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막 6:45~56
2024.05.24.
지금 우리가 마가복음의 전체 말씀 속에서 대략 어디에 있는지... 혹시 궁금한 분이 계실까 싶습니다.
우리가 마가복음의 전체 지도를 모르면, 우리가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지금 어떤 말씀을 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가복음의 전체 구조를 지도처럼 볼 수 있으면, 여기가 어디쯤인지, 오늘 본문은 어떤 말씀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지도를 놓고 본다면, 오늘 본문은 이른바 예수님의 갈릴리 2차 사역의 첫 말씀에 해당합니다.
돌아보면, 마가복음은 처음에 짧은 서론으로 시작했습니다. 서론을 지나서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기 갈릴리 사역이 있었습니다. 초기 갈릴리 사역에서는 서기관 및 바리새인들과의 논쟁도 있었습니다.
초기 갈릴리 사역의 결과 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후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자연 만물, 하나님의 나라와 귀신의 군대, 하나님의 나라와 질병, 하나님의 나라와 오병이어.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신 4가지 사역을 예수님의 1차 갈릴리 사역이라고 부릅니다.
1차 갈릴리 사역 후에 이제 2차 갈릴리 사역이 시작됩니다. 바로 오늘 본문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2차 갈릴리 사역은 1차와 거의 동일합니다. 동일하게 갈릴리 호수의 기적을 통해, 질병 치유를 통해, 귀신 축출을 통해, 그리고 칠병이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시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2번 반복하고 마가복음의 1부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마가복음은 왜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1차와 2차로 나누어 2번 반복할까요?
네, 그것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2번 반복하여,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시고 어떤 사역을 행하셨는지... 그것은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2번 반복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2차 갈릴리 사역의 첫 본문으로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위를 걸으시고, 또 수많은 병자를 고치신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초자연적인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목적을 가지고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초자연적이고 자연 만물 위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오늘 반복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오늘 본문 자체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 본문은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51절과 52절입니다.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심히 놀랐습니다. 캄캄한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그 모습은 두렵고 공포스럽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제자들의 놀라움을 당연시하지 않고, 그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네, 제자들은 불과 몇 시간 전 오병이어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수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모습과 하나님의 나라의 초자연성에 아직도 놀라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자연법칙과 현실을 전부로 알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영적인 세계와 초자연을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도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자연법칙을 만드신 분으로서, 초자연이나 기적을 남용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현실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이시기도 하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의 초자연성에 대해 겸손히 열려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강한 감동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손길과 비상 간섭을 경험할 수 있고, 방언이나 신비적 은사를 체험할 수도 있고, 환상을 보거나 환상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필요에 따라 그런 초자연적인 일들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말씀 중심의 건전한 신앙을 가지고 이 세상 현실 속에서 살아가지만, 한편으론 성경이 증거하는 이와 같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열려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렇게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현실을 무시하고 허황된 것을 믿고 무분별한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러나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에 대해 열려 있어야 우리는 현실 속에서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자연법칙과 현실과 과학만 믿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겠죠. 그러나 과학자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기도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고, 우리의 믿음을 건전한 큰 믿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믿음이 어리고 참 작았습니다. ‘아 이건 정말 어렵겠다... 불가능하겠다...’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도도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 이상으로 놀랍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바꾸시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도 조금 바뀌었습니다.
‘이건 좀 안 되겠다... 이건 좀 어렵겠다...’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지만,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 생각과 판단은 이렇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면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위로와 평안을 내려주실 때가 많습니다.
때로 자기 욕심으로 기적을 바라고, 거짓으로 초자연적인 역사를 자랑하고, 허황된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런 초자연적인 역사와 기적을 주셨는지 설명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초자연적인 역사와 기적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는 분명한 뜻과 이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하나님의 뜻과 목적하심을 성경적으로 말하지 않으면서, 함부로 초자연과 기적을 말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예전에 금이빨 사역이란 것이 유행했습니다. 기도해서 사람의 상한 이나 치료 중인 치아의 재료를 금이빨로 바꾸는 기적이 유행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역을 행하는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행하시는지 따로 설명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사람마다 필요가 다르고 아픈 곳도 다를 텐데, 왜 하나님께서 계속 모든 사람의 이빨만 금이빨로 만드시는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그 사역은 지금 다 사라졌습니다.
몇 년 전 서울의 어느 교회는 자신들의 금요 집회에 병을 치유하는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면서 신문에 크게 광고를 내었습니다. 치유를 원하는 환자들은 자신들의 집회에 참석하라고 광고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왜 하나님께서 유독 자신들의 교회에 오늘날 그와 같은 기적적인 치유의 역사를 내려주시는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교회들을 향해 자주 이런저럼 말을 하는 그 교회 목사님도 거기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광고도 없고 그런 소문도 없고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의 초자연성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하지만, 바르고 건전하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적인 이유와 목적과 뜻이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대에 알맞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오늘날에 맞게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건전한 이해와 신앙 속에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고 둔한 제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제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건전한 참된 신앙 속에, 이 세상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을 믿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