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고전 1:1~3
2024.07.21.
지난 주일 우리는 이 인사말의 4가지 말씀 중 2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바울이 자신을 ‘예수의 사도’라고 말씀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둘째,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거룩하여지고’가 어떤 의미인지, 또 ‘성도라 부르심을 받았다’가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제 우리가 세 번째와 네 번째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세 번째 말씀은 “너희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이다”입니다.
사도바울은 여기서 단순히 ‘고린도 교회’가 아니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사도바울은 문제가 많고 영적인 어려움과 위기가 있는 고린도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대체로 많은 분은 그 의미를 고린도교회를 향한 변함없는 확신과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설교가 이 말씀에서 은혜를 말씀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문제 많고 어려움 많은 고린도 교회를 여전히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교회를 하나님께서 여전히 지켜주시고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교회라고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문제 많고 늘 부족한 우리도 여전히 교회와 성도로 불러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를 다시 한번 알게 됩니다.”
많은 설교가 이렇게 이루어지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일부 신학자와 성경주석이 그렇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은 우선 이 말씀에서 ‘있는’이라는 말에 주목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의 ‘존재’와 ‘실체’를 의미하는 중요한 단어라고 말합니다.
또 ‘교회’라는 말에 주목합니다.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 ‘교회’는 헬라어로는 단순히 ‘회중’을 뜻하는 말이지만, 만약 사도바울이 이 헬라어를 히브리어 ‘카할’을 생각하며 사용한 것이라면, 이 말은 ‘카할, 즉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말에 주목하는 분들은 바울이 이 말을 그런 히브리어적인 의미로 사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여 일부 신학자와 주석은 사도바울이 이 고린도교회를, 비록 문제가 많지만,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으로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둘째는, 이 말씀을 통해 은혜를 말하는 설교가 듣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부족하고 문제 많은 교회와 사람일지라도 여전히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우리는 그런 은혜의 하나님을 좋아합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특히 오랜 우리 민족의 정서상 은혜를 좋아합니다. 우리 민족은 정의 민족이죠. 정을 좋아하고 은혜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도 자꾸 그런 순한 방향으로 읽고, 설교도 그런 방향으로 하게 됩니다.
목사님들이 하는 주일 설교의 80~90%가 은혜로운 설교입니다. 은혜로운 설교는 언제나 환영받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은혜로운 분이시고, 그런 하나님을 전하는 설교도 은혜로운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그런 설교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과 예수님과 사도들은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목사님들은 그런 말씀을 많이 하지 못합니다. 웬만하면 은혜로운 설교를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도 ‘문제 많은 고린도교회를 은혜로 용납하시는 하나님...’ 그렇게 설교합니다. 그런 결론 자체가 잘못되거나 해로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결론이 본래의 뜻을 가린다면,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문제 많은 고린도교회를 고민하며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편지할 때, 고린도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문제가 있어도 고린도교회를 여전히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로 믿는 믿음과 은혜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사도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씀하는 이 말씀을 그런 은혜의 말씀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사도로서 이 교회의 잘못된 점과 잘못된 신앙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영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의 많은 문제들은 그저 은혜로 덮을 문제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좀 더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이 말씀 안에는 고린도교회와 신자들을 향해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지... 분명한 선을 긋는 사도바울의 말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고린도교회를 바로잡기 위해 선을 긋고 뼈대를 세우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신자들은 자신들이 모이고 있는 교회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최근에 나온 고린도전서 주석은 이 내용을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내용은 제가 그저 임의로 해석하고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이 예전처럼 이 말씀을 대부분 은혜라고 설교하는데, 제가 어떻게 혼자 다르게 설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런 능력도 없고 자격도 없습니다.
제가 다르게 설교할 수 있는 근거는 이 주석 때문입니다.
NIGTC 주석이죠. 가장 최근에 나온 고린도전서 주석이고 원문 중심의 주석이기 때문에, 고린도전서에 대한 이해를 한 차원 높인 주석입니다. 2000년에 나왔고, 2022년에 한국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만 상 하 두 권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2022년 상 하 두 권으로 초판 2,000세트를 만들었는데, 아직 추가 인쇄는 안 되고 있습니다. 이 말인즉슨, 지금 우리는 고린도전서에 대한 최신 주석을 소유한 2,000개 교회 안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제가 큰 능력은 없지만, 그래도 어떤 주석이 좋은 주석인지는 압니다. 그래서 이번 고린도전서 설교는 주로 이 주석을 참고하여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사도바울은 은혜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무엇인지 말씀합니다.
첫째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하면서,
둘째 ‘교회는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말하면서,
셋째 ‘교회는 각처에서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과 함께 보조를 맞추는 보편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교회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고린도교회를 향해, 교회가 무엇인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에서 그저 은혜를 생각하고 아멘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교회가 무엇인지 말씀하는 사도바울의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첫째, 고린도교회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앞서 일부 신학자나 주석이 이 말씀에서 ‘있는’이라는 말과 ‘교회’라는 말에 주목하고, 그 결과 그분들은 이 말씀을 ‘고린도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은혜’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있는’이라는 이 헬라어 표현은 헬라어에 자주 나오는 관용적인 표현입니다. 큰 의미 없이 그렇게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기 어렵습니다.
또 사도바울이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이 말을 과연 히브리어적인 의미로 생각하였는지...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설령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과거 그렇게 불리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불순종하여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말을 지나치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지금 교회를 교회라고 말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은혜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생각보다 약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네, 바울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말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 ‘하나님께 속한 교회’, ‘하나님의 백성이 이미 된 교회’...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를 의미하는 ‘하나님의 소유로서의 교회’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이 이런 의미라는 것은 이제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읽어나갈 때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고린도교회 안에는 고린도교회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이 고린도교회의 큰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신분이 높고 부자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고린도의 저택의 구조를 생각하면, 그들은 아마 주일 예배 후 가장 안쪽 방에서 식사했을 것입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거기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신분이 낮고 가난한 사람들은 바깥쪽 방이나 회랑 같은 곳에서 식사했을 것이고, 혹 그런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늦게 오면 식사할 음식이 다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의 부유한 사람들은 교회를 위해 많은 헌금을 하면서 또 그런 곳에서 식사하면서, 교회를 자신들의 소유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고린도교회 안에는 신령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체험을 하고 방언을 하고 신비적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천사의 말을 하고 예언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교회는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에 의해, 고린도교회 안에 분파가 생겼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속했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했다, 나는 게바에게 속했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여기서 그런 분파와 분란을 염두에 두고 미리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누구의 교회도 아닌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를 세웠지만, 교회가 자신의 소유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분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또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해서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지금 고린도교회를 향해,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사도바울의 말씀에서 영적인 교훈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목사가 주인이 되어서도 안 되고, 장로가 주인이 되어서도 안 되고, 헌금 많이 하는 분이 주인이 되어서도 안 되고, 기도 많이 하고 능력 받은 분이 주인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주인 되시고 우리 모두의 공동체이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유화되어선 안 됩니다. 세습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심할 큰 죄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소유인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하는 일입니다. 교회의 재정, 의사결정, 영적인 방향, 영적인 순수성, 공동체성, ... 이런 것들을 해치거나 자기 것인 양 마음대로 하면 큰 죄가 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교회 안에는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 자신의 교회로 생각하는 목사님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마음대로 이끌어갑니다. 가르침과 설교에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의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바로 교회가 목사의 교회가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목사만 문제일까요? 그런 교회에는 그런 신자들이 있습니다. 보이는 사람을 쫓고 카리스마를 쫓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과거에 그렇게 변해간 교회를 직접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좋은 목사님이고 좋은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목사님은 각종 성령 사역과 훈련프로그램으로 카리스마를 높여갔고, 교인들은 그런 목사님을 따라갔습니다. 어제 그 교회의 최근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려스러운 방향으로 더 많이 갔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도 깨어있어야 하지만 성도들도 깨어있어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아무쪼록 함께 깨어있어서 하나님의 교회로 모이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부산 사직동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인 줄 믿습니다.
사도바울이 교회에 대해 말하는 두 번째 말씀은 ‘교회는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과 예수님의 피로 거룩히 구별 되어졌습니다. 우리는 용서받았습니다. 우리는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행하신 후에, 다시 우리를 구별된 자로 부르십니다.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라는 것입니다. 빛이 되었기 때문에, 빛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그래서 교회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말씀을 하는 이유는 고린도교회 안에 이런 교회의 정체성을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믿은 후 성령의 풍성한 은사를 받고 방언을 하고 영의 세계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육이 아니라 이미 영에 속해있다고 오해했습니다. 그들의 그와 같은 오해는 사람을 영과 육으로 분리하는 잘못된 헬라 사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복음을 복음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리스철학을 통해 이해한 그들은, 그들을 구별하시고 구별된 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의 많은 잘못된 모습과 분쟁과 일탈의 배경에는 이와 같은 잘못된 종말론과 구원론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지금 이 편지를 시작하는 인사말에서 교회가 무엇인지 분명히 말씀합니다. 교회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을 자들의 모임, 즉 구별된 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향해 가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이미 도착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부르심을 쫓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 부르심을 쫓지 않거나 그 대열에 설 마음이 없는 사람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에서 영적인 교훈과 주의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 안에는 그 부르심을 쫓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 따르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잘못된 일을 계속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실수하거나 잘못 할 수 있는 죄인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돌이키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는 목회자와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목회자와 신자들... 그러면 우리는 그 부르심을 쫓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왜 회개하지 않을까요? 회개하지 않아도, 이미 구원받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그런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성령을 받았으니까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방언하고 예언하니까...
한국교회 안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미 용서받고 이미 구원받았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잘못하고 회개하지 않고 그 부르심을 쫓지 않지만, 구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선택하고,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거짓말하고, 남을 속이고, 깨끗함이 없고, 세상 사람이 보기에도 신자가 아닌 것 같아도... 교회를 잘 다닙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고린도교회와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고린도교회와 같은 한국교회...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위기는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가 안 되고, 성장이 안 되고, 주일학교 학생이 없고, 청년들이 없고, 북한이 우리를 위협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믿는 사람이 아니라서... 한국교회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위기는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 있습니다. 우리를 성도로 부르신 그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로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그런 귀한 신앙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도바울이 교회에 대해 말하는 세 번째 말씀은 ‘교회는 각처에서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과 함께 주님을 믿는 보편 교회가 되어야 한다’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왜 이 수신자의 자리에 고린도교회만 말하지 않고, 다른 믿는 자들과 다른 교회를 언급할까요?
그 이유는 고린도교회가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성장과 부유함과 성령의 각종 은사와 방언을 보고, 자신들은 다른 교회와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부 신자들은 사도바울의 지도마저 거부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그 사이의 기간에 고린도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아무 소용 없이 상처만 받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가진, 자신들이 성령을 받고 특별해졌다는 생각을 고쳐주어야 했습니다. 교회는 각처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보편 교회의 하나가 되어야 하지, 우리 교회만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교만해지고 타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은 사도바울의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개교회는 보편 교회의 일원이 되어야 하지, 개교회만의 특별함을 자랑하거나, 차별성을 지나치게 추구하거나, 특정 그룹의 사람만 모이거나, 그렇게 교회를 이루어 가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는 큰 교회야, 우리 교회는 특별한 말씀이 있어, 우리 교회는 특별한 성령의 역사가 있어, 우리 교회는 선교와 전도를 많이 해, 우리 교회는 유명한 사람이나 연예인들만 다녀...
한국의 어떤 교회들을 보면, 그렇게 고린도교회처럼 다른 교회와 다른 특별한 교회가 되려고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자신들만의 성경을 보고, 자신들만의 말씀을 나누고, 자신들에게만 구원이 있고, 다른 교회는 문제가 많고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교회는 교회로서의 모습을 잃어가게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백 명 이하 작은 교회에서만 신앙생활 했습니다. 살면서 몇 번 큰 교회에 가서 예배드린 적이 있는데, 확실히 큰 교회에 가면 느낌이 다릅니다. ‘내가 정말 교회에 와 있구나’ 하는 느낌도 들고,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큰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그런 생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큰 교회를 다니는 분들은 교회의 크기에서 오는 특별함... 그런 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교회를 다니는 분들은 작은 교회를 다닌다는 마음에서 오는 어떤 초라함...그런 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크기가 어떻든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보편 교회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에 그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거룩한 공교회를 믿사오며’ 여기서 공교회라는 말은 보편 교회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보편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 속에 지역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고 시간과 역사를 초월하여 그런 하나의 교회를 지향한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마다 특성이 있고 나름의 강점이 있고 작은 차별성이 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처럼 교만한 마음으로 자신들만의 특별함과 차별성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교회가 그런 쪽으로 가면, 보편성을 잃어버리고 좋지 못한 열매들이 맺어집니다. 그 끝은 다른 복음이고 이단입니다.
최근 북한선교와 통일 후 한국의 미래에 대해 새로운 예언적 말씀을 전한 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말씀을 예언처럼 듣고 그 선교회에 후원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네, 그 목사님도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났고, 선교회도 사라졌고, 돈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성경에 있고 모든 교회들이 전하는 보편적인 말씀을 전하려고 하지, 다른 교회가 말하지 않는 생소한 말씀을 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일반적인 교회이지, 무슨 특별한 능력이나 특별한 가르침이나 특별한 축복이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특별한 사람이 오는 교회도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보편 교회의 일원으로서 건전하게 예수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아직 교회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고린도교회를 향해... 교회가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너희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교회이다, 너희는 각처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보편 교회의 하나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말씀을 잘 따라가면, 우리는 좋은 교회가 됩니다.
좋은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하심과 예수님의 주님되심이 느껴지는 교회입니다.
좋은 교회는 성도의 공동체이고 성화의 공동체입니다.
좋은 교회는 보편 교회의 일원이 되는 건전한 교회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과 저는 이와 같은 귀한 교회로 늘 모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