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그가 오고 계신다

믿음찬교회 0 127 2021.06.28 16:06
그가 오고 계신다
계1:7
2021.06.25.

요한의 인사에 담긴 두 번째 메시지는 한 마디로, 그가 오신다는 메시지입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것은 1세기의 성도나 지금의 우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다시 오신다는 메시지보다 우리를 더 감격하게 하는 메시지는 없을 것입니다. 그가 오시면 모든 악과 눈물과 무의미의 역사는 종결되고 우리의 구원은 천국으로 완성되고 우주는 새로운 차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자세히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 신앙이 도달할 최후의 종착역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이 너무 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삶과 어려움 속에서 그것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주님이 오신다는 말씀은 한편으론 은혜로운 말씀이지만, 한편으론 막막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7절 말씀은 최후의 그날에 주님이 오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놀랍게도 이 말씀은 그날에 오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말 번역은 이 부분에서 정확하지 못합니다. ‘오시리라’라고 미래로 번역했지만, 헬라어는 이것을 현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시느니라’ 즉 지금 오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영어성경도 ‘He is coming’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물론 7절의 다른 동사들은 미래로 되어 있습니다. 그를 본다든지, 그로 말미암아 애곡한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미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7절 말씀을 잘 살펴보면, 요한이 예수님이 오시는 사건을 미래와 현재를 섞어서 두 개의 시제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요한의 실수일까요? 네, 실수가 아닙니다. 이것은 실수가 아닌 의도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면 요한은 왜 그렇게 표현한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사건은 미래이면서 동시에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날에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방문은 그날만이 아닌, 오늘에도 이루어지는 반복적인 사실입니다.
대개 우리는 이 사실을 잘 모릅니다. 우리는 주님이 최후의 종말에 한 번 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고, 종말론적인 주님의 방문은 지금 이 땅에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 말씀의 모태가 되는 다니엘서 7:13~14을 볼 때 분명해집니다. 다니엘서는 7장이 가장 중요한데, 거기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나라와 권세를 받는 환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영원한 왕위를 받고 왕으로 등극하시게 됩니다. 요한은 이 다니엘서의 환상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이루어졌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요한만이 아닌 신약 전체의 일치된 시각이자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이루어진 이 사실을 세상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이 땅 가운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가 오신다는 말씀은 계시록 2장과 3장의 일곱 교회들을 향한 말씀에서도 확인됩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2:5) 이것은 최후의 그날에 그 일을 하시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지금 오셔서 그 일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에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2:15~16) 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지금 심판하러 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3:11) 여기서도 ‘오리라’는 말씀은 현재형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들도 이 부분을 ‘I am coming soon’ 즉 ‘내가 속히 가고 있으니’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를 돕기 위한 예수님의 방문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종말론적인 예수님의 방문은 라오디게아 교회에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3:20) 예수님은 지금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종말론적인 오심은 복음서에서도 확인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막13:26) 예수님은 동일한 말씀을 산헤드린 공회에서도 하셨습니다.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막14:62) 이 예수님의 말씀은 최후의 그날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직접적으로는 A.D. 70년 예루살렘 멸망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란 이름만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왕권을 가지신 주님의 종말론적인 방문을 그렇게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의 말씀들과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그분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비유적인 의미로, 최후의 그날 만이 아닌 이 시대에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영원한 왕으로 취임하신 그분은 자기 백성들을 위해 또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십니다. 그 오심은 마지막 그날까지 반복되고, 그것은 그분의 왕권의 정당한 행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에서 은혜와 교훈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먼 미래의 일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시대와 우리 교회와 우리 삶에 지금 오셔서 자신의 왕권을 행사하십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그분의 종말론적인 오심은 우리에게 2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은혜와 도우심이고, 다른 하나는 심판이자 경고입니다. 그분의 뜻대로 노력하고 애쓰는 사람에게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방문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그분의 뜻을 거스르고 훼방하는 사람에게는 심판의 방문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고 또 조그마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온 시간 동안, 몇 차례 우리 주님의 은혜로운 방문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직장을 다녔던 저는 선교단체 간사가 되어 후원 훈련을 먼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훈련을 받고 서울에서 내려오던 그 기차 안에서 갑자기 후원과 앞으로의 삶이 두려워졌습니다. 차창 밖의 무심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갑자기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입석표를 끊고 서 있었는데, 아무 자리에 앉아서 격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IMF 시기에 후원해 줄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기차가 천안에 도착할 때까지 그렇게 기도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웅크리고 한참을 기도하던 저는 어느 순간 무엇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따뜻한 손이 제 등에 얹어져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느낌과 함께 제 두려운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평소의 마음이 되어 있었습니다.
늘 돌아보지만, 저는 그것이 두려워하는 저에게 오신, 주님의 특별한 방문이었다고 믿습니다. 이후 간사의 삶과 또 이후 목사의 삶에 몇 번의 위기가 더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주님의 작은 특별한 방문이 있었습니다. 작은 소망의 연결고리가 생기고 그래서 또 그 시간을 잘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동일하신 주님께서 더 주님을 사랑하시는 여러분들께도 그렇게 방문해 주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주님의 방문은 심판과 경고의 방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때론 그분의 부재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론 무서운 결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교회적으로도 조심하고, 개인적으로도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된 죄와 관행이 오래되면 죄에 무감각해지고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회개를 할 수 있는 힘이 사라지면, 마침내 심판의 날이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늘 보좌에 앉아 다스리는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거기에 그저 앉아 있지 않습니다. 그분은 이 시작된 종말에 자신의 왕권을 나타내시고 다스리고 계십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백성에게는 은혜의 방문을, 거역하는 세상과 백성에게는 심판의 방문을 행하십니다.
아무쪼록 믿음의 삶 속에서 그분의 은혜로운 방문을 놀랍게 경험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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