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에서 제자와 가족으로 (2)
막 3:7~19, 31~35
2023.12.29.
마가복음 3장 말씀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결과 그분을 따라온 많은 사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서 열두 제자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의 진정한 가족이 됩니다. 반면 그들과 달리 예수님을 의심하고 성령을 모독하는 무리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가복음 3장은 한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에서 제자와 가족이 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되, 그분 주위를 맴도는 신앙이 되어선 안 됩니다. 그분 주위에 머무는 신앙이 무엇입니까? 네, 그분의 가르침 안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고 그저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예수 이름으로 얻는 신앙이죠. 안타깝게도 그간 한국교회 신앙은 주로 그와 같은 신앙의 길을 추구해 왔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예수를 통해 얻는 내 유익과 이익과 혜택에만 관심이 컸습니다. 교회는 전쟁 후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미군의 물자와 미국 기독교의 도움으로 성장을 했습니다. 교회는 그런 물자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유학의 기회도 주었습니다. 정부도 교회를 지원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기독교 신앙은 믿는 자에게 여러모로 유익을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왔고, 교회는 날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는 그 자리에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상당수 교회와 목회자와 신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려는 진지한 모습과 의지보다는, 내 문제를 해결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열심과 간구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복 받고 잘 되고 천국 가고... 세상의 복도 받고 하늘의 복도 받고... 이런 것이 한국 기독교의 전형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병이어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쫓지만, 인자의 살과 피를 먹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실망하고 발길을 돌리는 그런 모습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잘 모르는 기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오래도록 그런 신앙을 추구해 왔기 때문에 지금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에 이제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주변에 머무르지 않고 그분의 말씀과 가르침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과 가르침 안으로 들어가려면 우선 그것을 알아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실천은 어렵지 않습니다. 실천은 어린아이의 걸음마로 시작하여 장성한 자의 힘찬 발걸음으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이나 교회나... 우리 모두가 그런 분명한 방향을 잡고 한 걸음씩 걸어가면 분명히 변화된 새로운 생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을 대충 알고 대충 믿는 주변부 신앙이 되어선 안 됩니다. 그것만큼 안타까운 것이 없습니다.
물론 어떤 이유와 계기이든 예수님께로 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귀한 일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그런 영적인 기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히 지금은 매우 어두운 시대이고 마지막 때이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 자체가 큰 은혜이고 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어느 정도 알고 어느 정도 믿는 것에 만족해선 안 됩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위치가 예수님 가까이에 있다는 좋은 의미이지만, 그러나 그곳이 최종적인 자리는 아닙니다. 그곳은 영적으로 아직 중간지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로 나아온 사람은 결국은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 주변에 머물다가 다시 자기 삶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예수 안으로 들어가 그의 진정한 제자와 가족이 되거나...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마가복음을 비롯하여 모든 복음서는 예수님께로 왔다가 결국 돌아가는 많은 사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믿지 않았으면 믿지 않았지, 중간에 다시 돌아가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당신은 어디로 갈 것인가?...
돌아보면 저 자신 비록 목사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늘 너무 부족한 죄인이고 평균 이하 신앙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성경 말씀을 알아 오면서, 신앙의 길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조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천로역정의 주인공처럼 신앙의 길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나에게 소망이 없고 구원이 없음을 알고 그 길을 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쓰러지고 넘어지면서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을 보면, 전혀 신앙의 길을 떠나지 않은 신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죄된 삶을 떠나지 않습니다. 자기의 죄된 중심을 떠나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삶을 그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욕심을 버리거나 고민하지 않습니다. 남을 미워하고 해를 끼치는 것을 예수 믿기 전이나 후나 똑같이 합니다. 천국도 좋아하고 돈과 권력도 좋아합니다. 죄를 싫어하는 모습, 어딘지 모르게 정직한 모습, 어딘지 모르게 깨끗한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을 포장하고 가면을 쓰고 거짓말도 하면서 세상적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분들은 아직 신앙의 길을 떠나지 않은 분들입니다.
반면에 신앙의 길을 떠나기 떠났지만, 도중에 머물러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신앙이 들어왔다 나갔다 합니다. 때로는 믿음으로 살고 때로는 세상적으로 삽니다. 상황에 따라 하나님을 인정하기도 하고 부인하기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겠다하는 마음과 의지가 부족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선택하는 선택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또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가시의 기운에 막혀 성장이 멈추고 신앙의 길이 멈춘 것입니다.
‘그래도 그런 사람도 신앙의 길을 나섰으니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멈춘 신앙은 구원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선택의 순간이 오고... 그 사람은 돌아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양은 양으로 염소는 염소로 나누어지는 영적인 때가 오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지금까지 하나님도 믿고 세상도 믿으며 성장해온 한국 교회는 이제 영적인 기로에 서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마가복음 3장 말씀을 통해, 확실한 신앙을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비록 나는 연약하고 힘이 없지만, 그래도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확실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마음 중심으로 참된 신앙을 고백하면서, 우리의 부족한 손과 발을 일으켜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와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께서 참된 신앙의 길을 걷고자 하는 여러분과 저에게 언제나 새 힘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