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와 성령 (1)
막 1:2~13
2023.05.19.
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은 그 서문으로 유명합니다. 요1:1~18까지 이어지는 그 서문은 이렇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그러면 요한복음과 같이 마가복음에도 서문이 있는가? ... 우리는 마가복음이 1:1에 이어 본론을 바로 시작한다고 대체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의 성경연구는 마가복음이 요한복음에 못지않은 굉장한 서문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면 마가복음의 서문은 어디까지인가? 어떤 분들은 그것을 1:13절까지라고 보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1:15절까지라고 보기도 합니다. 이 두 견해가 다 설득력이 있지만, 그래도 13절까지로 보는 것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의 서문이 어디까지냐 하는 문제는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서문에 어떤 내용이 있고 그래서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린 마가복음 서문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내용이 들어있기에 요한복음에 버금가는 굉장한 서문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첫째, 성경의 오랜 예언이 실현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둘째, 유대인들 안에 큰 회개와 부흥 운동이 일어나는 내용이 있습니다.
셋째, 성령님의 현존과 활동이 나타나는 내용이 있습니다.
넷째, 하늘이 열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임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다섯째, 사탄이라는 우주적 존재와 싸움과 갈등이 벌어지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가복음의 서문에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 이렇게 영적이고 우주적인 엄청난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 사람의 눈에는 그저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그 배후엔 예언의 성취와 사람들의 회복과 성령님의 활동과 하늘의 열림과 사탄의 도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큰 움직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마치 웅장한 서곡과도 같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웅장한 서곡은 서곡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음악 전체의 바탕이 됩니다.
마가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서문은 마가복음의 초자연적이고 영적이고 우주적인 배경입니다. 마가복음을 읽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영적이고 우주적인 배경을 염두에 두고 마가복음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시작한 마가복음은 14절부터는 모든 것이 현실 차원으로 내려오고, 한 무명의 인물이 갈릴리에서 새로운 한 메시지를 외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초자연적인 서막이 올라가고 본격적인 현실의 내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시작하는 마가복음을 잘 이해하기 위해, 우선 이 서문을 잘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설교는 이 서문의 내용 중에서도 여러 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상적인 두 단어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그 두 단어가 무엇일까요? 네, 그것은 오늘 설교 제목과 같이 광야와 성령입니다. 광야와 성령은 이 서문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광야는 장소를 말하고 성령은 하나님의 활동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둘은 놀랍게도 같은 의미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동일한 내용과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마가복음 서문은 광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서문에 광야(헤 에레모스)라는 말은 모두 4번 등장합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1:3),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1:4),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1:12),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1:13)
그런데 이후 마가복음 전체에서 이 말은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물론 예외처럼 보이는 말씀이 8:4에 있습니다.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그러나 여기 8:4에 나오는 광야(에레미아)는 서문에 나오는 광야(헤 에레모스)와 다른 형태입니다. 따라서 마가복음은 서문에 나오는 광야라는 말을 따로 구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로 구별한다는 것은 마가가 의도적으로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마가가 광야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을까요? 그리고 마가는 무엇 때문에 서문에서 광야를 반복하는 걸까요?
일반적으로 광야는 일상으로부터 동떨어진 장소이죠. 그곳은 누구에게는 명상의 장소이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도피의 장소이기도 하고, 또 누구에게는 고난과 역경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광야의 의미는 사람마다 관점마다 시대마다 다릅니다.
그러면 마가는 여기서 어떤 의미로 광야라는 말을 사용할까요? 우리는 그 의미를 3절 말씀의 원천인 이사야 40:3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광야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이사야서 40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사야 40장은 소위 제 2 이사야서의 첫 장입니다. 제 1 이사야서가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바벨론 포로를 말했다면, 제 2 이사야서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회복과 바벨론 포로 해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 2 이사야서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사 40:1~5)
이 말씀은 새로운 출애굽을 의미하는 제 2 이사야서의 원대한 비전입니다. 이 말씀은 유다 백성이 이제 바벨론에서 새로운 출애굽을 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벨론에서 나와 광야에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특별히 광야라는 장소를 말씀하시고, 왜 거기서 그들을 만나실까요?
네, 광야는 오래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신 첫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시내 광야 시내 산... 하나님은 거기서 그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은 그들을 거기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랜 후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광야에서 다시 시작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호2:14~15)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구약 말씀을 통해 광야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만난 장소이고 처음 시작한 장소이고 처음 사랑한 장소입니다.
그래서 제 2 이사야서도 바벨론에서 해방된 유다 백성의 새로운 시작과 회복이 바로 광야에서 이루어진다고 예언한 것입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구약성경이 말하는 광야의 의미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의 새로운 시작과 회복입니다. 광야는 그런 영적인 장소인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가 이와 같은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그런 회복과 새 출발을 꿈꾼 많은 이들이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쿰란의 에세네파도 예수님 당시 부패한 예루살렘과 성전 당국과 제사장들을 떠나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자신들만의 새로운 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5:36에 나오는 ‘드다’라는 인물도 파두스 총독 때에 추종자들을 이끌고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또 한 애굽인 예언자도 벨릭스 총독 때에 광야에서 사람들을 모았고, 예루살렘을 공격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비전과 꿈은 대부분 좋지 못한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한 광야의 의미 자체는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은 광야에 담긴 이와 같은 구약성경의 예언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메시야를 통한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광야에서 시작된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가복음은 이사야서 40:3 말씀을 인용하면서 세례요한의 광야 사역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침례 받으신 후 광야로 들어가셔서 거기서 공생애를 준비하시는 모습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와 예수님의 새로운 시대가 광야에서 시작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오늘은 이렇게 광야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주에 성령의 의미를 마저 살펴보고,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