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봉하지 말라 (2)
계 22:10
2023.02.17.
지난주 우리는 왜 이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말씀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인봉하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고,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의미는, 믿는 자 모두가‘이 말씀을 알고 이해하라’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요한계시록 말씀은 우리 믿는 자 모두가 알아야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특정 교회나 이단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간 요한계시록은 여러 부작용과 어려운 해석 때문에, 교회와 신자들이 잘 보지 않는 책이 되었죠. 또 미래보다 현재를 중시하는 우리의 좁은 신앙 때문에, 관심도 약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이 말씀을 충분히 알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마지막 때에 세상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완성되는지, 사탄의 미혹과 공격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우린 이 말씀을 통해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 말씀은 우리 믿음 깊숙이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바라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종말론적인 믿음과 신앙을 만들어주죠. 아시다시피 종말론적인 믿음은 우리 신앙의 한 본질이죠.
그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변하는 세상을 따라 정신없이 살기 쉽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의 정체성을 잃고 세상과 동화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런 종말론적인 말씀이 필요합니다.
역사의 과거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의 미래와 끝을 아는 것입니다. 기차를 탄 후에는 ‘내가 어디에서 탔느냐’가 중요하기보다는, ‘내가 어디로 가고, 어디에서 내리느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의 종착역을 아는 것과 세상 역사의 끝을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요한계시록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한계시록을 알긴 알아야 하는데, 바르게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많은 해석들이 난무하고 잘못된 해석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많은 해석이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교회가 인정하는 건전한 해석이라면, 그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전천년주의, 후천년주의, 무천년주의 ... 다 다르지만, 그래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건전한 해석입니다.
문제는 잘못된 해석인데, 그러나 잘못된 해석은 조금만 알면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말씀과 관련 신xx는 이렇게 말합니다.
‘22장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은 5장의 어린 양의 두루마리와 같고 또 10장의 천사의 두루마리와 같다. 그리고 10장에서 이 두루마리를 요한이 먹었으니 요한이 곧 그 책이다...’
요한은 그 두루마리를 먹었을 뿐인데, 그들은 요한이 그 두루마리 책을 먹어서 그 책과 하나가 되었다고 해석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무리하게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죠. 네, 그들은 바로 자신들의 교주가 그 책을 먹은 새 요한이고, 그런 새 요한을 통해서 마지막 때의 예언의 말씀이 전해진다고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신xx를 비롯한 대부분의 잘못된 해석은 우리가 성경을 조금만 알아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상한 해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지나치게 어렵게 생각하거나, 지나치게 신비하게 생각하거나,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그런 책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정통 교회의 정상적인 해석을 따라가면 그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잘못된 편견으로 인봉하지 말고, 교회가 인정하는 건전한 해석을 따라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 의미는 ‘이 말씀을 교회 공동체 가운데 드러내라’입니다.
신xx 같은 이단들은 이 ‘인봉하지 말라’의 의미를 자신들의 종말론을 세상에 전파하라는 의미로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 교인들은 자신들의 종말론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 성경에 충실한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말 열심히 전하죠. 거의 매일 모여 전도대상자를 물색하고 접촉하고 관리하고 보고하고 ...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자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러나 ‘인봉하지 말라’는 말씀의 직접적인 의미는 이 예언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의미는 이 예언의 말씀을 교회 공동체 가운데 드러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 전해도 되지만, 그러나 우리가 기본적으로 세상에 전할 내용은 종말론이 아니라 예수님과 복음이죠. 종말론 위주로 전도하면 그것은 사람들을 두렵게 하여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이고, 그것은 결코 올바른 전도가 아닙니다. 아울러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신앙의 첫 단추를 잘못 꿰게 되어 건전한 신앙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은 종말을 대비하여 교회와 신자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교회와 신자들이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승리하도록 하기 위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1차 대상자는 세상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입니다.
요한계시록 말씀은 혼자 골방에서 읽고 혼자 비밀을 발견하고 혼자 천국 가는 ... 그런 개인적인 비밀의 책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을 그렇게 개인적으로 접근하면 대부분 잘못된 이해와 해석에 빠지게 됩니다.
모든 성경이 그렇듯이 이 말씀은 교회 공동체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이 말씀을 읽고 이해하고 준비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눈을 들어 저 멀리 예언과 계시의 빛을 보아야 합니다. 그 빛은 우리를 바른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교회가 요한계시록을 보지 않으면 바른 구원의 길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이 종말에 교회와 신자들이 사탄 및 세상과 싸우고 투쟁하는 치열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은 그런 싸움과 투쟁 가운데 타협하고 넘어지는 신자들과 교회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단순한 신앙고백과 교리로 만들어진 약한 믿음은 종말의 환난과 박해와 거짓을 통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잘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건전하고 균형 있는 신앙과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교회 공동체적으로 함께 이 말씀을 봐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 의미는 ‘이 말씀을 가지고 살아라’입니다.
좀 전에 우리는 교회가 요한계시록을 잘 다루지 않는 현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단들은 이 말씀을 가지고 한 사람이라도 더 미혹하려고 날뛰는 데 반해, 기존 교회들은 어쩐지 이 말씀을 잘 다루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 요한계시록을 읽으면 읽을수록 알면 알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뚜렷해지는 하나의 교훈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 마지막 때에 종말론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한 마디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종말론적인 삶의 방식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요한계시록의 한 중요한 결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잘 보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돈을 사랑하지 않고 이 땅에 뜻을 두지 않고, 저 하늘을 바라보며 믿음과 소망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힘들죠.
요즘 교회와 신자들이 어디 그렇습니까? 이 땅에서의 축복과 승리를 더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잘 살다가 그저 예수의 피와 대속으로 천국으로 직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 요한계시록 말씀이 교회 안에서 잘 선포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말씀을 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말씀이 어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 요한계시록을 보면 우리 신앙에 부작용이나 혼란이 생겨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이 말씀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잘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말씀을 따라, 이 말씀을 인봉하지 말고 이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종말론적인 신실한 신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이 의미는 이 말씀을 읽고, 교회 공동체 가운데 공유하고, 그렇게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런 신실한 교회와 신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