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와 성령 (2)
막 1:9~13
2023.05.26.
우리는 지난주에 마가복음 서문 말씀이 광야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광야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서문이 강조하는 성령에 대해서 살펴보고, 역시 그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서문에서 광야만큼이나 두드러진 핵심 용어는 성령입니다. 마가복음 서문은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과 함께 이루진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시는 분이고, 성령은 그분에게 비둘기같이 임하고, 또 성령은 그분을 광야로 몰아가십니다.
마가복음 전체에서 성령에 대한 언급은 모두 6번인데, 그중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한 성령의 언급은 4번이고, 그 4번 중 3번이 여기 서문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 서문은 예수님의 사역이 성령과 함께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매우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가는 왜 그분의 사역이 이렇게 성령과 함께 이루어짐을 강조할까요?
그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그것이 메시아에 대한 구약 예언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영으로 특별히 기름부음 받은 인물을 의미합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사11:2),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사61:1) 이와 같이 구약의 여러 예언들은 메시아와 성령을 긴밀히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성령과 함께 시작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가 여기서 성령을 강조하는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구약 예언 때문만이 아니라, 성령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상징이자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가 일어난다는 단적인 의미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이제 활동하신다는 것은 이 땅에 새로운 소망이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마가는 이 서문에서 예수님의 사역과 성령을 밀접히 결부시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는 이렇게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만든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상으로 우리는 마가복음 서문의 특별한 강조점 2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광야는 새로운 시작의 장소이고, 성령님은 새로운 역사의 원동력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서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복음이 이렇게 광야라는 새로운 시작의 장소에서, 성령님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원동력을 통해 시작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 오늘 우리는 어떤 은혜를 받고,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이렇게 새롭게 시작하시는 역사에 우리도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은 바로 그런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은 지금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바람이 붑니다. 죽었던 우리의 생명이 살아나고, 어두웠던 우리의 마음에 빛이 비치고, 의미 없던 우리의 삶에 의미가 넘쳐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새 역사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가복음이 이제부터 말씀하는 이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에 마음이 움직이고 반응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소망을 주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어떻게 거기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우리 신앙은 단순한 종교활동이 아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늘 우리의 광야를 재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시작과 출발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초라한 어제와 오늘을 잊고 언제나 내일을 새롭게 맞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 삶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과 영적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날로 새롭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날마다 신선하고, 우리 안에는 늘 새로운 영적인 기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활력 있는 새로운 영적인 삶은 우리의 마음과 심령을 새롭게 하고 우리 삶도 새롭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와 같은 새로운 영적인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오늘 마가복음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새 출발은 광야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새 삶과 새 출발을 바라는 우리에게 반드시 광야가 필요합니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처음 만난 장소이고,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마주한 근본적인 장소입니다. 그래서 그런 광야를 오늘날의 의미로 말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만나는 영적인 시공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과 삶을 원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그와 같은 근본적인 장소에서 오직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곳에서 세미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광야는 우리의 진정한 예배일 수 있고, 혼자만의 깊은 기도일 수 있고, 진지한 성경읽기나 성경공부일 수 있습니다. 또 우리의 일상 중에 번개같이 임하는 영적인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다양한 영적인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적인 새 삶과 새 출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지금 단순히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공간과 진정한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참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도화되고 세속화되고 관습화된 성전과 교회는 죄송하지만 광야가 아닙니다. 그런 기성의 오염된 자리에서 새 출발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없으면, 새로운 역사도 새로운 출발도 없습니다. 새로운 영감도 새로운 깨달음도 없습니다. 신앙의 쳇바퀴는 계속되고 신앙 의식은 계속 하락하고 가라앉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교회와 예배와 기도의 자리와 말씀의 자리가 하나님을 참으로 만나는 진정한 광야가 되도록 늘 힘써야 하겠습니다.
셋째, 우리는 늘 성령님을 재발견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작의 장소만큼이나 새로운 시작의 능력이 중요하겠죠. 그런 점에서 우리의 새 삶에 성령님은 필수입니다.
많은 한국교회는 과거 한때 성령의 은사와 능력에 관심이 많았고 거기에 많이 치우쳤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진정한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교회와 신자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성령의 역사는 새로움과 신실함과 성숙함과 거룩함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와 신자들 속에 그런 모습은 생소하고 멀기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다시 바르게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바르게 추구하고 그래서 성령님이 우리에게 참으로 임한다면, 그 뚜렷한 증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삶과 영혼의 새로움입니다. 우리의 삶과 심령이 평안 속에 늘 새로운 힘과 활력과 의미와 변화가 있을 때 우리는 성령님 안에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바로 그렇게 예수님의 복음의 역사와 함께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워졌고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성령님의 역사를 항상 바라고 원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고 참되게 살아가면, 성령님은 우리 안에 깊이 계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서문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로 가득합니다. 광야와 성령은 그것을 말씀하는 영적인 장소이자 원동력입니다.
아무쪼록 성막보다 더 원초적이고 성전보다 더 근본적인 광야에서 하나님을 늘 만나시길 빕니다. 아울러 우리를 항상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능력과 은혜를 늘 사모하시고 충만하시길 빕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