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비유와 씨의 성장 (1)
막 4:1~14
2024.01.19.
지금까지 우리는 마가복음 1~3장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1~3장을 간단히 요약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초기 갈릴리 사역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처음에 갈릴리에서 어떻게 사역을 시작하셨는지, 거기서 무슨 말씀과 행동을 하셨는지,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리고 그분의 지지자와 적대자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마가복음 4장은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의 본격적인 말씀을 하시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이제까지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제대로 말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다 논쟁적인 말씀들이었죠.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가르침을 말씀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어떤 어렵거나 고상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어린아이도 들을 수 있는 쉬운 비유였습니다.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이 비유는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서 씨를 네 가지 밭에 뿌린다’는 비유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씨 뿌리는 비유, 혹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 혹은 네 가지 밭의 비유, 혹은 네 가지 밭에 떨어진 씨의 비유로 불립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뭐라고 부르든, 중요한 것은 이 비유가 아주 중요한 비유라는 사실입니다.
2절을 보시면,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라고 말씀하고 있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가 많은데, 마가는 그중 이 비유를 가장 먼저 소개하는 것입니다.
마가뿐만 아니라 나중에 복음서를 쓰는 마태와 누가도 다 이 비유를 비유 중 첫 번째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의 중요성은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발견됩니다. 13절을 보시면,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씨 뿌리는 비유는 다른 모든 비유의 기초가 되는, 그래서 비유 중의 비유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이 비유의 중요성은 이 비유가 예수님의 첫 메시지와 연결된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였습니다.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비유의 의미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10~11절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그러니까 이 비유의 내용은 씨를 네 가지 밭에 뿌리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처음에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를 여기서 다시 말씀하시고... 따라서 이 비유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중요한 이 비유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요?
그런데 우리가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이고 어떤 축복과 능력의 나라인지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그 나라가 어떻게 자라는가’ 입니다.
언뜻 이상하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이유를 조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두 마디 말로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어렵습니다. 그때도 어렵고 지금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에게 영적인 그 나라가 무엇인지 먼저 말씀하기보다는, 다만 그 나라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먼저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나라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덜 중요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것을 알고 싶지만, 그러나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여 자라는 실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어째서 이 비유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일까요?
이 비유는 씨가 자라는 것을 말하고, 또 씨는 14절에서 말씀이라 하고, 그렇다면 결국 말씀이 자라는 것이 되는데... 그런데 어째서 이 비유가 하나님의 나라가 자라는 비유가 될 수 있을까요? 비록 11절이 이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비유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좀 더 설명이 필요합니다.
열쇠는 14절의 ‘말씀’이란 단어에 있습니다.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여러분, 여기서 뿌리는 말씀은 일반적인 하나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마가 당시, 말씀을 의미하는 ‘로고스’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가리키는 전문용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예를 4:33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여기서 말씀은 일반적인 하나님의 일반적인 말씀이 아니라, 4장이 말하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이죠. 그래서 씨 뿌리는 자가 뿌리는 말씀은 일반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에서 씨가 자란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이 자란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왕권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비유를 단순히 ‘좋은 땅이 되어야 한다, 말씀을 잘 듣고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런 일반적인 교훈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빠진 그런 일반적인 교훈은 이 비유의 본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비유를 바르게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자란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그 사람에게 그런 왕 되신 하나님의 왕권 통치가 점점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왕권 통치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신자가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언어와 사고방식과 가치관과 일상의 선택과 결정 속에, 어쩐지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하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받고 그분의 선한 지배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인데, 그런 이해와 인식이 없고 그저 자신의 힘으로 열심히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어서 조금 잘 되면, 그것이 자기 의가 되고 자랑이 됩니다. 자신이 예수를 잘 믿어서 그런 결과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이 일반 신자에게도 많겠지만, 목회자들에게도 많습니다. 한국교회가 성장할 때, 많은 목회자들은 그것을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교회를 키웠고,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셨고 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습을 합니다. 지금 교회들은 바야흐로 세습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교회 세습, 목회 세습은 하나님의 통치와 조화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교회들이 이렇게 된 것은 아무래도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 자체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가 나와 우리 가운데 자라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소홀히 하고 그저 열심히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내가 열심히 믿어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작아지고 사라지고 온전히 그분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인간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도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성령 충만을 받고 내가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령으로 충만케 되어지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그 성경 말씀들은 다 수동태인데, 안타깝게도 다 능동태로 번역을 해놓았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잘못 이해하여, 아름답고 겸손한 그분의 진정한 힘과 능력을 가지지 못하고, 그분을 이용하여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힘과 능력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지 못한 안타까운 근본적인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가 내 삶과 우리 교회 가운데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늘 기도하는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