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

믿음찬교회 0 251 2023.07.18 16:02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
막 1:16~20
2023.07.14.

오늘 본문은 제가 아마도 처음으로 성경에 의문을 품었던, 그래서 기억에 남는 본문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교회를 다녀서, 학생 시절에는 성경에 의문을 품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생 때부터 성경을 틈틈이 읽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하나둘 성경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으레 성경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그렇듯, 신앙 서적과 성경 해설서 등을 조금씩 사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20대 중반에 오늘 본문이 큰 의문으로 제 앞에 등장했습니다.
이 본문에 대한 그때까지 제 생각은 ‘그냥 그랬나 보다’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는데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 하시니 따라갔구나... 그랬나 보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지나가곤 했습니다. 뭐 특별한 가르침의 말씀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뭔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처음 본 사람에게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도 이상하고, 또 그 말을 듣고 갑자기 따라가는 제자들은 더 이상하고... 예수님은 최면이나 마술을 걸고 제자들은 홀린 것 같았습니다. 또 이런 내용을 아무렇지 않게 기록하는 마가복음도 이상하고... 그래서 저는 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이런 의문에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조금 아는 사람이 말이 많고 많이 아는 사람은 말이 적은 것처럼, 별말을 하지 않습니다. ‘의문도 너의 몫이고 해결도 너의 몫이니, 한 번 찾아보라’는 의도 같기도 합니다. 네, 본래 대가나 경전은 친절하지 않는 법입니다. “물을 떠오너라... 다시 떠오너라...”하지, 친절하게 사탕을 까서 우리 입에 넣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가복음은 무엇을 위해 그런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을까요? 분명 뒷이야기가 있고 배경이 있지만, 마가복음은 어떤 중요한 메시지를 위해 그것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네, 그것은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말하고 또 여러분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예수의 부르심에 대한 그들의 즉각적인 순종과 전적인 포기입니다. 시몬과 안드레는 배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었는데,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배에 있었는데, 아버지와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 얼마나 극적인 순종이고 전적인 포기입니까? 만사를 다 제쳐두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따른 것입니다. 마가는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인상 깊게 전달하기 위해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사람이 예수님을 어떻게 따를 것인가?’에 대해 가르쳐줍니다. 네, 우리는 모든 것을 상대화하고 예수님을 즉시 그리고 전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왕이 부를 때, 신하나 백성은 이 말 저 말 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것이 최고의 절대적인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은 이와 같은 가르침과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배경적 설명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전적이고 즉각적인 순종을 할 이유와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에게는 언제나 전적이고 즉각적인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는 이와 같은 전통적인 본문의 의미를 넘어서, 좀 전에 우리가 고민했던 의문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그것은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나?’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이 알려주지 않는 이 내용을 다행스럽게도 저 멀리 있는 요한복음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도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제자는 앞의 세 복음서와 조금 다릅니다. 안드레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사람, 그리고 안드레의 소개로 온 베드로, 그리고 빌립과 빌립의 소개로 온 나다나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요한복음 내용을 통해 안드레와 베드로가 처음에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 뒷이야기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배에서 그물 던지던 안드레와 베드로를 만나시기 전에, 안드레가 예수님을 먼저 만난 사실이 있고 또 그런 안드레가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간 일이 사전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시몬이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베드로’라는 이름을 받았죠.
따라서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안드레와 베드로를 만나 그들을 제자로 부르실 때에, 예수님은 안드레와 적어도 두 차례 이상, 베드로와 한 차례 이상 이미 만난 사이였습니다. 더구나 안드레와는 밤새 대화를 하셨고, 베드로에게는 새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 그 둘을 제자로 부르신 것은 뜬금없는 갑작스런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 두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을 만나 그 길로 예수님을 따라나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그 두 제자가 구면이었다는 사실은 이렇게 밝혀지는데,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그 두 제자가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한두 번 만났다고 어떻게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라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도 요한복음이 한 중요한 힌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네, 그것은 안드레가 본래 세례요한의 제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요1:35~37) 여기서 이 두 제자 중 하나가 바로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본래 세례요한의 제자였는데, 세례요한의 소개로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안드레는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이지만 단순한 어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례요한의 개혁적이고 획기적인 메시지에 매료되어서 그를 따라다녔고, 또 그를 따라다닌 정도라면 평소 이 사람이 단순히 고기 잡는 인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안드레는 그 힘들고 잘못된 시대 속에 근본적인 의문을 가진 인물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고민한 인물이었고 그래서 세례요한의 새로운 메시지를 접하자 그 메시지에 빠져들고만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베드로에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도 단순히 고기만 잡던 어부는 아니었습니다.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나고 와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하자, 그는 그 즉시 안드레와 함께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대개 우리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단순히 무식한 어부로 알죠. 그러나 성경이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은 시대 속에 하나님의 뜻을 고민하는 깨어있는 인물이었고, 또한 그 고민하던 문제에 기회가 주어졌을 때 즉시 행동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 바로 그와 같은 모습을 보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한적한 갈릴리 해변을 지나가시다가 즉흥적으로 아무나 자신의 제자로 부르셨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뭔가를 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뭔가는 자신의 시대와 현실 속에 하나님의 뜻을 고민하고 찾는 그런 마음 중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던진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도대체 어떤 말씀을 하시며 그들에게 자신을 따라오라 하셨는가? ...
네, 그것은 바로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단순한 어부였다면, 예수님의 그 말씀은 그들에게 매우 이상한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뭐지? 고기를 낚아야 먹고 살지, 사람을 낚아서 뭐하게?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가?’
그러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들은 자기 삶에만 관심 있는 단순한 어부가 아니었습니다. 부조리하고 모순되고 신음하는 당시 세상을 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예수님의 그 말씀의 의미를 다 알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보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이해한 예수님의 그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네, 그것은 바로 구원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을 낚는다는 것은 소망 없는 이 현실 속에 버려진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의미인 것이죠.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과 질병과 율법과 정치와 악한 영의 권세 아래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떠났습니다. 그물을 버리고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복음의 위대한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이상의 사실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교훈과 은혜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도 지금 이 시대 속에 이렇게 예수님을 따라나선 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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