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
계 22:20
2023.04.14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고백에 담긴 첫 번째 의미는 우리가 주님을 변함없이 꼭 기다리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믿음의 의미로 이 고백과 약속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오늘은 계속해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두 번째, 이 고백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힘써 살겠다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삶은 주님을 기다리는 삶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을 기다리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건전한 종말론은 일상을 포기하고 의무를 잊은 채, 종말의 날과 종말의 시간표만 바라보는 그런 종말론이 아닙니다.
시한부 종말론은 종말의 시간을 지정하죠. 임박한 종말론은 시간은 지정하지 않지만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 종말론과 이단은 사람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파괴합니다. 거기에 빠진 사람들은 결혼도 의미 없고, 가정도 의미 없고, 일도 의미 없고, 돈도 의미 없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교주와 가르침을 따르고 전하는 것만이 유일한 의미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 교주와 지도자들은 호화롭게 삽니다.
우리의 종말론은 그런 종말론이 아닙니다. 우리의 종말론은 시작된 종말론입니다. 물론 시작된 종말론도 임박한 종말을 말하지만, 시간을 정하지 않고 일상을 버리지 않고 삶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도피는 영적인 도피이지 물리적인 도피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종말을 피하고 구원을 얻을 특별한 장소가 있을까요? 그곳이 예루살렘일까요?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일까요? 종말의 시온산일까요? 아니면 교회 예배당일까요?
그러나 광야의 예비된 장소는 영적인 장소이지 물리적인 장소가 아닙니다. 그런 최후의 장소는 없습니다. 우리는 종말의 세상 한가운데에서 오직 주님 안에 거할 뿐, 다른 특별한 영적인 장소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종말론은 시간에 매이지 않고 장소에 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주님 안에서 교회 안에서 영적인 보호를 받으며 마지막 때를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을 회피하지 않고 또 회피해서도 안 됩니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가정을 이루며 정상적으로 살아갑니다. 종말이라고 어둡게만 살아가서도 안 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자기실현을 하고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며 동시에 최선의 삶을 사는 균형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높은 줄 위에서 큰 장대를 가지고 외줄타기하는 분들이 있죠. 그분들은 장대를 가지고 균형을 잡고 한발 한발 앞으로 갑니다. 종말의 신앙과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주님을 기다리고, 한편으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삶은 하나님의 큰 의미입니다. 생명은 살아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받고 자신의 삶을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있어서 삶이란 하나님의 큰 의미와 명령이 담긴 소중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의 큰 의미는 종말이라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면서 동시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날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을 살고, 그 살아낸 삶을 그날에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삶을 우리가 믿음 안에서 의미있고 아름답고 균형있게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자칫하면 세상으로 치우치고, 세상 현실에 빠지고, 세상과 동화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매일 매일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분투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빠지지 않도록 분투하고, 구별된 삶이 되도록 분투하고, 의미있는 삶이 되도록 분투하고... 우리는 그런 영적인 갈등과 분투와 싸움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 영적인 갈등과 분투와 싸움은 요한계시록의 큰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살아있기에 싸우는 것이고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멈출 수 없는 우리 생명의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최선을 다해 힘써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삶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여기시고... 주님이 주시는 힘과 십자가의 능력으로 그렇게 싸우며 살아가셔서 마침내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승리자, 믿음의 승리자, 삶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의미는 이 고백은 주님의 명령과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사명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주님을 믿음으로 기다립니다. 또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며 힘써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나가 더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과 사명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명령과 사명을 감당해야 우리는 그날에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명령과 사명은 무엇일까요? 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 이웃 사랑, 복음 전파... 이 세 가지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명령과 사명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 세 가지가 결국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이 세 가지 진리는 결국 하나의 진리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된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에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당연히 포함됩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없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복음은 열심히 전하지만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소금과 빛이 되지 않으면, 복음은 잘 전해지지 못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소금과 빛이 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마지막 때에 교회로서 신자로서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표현이 있죠. 함석헌 선생님이 하신 말인데... 캄캄한 어둔 골짜기 작은 오두막집에 켠 불빛 ... 그 불빛은 작지만 그것이 꺼지면 골짜기는 짐승 천지가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와 신자는 그와 같은 작은 불빛입니다.
여러분, 이 종말의 세상 속에 큰 불빛이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어둠이 굉장히 짙고 어둡기 때문에, 우리는 작은 빛으로도 세상을 밝힐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빛을 발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저는 이 세상 속에서 작은 불빛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한 커뮤니티에서 학교 선생님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글인즉슨 요즘 초등학교 선생님 중에 지각하는 선생님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예전엔 선생님들이 교무실로 먼저 출근했는데, 전교조가 그걸 문제 제기해서 요새는 선생님들이 교실로 바로 출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8시 40분까지 교실로 출근하면 되는데, 그런데 그 시간을 못 지키는 선생님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상습적으로 늘 늦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찍 오는 아이들은 8시부터 와 있는데 말이죠.
안타까운 것은 그런 선생님들일수록 퇴근시간 4시40분은 철저히 지킨다는 것입니다. 혹시 무슨 일이나 회의가 생겨서 그 시간이 넘어가면,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글은 그런 요즘 학교 실태를 말하면서 좋은 교사가 많이 없는 것 같다고 씁쓸해하며 글을 마쳤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크고 거창한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만약 선생님이라면, 지각하지 않고 반 아이들 사랑해주고 차별하지 않고 성실히 가르치는 그 본연의 일만 충실히 해도 소금과 빛이 되는 것입니다. 돈이 많아서 큰 기부를 하지 않아도, 큰 상을 받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않아도, 유명인이 되어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세상을 밝히는 작은 불빛이 될 수 있습니다.
주해가 초등학교 1~2학년 때인가... 학교 갔다오면서 한 선생님 전화번호를 가지고 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방학 때 돌봄교실을 맡은 대학생 선생님이었는데, 이제 방학이 끝나 가시게 되어 주해가 무척 아쉬워했습니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가지고 와서 그 종이쪽지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렇죠. 그런 좋은 선생님이 많다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언제나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종말론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복음을 진심으로 전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종말론은 따로 어디를 가거나 특별한 비밀을 알거나 특별한 능력을 받는 그런 종말론이 아닙니다.
나의 자리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고... 그것이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은 우리의 고백이자 약속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고, 삶의 고백이고, 사명의 고백입니다. 이것은 주님께 드리는 우리의 믿음의 약속이고, 삶의 약속이고, 사명의 약속입니다.
아무쪼록, 이와 같은 아름다운 고백과 약속을 주님 앞에서 실천하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