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하나님의 나라 (2)

믿음찬교회 0 81 2023.06.27 18:15
하나님의 나라 (2)
막 1:14~15
2023.06.23.

우리는 지난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복음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예수님은 그 나라의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보여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음입니다. 어렵지 않고 아주 쉬운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분들이 이와 같은 예수님의 복음에 대해 어려워하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바울의 십자가 복음과 혼동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 보다 바울의 십자가 복음을 더 많이 말하고 강조합니다. 그렇죠? 그래서 복음이라고 하면 복음서에서 찾지 않고, 주로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같은 바울의 말씀에서 찾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쩐지 바울의 복음은 잘 알아도, 예수님의 복음은 잘 모릅니다. 그 결과 복음은 바울의 십자가 복음으로 말하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나라대로 따로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회자 가운데에도 이 둘 사이의 관계나 차이를 잘 모르고 문제의식조차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어떻게 두 개일 수가 있겠습니까? 설령 복음이 두 개라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바울의 복음이 아닌 예수님의 복음을 선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의 십자가 복음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이 어떻게 다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사도 바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복음이 둘이 아닌 하나라면, 우린 그것을 어떻게 하나로 말할 수 있을까요? 결론적으로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바울의 십자가 복음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한 준비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의 십자가 복음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잘 이어져야 합니다. 이 말이 이해되시나요?
그래서 조금 더 설명드리면 이렇습니다.
바울의 십자가 복음이란 예수님이 날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내가 아무 공로 없이 은혜로 구원 얻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대개 여기서 중요한 내용을 오해하곤 하는데, 그것은 바울이 말씀한 이 구원이 최종 구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신자들이 십자가 은혜로 얻은 구원은 엄연히 지금 현재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우리는 미래의 최종 구원을 바라보면서,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씀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최종 구원이 결정되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바울의 복음과 예수님의 복음은 만나게 되고, 바울의 복음은 예수님의 복음을 위한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복음과 예수님의 복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바울의 복음은 예수님의 복음으로 이어지면서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교회들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제쳐놓고 바울의 십자가 복음만 말하고, 또한 그 의미를 최종 구원으로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한국교회의 신앙은 구원의 확신은 차고 넘치지만 구원의 삶은 작고 초라한, 안타까운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에 대한 이와 같은 잘못된 이해를 바로잡아야 하겠습니다.
아무 공로 없이 은혜로 최종 구원 얻었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의미이고, 구원받은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 나라 안으로 들어가고, 그 나라의 삶과 생활을 자기 믿음의 힘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남을 지배할 수 있고 힘을 행사할 수 있을 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그 나라의 삶의 방식입니다.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수평적으로 잘 대해주는 것이 그 나라의 삶의 방식입니다. 돈을 많이 쓰지 않고 돈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 것도 그 나라의 삶의 방식입니다. 힘든 세상을 불평과 원망 없이 지혜롭게 살며 늘 감사하는 것도 그 나라의 삶의 방식입니다. 상처를 다스리고 말씀과 기도 안에서 잘 회복하는 것도 그 나라의 삶의 방식입니다. 본질에 집중하고 형식이나 겉치레를 배격하는 것도 그 나라의 삶의 방식입니다. 깨끗함과 아름다움과 진실을 추구하는 것도 그 나라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이와 같은 삶의 방식을 내 심령과 사고방식에서부터 시작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가정 안에서 만들어 가고, 교회와 사회 속에서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 나라의 복과 은혜가 우리 안에 임합니다. 상처와 미움에서 벗어나고, 죄와 더러움에서 벗어나고, 낙심과 무의미에서 벗어나고, 하나님 나라의 생명과 은총이 임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한 증거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과 사역 가운데 그런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능력과 역사를 많이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극심한 환난과 어려움 중에서도 ‘내가 기뻐하고 기뻐한다’라고 말했고, 어려움을 겪는 교회를 향해서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면, 우리의 모든 이해를 능가하고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은총 가운데 늘 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의 이 위대한 복음의 말씀은 1세기 갈릴리 땅에서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 말씀의 온전한 성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과학혁명으로 과히 인류 역사의 새로운 문을 열고 있습니다. 인류는 인공 지능과 생명 연장과 우주 개발 등 혁명적 진보와 발전을 통해 하나님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 옛날 시날 평지의 바벨탑처럼 현대의 바벨탑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세상 속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변화나 진보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루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야말로 우주적 완성이자 대단원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소망하며 기다리는 여러분과 저에게 큰 힘과 능력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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