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왕과 제사장

믿음찬교회 0 128 2021.06.14 12:47
금요기도회 (2021.06.11)
요한계시록 5

왕과 제사장
계 1:4~8
2021.06.11.

오늘 본문은 요한이 이 편지의 수신처인 일곱 교회에 보내는 인사입니다.
요한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한다고 인사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묘사하는 여러 내용은 당시 어려움에 처한 교회와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많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 인사에 이어 요한은 6~8절에서 3개의 인사말 메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 피로 죄에서 해방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말씀합니다. 두 번째는 그가 구름을 타고 오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고,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4~8절은 이렇게 요한의 인사와 3개의 인사말 메시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4~8절 전체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올 자’라는 3중 표현으로 앞뒤가 감싸여 있습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요한의 인사말 중 첫 번째 메시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계1:5b~6)
여기서 요한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를 그의 피로 해방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을 위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여기서 ‘삼았다’라는 말은 ‘만들었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어 구원해주신 정도가 아니라, 우리를 영광스럽게도 하나님을 위한 나라와 제사장으로 만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자들의 새로운 존재와 신분에 대한 매우 특별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내용을 좀 분명히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좀 잘 이해되지 않는 내용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을 위한 제사장으로 만들었다는 말씀은 이해가 되는데, 우리를 나라로 만들었다는 말씀은 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아마 대부분 이 말씀을 ‘우리를 그분의 나라의 백성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나라의 백성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죠. 그런데 과연 이게 맞을까요?
그래서 살펴보면, 이 말씀의 원천은 출애굽기 19장 6절입니다. 출19:6은 이렇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시내산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의 목적을 설명하시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출19:5절부터 말씀되고 있는데 이렇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 
그런데, 여기서 ‘제사장 나라(a kingdon of priests)’라는 말씀이 해석상에 무척 어려움을 주는 말씀입니다. 이 의미가 넓어서 그런 어려움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인용한 벧전 2:9 말씀은 이것을 ‘왕 같은 제사장(royal priesthood)’으로 말하고, 오늘 본문인 계 1:6 말씀은 이것을 ‘나라와 제사장(a kingdom and priests)’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원래 표현은 하나인데, 이것을 출애굽기는 ‘제사장 나라’로, 베드로전서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계시록은 ‘나라와 제사장’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다르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원래 표현 자체가 모호해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 저렇게 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출애굽기의 원래 표현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애굽기의 히브리어 원래 표현은 두 단어로 되어 있죠. ‘마므라카 코헨’입니다. ‘마므라카’는 왕의 통치라는 기본 의미를 가지고 있고, 나아가 왕권, 왕위, 왕국이라는 확장된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적으로 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코헨’은 제사장입니다.
따라서 ‘마므라카 코헨’은 ‘제사장 왕국 또는 제사장 나라’가 될 수도 있고, ‘왕실의 제사장 또는 왕의 제사장’이 될 수도 있고, 나아가 ‘왕 같은 제사장 또는 왕과 제사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네, 무척 복잡하죠. 무엇이 가장 정확한 번역일까 결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실 중요한 것은 이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정확한 번역일까 하는 것보다, 아무튼 여기에 왕이라는 의미와 제사장이라는 의미가 같이 들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1:6 말씀을 이렇게 과감하게 바꿀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를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라고 과감하게 바꾸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과감한 해석을 해도 되는가? ... 특히 우리를 ‘왕으로 세우셨다’라고 해석해도 되는가? 네,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요한계시록 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계 5:10은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계 20:4은 “...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계 20:6은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람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네, 이상의 세 말씀은 분명히 우리를 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내용은 복음서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9장에서 열 므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네, 이것은 왕으로서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사도바울도 동일하게 하고 있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딤후 2:11~12)
그러므로 이상의 여러 말씀을 보면,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영적으로 제사장 모습만이 아니라 왕의 모습도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이 말씀을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말씀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점이 또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바울이 우리가 왕으로서 다스린다고 하신 말씀은 먼 미래의 말씀이죠. 그것은 영광스러운 그날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놀랍게도 이것을 현재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예수님과 바울의 말씀을 보다 발전시켜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의미는 믿는 자의 영적인 왕권이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지금 여기에서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이 이런 놀라운 인사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네, 로마제국의 현실과 박해 앞에 두려워하는 신자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금 영적으로 어떤 존재로 만들었는지 확신할 때,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것을 믿고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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