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신자들에게
히 7:11~17, 24~28
2023.12.10.
오늘 본문 말씀은 히 7장 전체입니다. 그래서 7장 전체를 다 읽어야 하지만, 조금 길어서 간략히 2부분만 읽었습니다.
그런데 2부분만 읽었기 때문에, 7장 전체 말씀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7장 전체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조금 더 말씀드리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레위 계통이 아닌 멜기세덱 계통의 대제사장이시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면서 레위 계통 제사장들을 세우셨지만, 그러나 그 제사장들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제사장들이었다.
하나님의 본래 계획은 멜기세덱과 같은 살아있는 영원한 대제사장을 세우시는 것이다. 그 살아있는 영원한 대제사장은 우리를 온전히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네, 7장 말씀은 이런 내용입니다. 요약하고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7장 말씀이 히브리서 전체 안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히브리서는 이 내용을 히브리서 전체의 한가운데에 두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많은 성경은 한가운데 있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교차대구법 구조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의 한가운데에는 주기도문이 있고, 마태복음의 한가운데에는 천국 비유들이 있고, 요한계시록의 한가운데에는 사탄과의 싸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들이 중요합니다. 그런 것처럼 히브리서의 한가운데에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구원 때문입니다. 사람의 구원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2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제사장이 필요하고, 다른 하나는 희생제물이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죄인인 사람은 하나님께 스스로 나아갈 수 없고, 또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피를 흘려주시고 속죄 제물이 되신다는 사실만 알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사실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돌아보면, 히브리서 기자는 이 내용을 앞서 4장 마지막 부분에서부터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5장에 들어서서, 레위 제사장직과 예수님의 제사장직을 비교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비슷하고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의 차별성을 말씀할 때, 처음으로 멜기세덱이 등장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5장에서 멜기세덱을 3번 언급하는데, 마지막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그리고는 설명을 중단하였습니다. 멜기세덱에 대한 성경 신학적인 해석에 대한 말씀을 해야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말씀을 중단하고 그 대신에 4개의 권면의 말씀을 했습니다. 그 4개의 권면의 말씀은 책망과 경고와 격려와 약속의 말씀이었는데, 우리는 그 말씀들을 지난 몇 주간 동안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7장에 들어서면서, 다시 그 중단했던 멜기세덱 말씀으로 돌아옵니다. 멜기세덱에 대한 말씀으로 돌아온 이유는, 다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기 위해서입니다.
7장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하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은 3가지입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대제사장의 원형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내용을 첫 번째로 말하는데,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멜기세덱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이것은 창세기 말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그다음 말씀입니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네, 이 말씀에 의하면 멜기세덱은 신비의 인물이자 천상의 인물처럼 보입니다.
제가 오래전 학생 때 이 말씀을 교회에서 듣고 의문이 생겼습니다. ‘성경은 참 알 수 없는 말씀이 많구나... 멜기세덱은 도대체 누구일까?’ 많이 궁금했습니다.
그러면 멜기세덱은 누구일까요?
1세기 외경 가운데에는 멜기세덱을 천상의 인물로 말하는 외경도 있습니다. 멜기세덱을 그런 천상의 인물로 생각했던 공동체도 있습니다. 지금도 멜기세덱을 구약에 나타나신 예수님으로 해석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하는 이 말씀은 실제로 멜기세덱이 그런 인물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것은 히브리서 기자의 멜기세덱에 대한 성경 신학적인 해석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경이 그의 인간적인 배경을 의도적으로 감추면서 그의 왕이면서 제사장인 특별한 모습을 장차 오실 메시아와 예언적으로 연결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성경이 말씀하는 그 말씀 안에서 멜기세덱을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 이하 말씀은 멜기세덱에 대한 히브리서 기자의 성경 신학적인 해석입니다. 멜기세덱은 왕 같은 제사장이고, 영원한 제사장이고, 아브라함보다 높은 인물이고, 아브라함의 후손인 레위 제사장들보다 높은 진정한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멜기세덱은 진정한 대제사장의 구약적 모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10절까지 히브리서 기자가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이 성경 안에 진정한 대제사장의 모형과 원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모형은 멜기세덱이고, 원형은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멜기세덱은 신비한 인물이고 높은 인물이지만 모형에 불과하고, 레위 제사장들은 그 모형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시적인 제사장들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이 뜻하신 진정한 대제사장의 원형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율법의 대제사장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 내용은 11절부터 19절까지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율법의 아주 깊은 내용 하나를 말씀합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과 제사장의 관계입니다. 다시 말해, 율법과 제사장은 서로 연결된 하나의 체계라는 사실입니다.
대개 우리는 제사와 제사장을 율법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제사와 제사장은 율법 이전에 존재하고, 그런 제사와 제사장이 있는 상태에서 율법이 나중에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율법이 생기고 나서 율법은 다시 제사와 제사 직분을 규정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율법과 제사 직분은 서로 물고 물리는, 연결된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율법에 따른 레위 제사장들이 그치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새로운 대제사장이 세워졌다면, 율법도 바뀌어야 하고 새로운 율법이 세워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면 과거의 옛 율법은 우리를 온전케 하지 못하는 연약한 율법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사도 바울도 잘 말씀한 바 있습니다. 옛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죄를 가르쳐주지만, 그러나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못하는 무익한 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새로운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율법을 주십니다. 그 새로운 율법은 우리를 온전케 하는 능력을 가진 진정한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그와 같은 새로운 율법을 우리에게 주시는 진정한 대제사장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맹세로 되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다윗의 예언인 시편 110편 4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되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맹세를 통해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이 내용을 레위 제사장들과 비교하면, 레위 제사장들에겐 하나님의 맹세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레위의 후손을 태어나 율법의 제도 안에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 가운데에는 합당치 못한 제사장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맹세에 의해 하나님의 손으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비교될 수 없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의 특징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레위 제사장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계속 새로운 사람이 세워지는 임시적인 제사장이지만,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존재하십니다.
이렇게 히브리서 기자는 7장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의 비교할 수 없는 우월성에 대해 크게 3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원형이시고, 새로운 율법의 대제사장이시고, 맹세로 되신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단순히 이와 같은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런 특별한 분이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단순히 이와 같은 사실이 아니라, 왜 이 말씀이 히브리서의 한가운데인 7장에 있느냐 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왜 이 말씀을 히브리서의 가장 중요한 말씀으로 수신자들에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네, 그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지금 로마교회 공동체 안에는 박해를 피해 다시 옛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신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박해는 다가오고 있고, 하나님의 뜻엔 어둡고, 믿음은 확신에 차지 못하고, 유대교에 대한 옛 마음과 정서는 남아있고, 무엇보다 유대교로 돌아가면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그 흔들리는 마음으로 생각하기에, 유대교를 믿으면 아무 어려움이 없는데 기독교를 믿으니 이렇게 어려움이 많고 위험하고 소외되고 고립된다면, 유대교가 옳고 기독교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이런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흔들리는 신자들이 많다면,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야 할까요?
경고도 하고 책망도 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유대교로 돌아가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이유를 말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네, 그 말씀이 바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랫동안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성전과 율법과 제사와 제사장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들은 모세 이후로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 다 예수님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필요했던 임시적인 방법들이었고, 이제 다 낡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성전도 낡았고 율법도 낡았고 짐승의 피도 낡았고 인간 제사장도 낡았습니다.
달라진 영적인 시각으로 볼 때, 인간 제사장이 예루살렘 성전과 율법에 의지하여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리는 모습은 사실 낡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난센스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이시고 말씀이시고 희생제물이시고 대제사장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것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제 껍데기가 되었고 죽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 방법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소망도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 말씀으로 그들에게 권면합니다.
“돌아가서는 안 된다... 비록 어려움이 있고 박해가 있고 고난이 있고 아득하고 희미하긴 하지만,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고 저 영구한 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 아직 성전이 있고 율법이 있고 제사가 있고 제사장들이 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성전을 버리고 율법을 버리고 제사를 버리고 제사장도 버리고... 오직 예수님만 믿고 영적인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외롭고 어렵고 고독한 길이죠.
성전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존 신앙을 버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박해를 감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들은 가야 합니다. 그것은 그 길이야말로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가는 진정한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말씀을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도 그때 신자들처럼 세상으로 돌아가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예수 믿으니 어렵고 힘듭니다. 예수 안 믿으면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편하게 살 수 있죠.
돈 많이 벌고 행복 추구하고 힘센 사람 따라가고, 거짓말도 하고 죄도 좀 짓고 영적인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과 친하면 살기가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더러운 물에서 나도 더러우면 참 편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 예수님 말씀 들어야 하고 교회 다녀야 하고 내 맘대로도 살지 못하고 재미도 없고 양심도 가책을 받고 고난도 받아야 하고...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신자들 중에 예수 믿다가 도중에, 그때 그 유대인 신자들처럼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간 우리 교회의 성장엔 거품이 많이 끼였습니다. 나라가 성장할 때 교회도 성장했고, 나라가 정체될 때 교회도 정체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도 많이 하고 전도 많이 해서 교회가 성장했다고... 그렇게만 생각하고 자만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 그 거품이 빠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사람들이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셔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실망하고 떠난 것처럼, 지금 떠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세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당장은 편하고 좋겠지만, 돈을 많이 벌 수도 있고 내 뜻대로 잘 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영생이 없는 삶입니다. 황혼이 드는 저녁에 돌아갈 집이 없는 어린아이가 되고 맙니다.
우리는 비록 예수 믿어서 어렵고 힘들고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해도, 예수님을 붙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아도, 우리는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는 확신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의 주님이시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줄 확실히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확신과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7장 말씀을 쓴 히브리서 기자의 마음인 줄 믿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에 대한 그런 믿음과 확신이 언제나 여러분과 저에게 풍성히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