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 (1)
막 1:14~15
2023.06.16.
마가복음 서문을 지나, 우리는 이제 드디어 마가복음 입구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문이 열리면서 인상적인 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한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갈릴리라는 의외의 장소,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인물, 그리고 그 사람의 전혀 새롭고 놀라운 선포 ... 우리는 이렇게 위대한 복음의 첫 장면을 인상 깊게 만나게 됩니다.
갈릴리는 당시 로마 세계에서 거의 이름이 없는 무명의 장소였습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갈릴리는 농사나 짓고 고기나 잡는, 그리고 이방의 문화가 섞인, 천한 변방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로마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마치 우리 이웃 동네 같은 그런 장소에서 시작된다는 것은 참으로 의외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나고 자라셨는데, 그곳은 갈릴리 호수 남서쪽 작은 동네입니다. 그곳은 호수로부터 약 20km 떨어져 있지만, 그곳도 다 갈릴리 지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나고 자란 그 고향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위대한 일과 그 위대한 메시지를 어떻게 거기서 시작할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평범하고 초라한 갈릴리를 다니면서 그 복음의 말씀을 하신다는 것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위대한 말씀은 세상의 중심에 서서 외쳐야 할 말씀 아닐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보잘것없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시작하셨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장소만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체도 아이러니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삼십 평생 평범한 삶을 사시다가 어떻게 그렇게 복음을 선포하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우리는 마태와 누가를 통해 그분의 비범한 출생과 비범한 성장을 조금 압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예수님은, 비록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일찍부터 자신의 사명을 준비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렇게 복음의 역사는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인물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분이 의외의 인물이라는 사실은 그분의 메시지를 통해 확인됩니다. 그분은 한 생소하고 특별한 메시지를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때가 찼다는 말씀도 생소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도 생소합니다. 누구도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도 유대인들에겐 너무나 생소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의 태생적인 선민인데, 그런 그들에게 회개와 복음이 필요하다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생소함을 넘어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마가복음의 첫 장면은 한 마디로 생소함 그 자체입니다. 장소도, 인물도, 메시지도... 다 생소하고 기이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 눈에 기이하게 시작하는 복음의 첫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생소한 장면들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그분의 첫 메시지입니다. 첫 일성...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맨 처음 하신 메시지... 그것은 분명 무척 중요한 내용일 것입니다. 그 첫 메시지는 바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때가 찼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어떤 결정적인 때가 찼다는 의미입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그분의 구원을 진행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구원의 역사는 많은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계속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실패의 하나님입니다. 광야에서 실패했고, 가나안 땅에서 실패했고, 북이스라엘에서 실패했고, 남유다에서도 실패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고, 그 후 적은 수가 돌아오는데, 그들도 곧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계속되는 그런 실패 속에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찼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은 최후의 카드를 꺼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따라서 때가 찼다는 말씀은 이제 하나님의 그런 구원 역사의 최종적인 때가 도래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때가 찼다는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것이 예수님의 첫 메시지의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때가 찼다’는 것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도 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이기에, 우리에게 중요할까요? 한 마디로 그것은 우리의 구원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오랜 구원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실 때 하나님의 나라를 통해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최종적으로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개인적 구원이라기보다는 공동체적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종말론적인 구원이 이르렀다는 의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해 그 나라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고, 우리가 거기에 들어갈 수 있고, 또 심지어 지금부터 그 안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 없고 악하고 어두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영원한 복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릅니다. 이 세상 현실에 얼마나 많은 악과 어둠과 절망이 있습니까? 우리는 짧은 행복을 맛보지만, 긴 슬픔과 고통의 삶을 삽니다. 역사를 일반 백성의 시각으로 돌아보면, 모두 비극과 슬픔과 눈물뿐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밝게 웃고 행복하지만, 자랄수록 그 웃음과 행복은 사라지고 맙니다. 참된 행복과 기쁨을 찾을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1세기 당시 유대 백성들도 그런 세상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나라는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했고 지도자들은 부패했고, 그들은 가난과 착취와 압제 속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보이는 현실에 희망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희망이 있다면 그건 바로 메시아가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 갈릴리에서 들린 이 메시지는 정말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정말로 가까이 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큰 기쁨과 소망의 날이 오겠네...’ 사람들은 모두 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생각이 다 맞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하나님의 나라는 부강한 다윗 왕국 같은 그런 세상적인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 중 다수는 그분의 말씀을 거짓으로 여기고, 나중에 예수를 저버리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나라를 영적으로 누리며 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온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이 말씀한 그 나라는 다윗 왕국 같은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나라가 아니고, 죽어서 가는 저 천국 같은 나라도 아닙니다. 그 나라는 우주적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처음엔 우리 가운데 영적으로 임하고, 그리고 우리 가운데 자라고, 그리고 마침내 우리 눈에 보이게 임하는, 그런 영적이고 실제적이고 고차원적인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이 말 저 말 좋은 말씀을 하신 인류의 성인이나 선생이 아닙니다.
그분은 사랑을 말씀하셨죠. 사랑을 말하려고 사랑을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중심 윤리로 사랑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모든 아름답고 귀한 말씀도 아름다운 삶과 윤리를 말하기 위해 말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윤리와 삶이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도 그 기도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신 것도 단지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로 임했음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죄인들과 먹고 마시고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신 것도, 그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와 넉넉한 모습을 우리의 실재 속에 보여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깊이 말하자면 그것은 단지 나 개인의 구원과 대속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행동과 삶은 다 하나님의 나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시고...
그러므로 예수님의 복음은 곧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잘 모르면, 예수님의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됩니다. 우리의 구원도 우리의 삶도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축복도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나라를 잘 이해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살펴보고, 다음 주에 계속 이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