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비유와 씨의 성장 (2)
막 4:3~9
2024.01.26.
우리는 지난주에 이 비유가 단순히 좋은 땅과 좋은 열매를 말하는 막연한 말씀이 아님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내 심령과 우리 공동체 가운데 임하여 자라야 한다는 구체적인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나와 우리 가운데 임하여 자란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를 보여주신 적이 있습니다. “너희 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이 있느니라” 그 말씀을 하신 후 엿새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습니다.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났습니다. 구름이 그들을 덮었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시적으로 이루어진 매우 특별한 사건이었습니다.
마가는 그 특별한 사건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마태는 이렇게 마무리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누가도 이렇게 마무리하였습니다.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마가와 마태와 누가의 이 마지막 말씀은 당시 사실을 말한 일반적인 진술이지만,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 분명한 결과를 보여주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네, 오직 예수만 보이는 것...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임한 놀라운 결과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자라면, 예수님이 잘 보여야 합니다. 목회자가 아니라, 예수님이 잘 보여야 그 교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가정에도 예수님이 보여야 하죠. 어떤 집에는 돈 잘 버는 아빠만 보이고, 어떤 집에는 잔소리하는 엄마만 보이고, 어떤 집에는 금쪽같은 아이만 보입니다. 예수 믿는 가정이 그런 모습이라면, 그 가정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자라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과 생활 방식과 언어와 사고와 지식에도 예수님이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한 서기관과 대화하시고 그를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막12:34) 네, 예수님은 그 서기관의 율법 이해와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모습 속에서 그가 하나님의 나라와 가까운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모습과 삶의 모든 면에서 예수님이 잘 보여야 합니다. 자기 자신만 잘 보이고 자기 지혜만 잘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내 속에 예수님이 보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도 첫째가 아닙니다. 기도와 능력도 첫째가 아닙니다. 교회 성장과 부흥도 첫째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떨어져 그 씨가 풍성하고 아름답게 자라는 것이 첫째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통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은 교회의 전도와 선교는 무엇이 될까요? 한 마디로 목회자는 목회업자가 되고 교회는 교회 장사가 됩니다.
몇몇 큰 교회들이 신도시 같은 곳에 지교회를 세울 때, 목 좋은 장소에 세련된 인테리어를 하고 거기다 기존 교인을 보내 교회를 시작합니다. 좋은 찬양팀으로 찬양을 하고 듣기 좋은 설교를 하고 조직적으로 교인을 관리합니다.
그러면 그 교회는 얼마 가지 않아 신도시 제일가는 교회가 됩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렇게 교회를 잘 세우지만, 만약 그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없다면 그것은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교인을 대상으로 그렇게 사업처럼 사역하는 교회와 목회자가 간혹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든 작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편,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한 통치와 지배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는 그럼 무엇이 될까요?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없는 기도는 오히려 우리 신앙에 해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기도는 자기 기도가 되어, 오히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자라는 것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처음에 복음의 말씀이 우리 마음 밭에 떨어져 자라게 됩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이고 어떤 원리가 있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자라고 자리 잡게 됩니다. 그때 기도는 우리 믿음과 경건에 좋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나라가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분변치 못하는 기도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본래 기독교만의 수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교도 기도를 하고 무교도 기도를 하고 미신 신앙도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 없이 하는 기도는 자칫 자기 소원을 아뢰고 자기 뜻을 기도하고 자아가 강화되고 자기 확신이 커지는 잘못된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번 그렇게 되면 그분의 신앙은 나중에 바로 잡기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우리 교회들 안에는 그렇게 신앙을 잘못 학습한 목회자, 장로, 권사, 집사들이 많습니다.
지나간 일이지만, 몇 년 전에 한 교회에서 큰 기도회가 열렸습니다. 어떤 목사의 목사 자격에 문제가 있다고 판결한 법원의 판결을 규탄하는 기도회였습니다.
거기에 약 700명 이상의 목회자와 신자들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 기도회에서 강단에 선 설교자는 출애굽기 말씀을 가지고 ‘기도의 손을 들라’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한국교회는 30~40년 전 산마다 올라가 기도해 교회가 부흥했는데, 지금은 기도하지 않아 교회가 쇠퇴하게 되었다... 세상은 주님을 환영하지 않았듯 지금도 교회를 환영하지 않는다. 세상은 항상 전쟁을 걸어온다. 이를 이기는 방법은 전능하신 하나님 손에 붙들려 있는 것이다. 최고의 지혜가 무엇인가. 기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 설교자는 이 난관을 기도로 해결해야 한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 법원이 그 목사의 자격을 문제가 있다고 판결한 것은 그 과정이 교단의 법과 절차에 위배되었기 때문입니다.
본래 그분은 그 교단의 목회자가 아니어서 교단을 옮겼는데, 그 과정에서 교단의 법과 절차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것입니다. 작은 절차상의 그 문제가 갈등과 대립으로 교회 안에서 잘 처리되지 못하고 법정에까지 간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교단법에 따라 판결한 법원을 잘못되었다고 큰 기도회를 열고, 나아가 이 일로 국가권력이 교회를 탄압한다고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요?
그래서 비록 몇 년 전 지나간 일이지만, 이런 안타까운 기도회가 한국의 큰 교회와 교단 안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기도가 기도가 될 수 있을까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대로 기도하고 내 뜻을 이루는 수단이 아닙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변치 않고 기도한다면, 아무리 기도해도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통치는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우리 신앙에 가장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임하는 하나님의 통치와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을 잘 배워서, 우리 심령과 교회와 가정과 기도와 신앙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보이고 예수님이 보이는 아름다운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