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병이어와 두 치유 (2)
막 8:14~21
2024.07.19.
우리는 지난주에 칠병이어와 칠병이어를 감싸고 있는 두 개의 치유가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를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문제였습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마무리하면서 그와 같은 제자들의 몰이해와 깨닫지못함을 중요하게 말씀합니다.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닌 지 2년이 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고 사역을 함께 하면서 2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방금 칠병이어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이것은 오병이어에 이은 두 번째 급식 기적이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배에 오르자마자 그것을 잊고 빵이 없음을 걱정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누룩에 대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빵이 없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룩에 대해 말씀하신 목적은 따로 있었습니다. 누룩은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불신앙 혹은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그 문제를 제자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듣고 자신들에게 빵이 없음을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예수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답답함이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이 말씀은 점잖은 말씀이 아니라, 굉장히 책망하시는 어조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4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따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해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그들의 현실과 차원에서 계속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8장에서 제자들의 모습은 그대로입니다. 아무런 발전이 없습니다. 제자들은 눈앞의 현실과 빵만 보고 있습니다. 지금쯤이면 하나님 나라를 봐야 하는데, 지금쯤이면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간직해야 하는데... 그런 영적인 발전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이 지금 이 문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오늘 말씀을 보면서,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실패한 그 일을, 오늘의 우리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제대로 해 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제자들과 다르게 하나님 나라를 영적으로 보고 이해하고 그 나라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 교회들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는 신자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라고 복음을 주셨는데, 우리는 소위 복 받는 종교 생활을 하면서 예수님의 공로로 천국만 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난 주 소개드린 모 교회 목사님의 가르침이 있었죠. “하루 종일 예수님과 함께 하세요... 매일 매일 예수님과 동행하세요...” 잘못된 말씀도 아니고 나쁜 말씀도 아니지만, 저는 어쩐지 그 말씀이 싫습니다.
막연한 영성을 말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 예수님을 생각하고 매 순간 예수님과 동행만 하면 되나요? 우리가 승려나 수도자처럼 그렇게 수행만 하고 명상만 하면 되나요? 구체적으로 우리 삶 속에서 또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 그런 막연한 영성이 과연 예수님의 뜻일까 의문입니다.
예수님의 뜻은 우리가 자기 곁에 종처럼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기도도 중언부언하지 말고 짧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뜻과 말씀은 그런 것이 아니라,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너의 삶과 현실에서 살아라’는 것입니다.
교계 뉴스를 보니 사랑의 교회 모 목사님이 ‘영적’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영적 제사법, 영적 공공재, 영적 정규군, 영적 5분 대기조, 영적 균형감각, 영적 순발력, 영적 채무자, 영적 하루살이, 영적 제곱근... 미세먼지가 있는 계절엔 교회 신자들에게 영적 청정대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 제가 그 기사를 보면서, 이분은 어떤 의도로 이렇게 영적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할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영적이라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고 모든 것을 영적으로 생각한다고 영적인 사람이 되고 영적인 교회가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우리가 이 어두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충실히 살 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고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영적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고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은 결국 수단이고 도구인데, 우리가 그 수단과 도구를 통해 온전히 그 나라의 삶과 윤리를 살아갈 때 비로소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이 나이가 많으셔서 은퇴를 해야 하는데, 은퇴를 못하고 계셨습니다. 은퇴 약속을 자꾸 번복하셔서... 그렇지 않아도 작은 교회인데, 교인들이 많이 떠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은퇴를 못하시는가... 후임자를 못 구해서 은퇴를 못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후임자를 못 구하시는가... 알고 보니 자신을 원로목사로 모실 수 있는 후임자, 그리고 교회 대신 자신에게 은퇴금을 줄 수 있는 후임자를 찾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웠습니다. 개척을 하고 평생 목회를 해 오신 목사님이, 평생 예수님을 따르고 섬긴 목사님이 결국 돈 문제 때문에 그렇게 주저하고 계셨습니다.
기도하며 최선으로 후임자를 찾고, 자신은 교회 형편대로 아름답게 은퇴하시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습 아닐까요?
그 나라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지 않으면서 막연히 영적이라는 말을 하고, 그 나라의 삶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주님과의 동행을 말하고, 돈 때문에 후임자를 세우지 못하고...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우리는 오늘 본문의 제자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됩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가복음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제자들의 몰이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연 만물을 넘고, 악의 세력을 넘고, 인간의 질병과 죽음을 넘고, 인간의 빵의 문제를 넘고, 인간의 종교와 제도를 넘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영적 몰이해를 넘어야 한다고 마가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모든 것을 넘어야 완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족하더라도 그 나라의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현실 속에서 그 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라의 삶을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돕고, 선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정의를 기뻐하고, 불의를 미워하고, 이기심을 버리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죄를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삶과 함께 우리는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