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삶으로 평안히 (1)
막 7:24~30
2024.06.28.
우리는 두 번에 걸쳐 예수님과 바리새인 서기관들 사이의 정결 논쟁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논쟁 후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디론가 향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예, 지금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을 벗어나 북쪽 해변 이방인 지방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엔 우리가 구약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두로와 시돈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두로는 해상무역으로 유명한 도시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오래전 두로는 앗수르와 바벨론의 공격을 받고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최종적으로는 헬라 알렉산더 대왕에 정복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나중에 로마가 그곳을 재건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그곳은 옛 영화를 잃어버린 작고 평범한 이방인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본문을 좀 더 넓게 살펴보면, 마가가 오늘 본문을 시작으로 연속해서 예수님의 이방 사역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두로 지방의 수로보니게 여자의 딸을 고치신 사건, 갈릴리 데가볼리 지방의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신 사건, 갈릴리 데가볼리 지방의 칠병이어 사건... 이렇게 마가가 연속해서 말하는 이 3가지 사건은 모두 이방지역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마가가 매우 뚜렷하게 예수님의 이방 사역을 소개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같은 예수님의 이방 사역의 가능성이 이미 지난주 본문에 말씀 되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말씀은 바로 ‘모든 음식은 깨끗하다’는 말씀입니다.
정결한 유대인과 부정한 이방인을 구별 짓는 가장 뚜렷한 요인은 음식입니다. 그런데 모든 음식이 궁극적으로 깨끗하다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은 사실상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마가복음의 의도와 뚜렷한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는 정결 규례 논쟁을 통해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의 이방인 사역 3개를 소개합니다. 이렇게 해서 마가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사역이 유대인들을 넘어 이방인에게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은 마가복음의 흐름을 이해하면서, 이제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보고자 합니다.
앞서 가버나움에 혈루증 앓는 불쌍한 유대 여인이 있었다면, 두로에는 귀신들린 딸을 둔 불쌍한 수로보니게 여인이 있습니다.
이 두 여인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에서 마치 나비의 날개같이, 데칼코마니같이 대비되어 있습니다. 두 여인 모두 가련하고 힘든 가운데 놀라운 믿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혈루증 여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수로보니게 여인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렇게 이 두 여인의 믿음이 매우 흡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굉장히 큰 것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작고 깊은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고 상아래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얻고자 하는... 그런 작고 깊고 간절한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여인들이 보여주는 이와 같은 귀한 믿음을 우리 마음에 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처음에 이 불쌍한 여인을 어쩐 일인지 거절하시고 냉정하게 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심한 모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랑의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우리는 순간 혼란에 빠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씀드려 이것은 그 여인을 이미 아시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도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듯이,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주목하고 싶은 말씀은 두 번째 말씀인 29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예수님은 그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을 향해 돌아가라 말씀하십니다. 돌아가서 네 딸의 회복을 확인하라는 말씀이죠. 직접적인 의미는 그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앞서 혈루증 여인에게서도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이러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고쳐주시고 ‘평안히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덧붙여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때의 혈루증 여인과 비슷한 이 수로보니게 여인을 보시며 하신 이 말씀도 단순히 ‘돌아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너의 삶으로 평안히 돌아가라’는 의미입니다. ‘돌아가서 해방된 너의 삶을 아름답게 살아라’는 의미입니다.
혈루증 여인은 열두 해를 그 병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귀신들린 어린 딸을 돌보면서 매일 매일 절망과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너의 삶으로 평안히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이 슬프기만 하고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어찌 그것이 올바른 인생이겠습니까? 우리 인생은 마침내 먹구름이 걷히고, 밝고 건강하고 빛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은 이 불쌍한 여인의 딸을 고쳐주시고 그 삶을 회복시켜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이 말씀은 그 여인을 향한 주님의 귀한 축복과 회복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의 삶에도 이런 귀한 주님의 은총이 있기를 빕니다.
오랜 문제가 풀리고, 오랜 기도가 이루어지고, 마침내 복된 열매가 맺히는 기쁜 날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길 원합니다.
하나님은 뜻이 있어 때때로 우리에게 어려움과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마침내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과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런 선하시고 복되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소망의 날을 기대하는 믿음을 늘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런 믿음과 소망 가운데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도 수로보니게 여인에게서 그런 믿음을 보셨기에 그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아울러 그 여인은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지는 작은 부스러기라도 기대하는 겸손하고 낮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렇게 귀한 믿음에 더해진 겸손한 낮은 마음... 그래서 예수님은 그를 귀히 여기시고 그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이 여인의 믿음과 마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선하고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믿음을 배우시고, 또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낮은 마음을 배우시길 바랍니다.
이런 믿음과 마음은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귀한 능력이 될 줄 믿습니다.
아무쪼록 이런 귀한 능력과 은총을 소유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