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 파송과 우리의 전도
막 6:7~13
2024.04.26.
지난주 본문에서 마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하는 나사렛 사람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여러 가지 이유로 거부합니다. 어두운 마음으로 거부하기도 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거부하기도 하고... 그러나 세상의 그런 다양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는 확장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을 파송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권능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갈릴리 구석구석 다니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지팡이만 가지고 그렇게 간편한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이와 같은 제자들의 파송은 아마도 예수님의 사역 동안 여러 번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신 이유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어 전도도 하게 하시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파송 기간은 갈릴리 지역의 거리와 범위를 생각할 때 약 1~2주 정도였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매번 돌아와서 예수님께 자세히 보고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이 이런 내용이기 때문에, 한때 전도와 선교가 활발하던 시기에 이 말씀은 매우 각광을 받았습니다. 많은 교회와 선교단체들은 이 말씀이 제자파송과 제자훈련의 중요한 원리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이 말씀을 가지고, 제자파송과 전도라는 주제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19세기에 꽃을 피운 세계 선교는 20세기에도 계속 활발히 이어졌는데, 20세기 세계 선교의 한 흐름은 페이스 미션 무브먼트라고 하는 신앙선교 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특정 교회나 교단의 지원 없이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기대하고 사역을 감당하려는 선교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으로 인해 대학생 선교단체를 비롯 크고 작은 많은 선교단체들이 세워졌습니다. 신앙선교 운동은 20세기에 대단히 큰 성과를 거두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자신들의 신앙선교의 근거가 되는 말씀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과 운동은 비록 하나님의 뜻이라 할지라도, 일부 잘못과 미비한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일부 잘못과 미비한 점 중에 하나는 바로 오늘 본문을 지나치게 해석하고 믿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여 정말로 어떤 단체는 오늘 본문을 무모할 정도로 절대적으로 믿고 사역자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한때 어떤 단체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교단보다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너무 문자적으로 그대로 따라서 사람들을 보낸 결과, 그 결과는 썩 좋지 못했습니다. 파송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고생을 하고 부작용도 많고 무엇보다 효과적인 선교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선교는 무한도전이 아니지 않습니까? 선교는 무모한 도전도 아닙니다. 무슨 일이든 잘 준비하고 계획을 세울수록 좋은 결과를 얻는 것처럼, 선교와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대부분의 신앙선교 단체들이 그런 무모한 선교방식을 버리고, 잘 준비하여 선교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읽을 때에 무조건 믿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왜 예수님께서 그때 그렇게 제자들을 지팡이만 가지고 보내셨는지 그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드린 바와 같이, 파송 기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1~2주 동안의 단기사역이었습니다. 그러니 신만 신고 지팡이만 가지고 두벌 옷도 필요 없는 것이죠.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환영하는 집에 머물렀다가 돌아오면 되었습니다.
둘째는 당시엔 사람들을 환대하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문화는 나그네나 손님을 환대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따로 숙박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지인의 집이나 혹은 모르는 집주인의 호의로 하룻밤을 보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렇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셋째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새로운 복음의 메시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TV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핸드폰도 없었습니다.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이 마을에 나타나야 새로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자들이 그들에게 전해주는 새로운 복음의 메시지를 기꺼이 들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별다른 준비 없어도 사람들에게 환영받으며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이와 같은 배경과 상황 속에 이해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무조건 보내신 것이 아니라, 그렇게 당시 유대 사회의 문화와 배경과 상황을 통해 보내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우리 시대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어떤 선교지에 가서 선교를 한다면, 그 상황과 배경에 알맞은 전도와 선교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날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전도해야 할까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 우리나라는 전도가 참 어려운 나라입니다. 예전에는 교회마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꾸준히 전도를 했지만, 지금은 어떤 방법도 효과가 없고 잘 안 됩니다. 복음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지도 오래되었고,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전도지 한 장, 전도 물티슈 하나 주기도 어렵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것을 주면 사람들이 성의로도 생각해 주고 고맙게도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것을 나에게 왜 주나?’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집니다. 부활절을 맞아 교회 연합으로 큰 행사를 하고 행진을 하고, 크리스마스를 맞아 성탄 트리를 시내 곳곳에 세워도, 사람들은 별 반응이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이 지역에 꾸준히 토요전도를 하는 이유는 그런 모든 어려움과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오기를 원한다는 사실, 우리는 여러분들에게 열려있다는 사실... 그런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그런 작은 전도의 몸짓을 계속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있고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전도의 효과나 결과를 생각하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호흡이 막히면 사람이 죽듯이, 전도와 복음 전파는 우리의 숨쉬기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기도하기 위해 그런 작은 전도라도 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한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효과적인 전도를 하고자 한다면, 이제 우리는 관계 전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관계 속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전도는 1년이 될 수도 있고 10년이 될 수도 있고 한평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잊고 늘 기도하며 말과 사랑으로 순수하게 그 사람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우리 우주를 계속 기도하며 전도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틈만 나면, ‘하나님이 도대체 너에게 뭘 잘못하신 일이 있냐 안 그러냐’고 하면서 예수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주는 자기 자신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혜택을 어려서부터 많이 받았는데... 그래서 제가 그렇게 계속 전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의 아는 분들에게 복음의 마음을 가지고 계속 관계 전도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알맞은 전도의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기도와 사랑으로 늘 한결같이 대해주시고, 좋은 삶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때때로 예수님을 전하시길 바랍니다. 만약 우리 교회를 소개한다면,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교회라고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태신자와 기도 대상자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복음의 마음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