬교회 0 167 2021.09.07 11:47
서머나 교회의 고난과 승리
계 2:8~11
2021.09.03.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약 120km를 올라가면 서머나가 있습니다. 당시 서머나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도시로 인구는 약 75,000명 정도였습니다. 에베소에 비하면 좀 작은 도시였죠. 지금은 이즈미르라는 이름의, 이스탄불과 앙카라에 이은 터키 제3의 도시입니다.
서머나는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불행히도 서머나 교회의 사정은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황제숭배 및 우상숭배를 거부한 이유로 비방과 박해를 받았고 이로 인해 환난과 궁핍이 극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특히 유대인들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을 다른 방식으로 믿는 교회와 기독교인의 확산을 싫어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기존 종교 외에 새로운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탄압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새로운 종교로 로마당국에 고발하였고, 그에 따라 기독교는 로마사회에서 신생 종교로서 의심과 탄압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구체적인 내용은 그리스도인들이 현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위협하고 그들은 유대교의 한 종파가 아니며 무엇보다 황제를 주로 경외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런 유대인들을 향해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사탄의 회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사탄은 거짓의 아비이고 거짓 참소자이기 때문입니다. 거짓과 참소가 일상화된 이 시대에 우리는, 누군가를 거짓으로 비방하고 참소하는 일은 이와 같은 예수님의 엄중한 말씀을 듣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서머나 교회의 어려움은 오늘 본문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각 교회의 사정과 상황에 맞추어 나타나시는데, 서머나 교회에게는 처음과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나타나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모습은 서머나 교회의 어려움이 얼마나 큰 지 역설적으로 말해줍니다.
여기에 나오는 ‘알파와 오메가’, 즉 ‘처음과 마지막’이란 말씀은 언제나 주님께서 가장 어려울 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처음엔 구원의 하나님, 그리고는 복 주시는 하나님, 그리고는 만군의 여호와, 그 다음에는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교회에 죽었다가 살아나신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도 이 교회의 어려움을 잘 말해줍니다. 이 예수님의 모습은 내가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이고, 또 이것은 지금 서머나 교회가 죽음과 순교 앞에 서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해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안다”고 말씀해주십니다. 그리고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마귀가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당시 로마세계에서 감옥에 간다는 것은 단순한 감옥형이 아닙니다. 그때는 감옥형이나 징역형이 따로 없었습니다. 심문과 재판을 거친 후 내려지는 선고는 무죄 석방 아니면 처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머나 교인들이 지금 감옥에 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가 이 혹독한 시험을 10일 동안 받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 10일은 상징적인 의미로 여겨집니다. 이 10일은 숫자 10의 상징적인 의미와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왕의 음식을 먹지 않은 10일에서 온 것으로, 박해가 어떤 충분한 일정 기간 동안 지속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박해를 받는 서머나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결정적인 말씀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이 말씀을 잘못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죽을 만큼 충성하라’ 혹은 ‘죽을 정도로 충성하라’는 말이 아니죠. 현대 교회들은 이 말씀을 평소에도 자주 사용하곤 하는데, 그래서 이 의미는 ‘주님을 위해 헌신적으로 열심히 사역하라’는 의미 정도가 되어 있습니다. 헌신예배 때나 연말에 교사나 찬양대원 임명할 때 흔히 이 말씀이 들려집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죽는 자리까지 충성하라’, 즉 ‘죽어라’라는 단호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박해를 받는 서머나 교회에 죽음을 말씀하십니다. 그 어떤 구원의 손길이나 약속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결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죽음의 자리까지 충성하라’... 예수님은 이 2가지를 말씀하실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놀랍게도 그런 말씀 속에 승리를 말씀하십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둘째 사망의 해가 무엇인지는 우리가 대체로 아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최종적인 구원의 은혜와 복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에 죽음을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승리를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매우 모순적입니다. 일반적으로 죽음은 결코 승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승리가 아니라 패배이죠.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은 승리이고 이김이라고 담담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곧 영광과 승리였듯이 말입니다. 

몰아치는 박해와 고난의 시간 속에 교회와 신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 몰아치는 세찬 비바람을 맞고 견디는 것뿐이죠. 새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지만, 저는 가끔 비가 오는 날 나무에 앉은 새를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새는 가지에 앉아 그 비를 다 맞고 있습니다. 저는 그 새를 보면서 왜 저 새는 처마 밑이나 둥지로 피하지 않고 비를 맞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비가 내리면 비를 맞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요? 비를 피하게 하시고 비를 안 맞게 하시는 것만이 하나님의 사랑은 아닙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교회를 개척하면, 교회가 잘 안 되는 것이 당연하죠. 교회 10개가 개척되면 1~2 교회가 잘 되고 8~9교회가 잘 안 되는데, 이런 현실에서 ‘내 교회만은 잘 되어야 하겠습니다’ 라고 기도하는 것이 맞을까요? 안 되는 줄 알고 그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곳까지 가보자라는 마음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머나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환난과 시험은 믿는 자들을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뜻일 때가 많습니다. 모든 교회가 박해를 받거나 모든 신자가 그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지만, 때론 주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지금 서머나 교회는 바로 그런 영적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서머나 교회에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그와 같은 길을 걸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길이었죠. 그것은 죽음으로 이기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것은 역설적인 승리로, 이기지 않는 이김이고, 패배하는 이김입니다.
비록 박해한 자들과 고발한 자들은 그들을 죽이고 승리를 자축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승리는 궁극적 패배로 나아가고, 성도의 죽음은 궁극적 승리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에 지금 죽음의 승리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죽음의 승리를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우리는 살면서 늘 양보하거나 언제나 질 수는 없죠. 싸울 것은 싸우고 바로 잡을 것은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어떤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우리의 죽음과 패배를 통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때입니다. 세상에 어둠이 덮이고 악한 자들이 날뛸 때, 하나님은 우리들의 패배와 초라함과 죽음으로써 자신의 뜻을 놀랍게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신자는 패배하고 물러나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영광만 바라고 그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패배와 죽음과 초라함을 위하여 그분을 따르는 신앙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 가운데 그와 같은 정신과 믿음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언제나 멋진 영광과 승리를 말하지, 고난과 패배 자체를 말하는 교회는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서머나 교회를 설교하면서도 이 교회처럼 충성하고 칭찬받자고는 하지만, 이 교회의 패배와 죽음을 받아들이자는 설교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박해하는 시대와 세상 속에 교회의 운명이란 그들 손에 죽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과 타협하거나 한 패가 되어야 합니다. 정의롭지 못한 시대와 세상 속에 의로운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 의인이 잘 살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패배하고 밀려나고 초라해지고... 그러나 그와 같은 고난을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서머나 교회에 하신 이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 한편에 간직하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초자연적인 믿음으로 이 시대와 세상을 이기며 나아가는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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