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요일 2:1
2023.02.19.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대언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이 대언자라는 말씀은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에만 등장하는 매우 특별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에 4번, 요한일서에 1번 등장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신다는 이 말씀을 살펴보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대언자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보면, ‘말을 대신해주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날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심판 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말을 대신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에는 사람들이 법정에서 자신을 잘 변호하지 못했습니다. 글자도 모르고 말을 잘할 줄도 모르고, 그래서 법정에서 억울할 때가 많았습니다.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수사학이 맨 처음에 나온게 된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법정에서 일반적으로 변호사의 도움을 받습니다.
요한일서는 이렇게 예수님이 그날에 우리의 대언자가 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에 대해 요한일서를 넘어 요한복음을 살펴보면, 요한복음은 그 동일한 단어를 보혜사라고 말씀합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처음에 성경을 번역하신 분들이 한자를 사용해서 아주 귀하게 번역을 한 말인데, 지금은 좀 낯설고 생소한 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언뜻 어려운 말처럼 여겨지지만, 살펴보면 어렵지 않습니다. 도울 보, 베풀 혜, 스승 사...그래서 그 의미는 ‘우리를 도우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스승’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언자로 말씀하기도 하고 보혜사로 말씀하기도 하지만, 그 원어는 같은데 ‘파라클레이토스’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면 왜 ‘파라클레이토스’를 대언자라고 하기도 하고, 보혜사라고 하기도 하는가? 사실 영어성경들은 훨씬 더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위로자, 상담자, 중재자, 변호사...
그러면 “파라클레이토스”의 원래 의미가 무엇인데 이렇게 다양하게 번역을 할까요? 네, 그 원래 의미는 아주 간단합니다. “파라”라는 말은 “옆에서”라는 말이죠. 그래서 “파라클레이토스”는 “옆에서 돕는 분”, 즉 “우리 옆에서 우리를 돕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를 도우시기에 대언자가 되시고, 우리 삶과 신앙에서 우리를 도우시기에 보혜사가 되시고, 우리 마음과 생각에서 우리를 도우시기에 위로자와 상담자가 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우리를 도우시기에 중재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요한일서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날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신다고 말씀하지만, 요한복음을 통해 넓게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 항상 우리 옆에서 우리를 돕는 분으로 존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요한복음을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그날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특별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이 부활 후 하나님께로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께 가신 후에도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친히 돕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울러 그날까지 그 기다림의 시간에 우리를 돕는 또 다른 분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네, 바로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누구신가? 네, 성령님은 우리의 또 다른 보혜사이십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분이시고, 똑같은 일을 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 대신 오셔서 우리 모두를 돕고 계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이나 성령님이나 다 우리를 돕는 보혜사이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과 천국 가는 우리 신앙 여정과 힘든 우리 삶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교회도 있고, 믿음의 공동체도 있고, 무엇보다 우리 곁에 계신 예수님과 성령님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돕는 보혜사이신 예수님과 성령님은 우리를 지금 어떻게 구체적으로 돕고 계실까요?
먼저 예수님께서 보혜사로서 직접 도우시겠다고 하신 말씀이 2개가 있습니다.
요14:12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그래서 이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의 일을 하고 주님 뜻대로 살려고 할 때, 예수님은 그 사역과 그 일과 그런 나의 삶을 친히 도와주십니다. 또 우리가 주님의 뜻 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예수님은 그 기도를 꼭 들어주십니다.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처음에 목사가 될 자신이 없어서, 먼저 선교단체 간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간사가 되었을 때,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일을 10년이나 하겠나...’ 왜냐하면 매월 일정액의 후원을 계속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나고 돌아보니, 제가 꼭 10년을 채우고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후원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귀한 손길을 통해 채우시고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참 부족하고 미숙했습니다. 신학도 하지 않았고 아는 것도 많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족했지만, 주님께서는 저를 자신의 일을 하는 사역자로 여기시고 잘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일은 꼭 사역이나 선교나... 그런 것만 주님의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바르고 선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든 일이 주님의 일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삶... 누군가에게 믿음과 온기가 되는 삶... 사람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고 용서해주는 삶...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일을 언제나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과 삶 속에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면, 예수님은 친히 우리를 도우십니다.
한편, 예수님은 보혜사로서 자신의 사역을, 특별히 성령님을 통해 보다 풍부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6장에 걸쳐있는 그와 같은 말씀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14:16~17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어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26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5:26 보혜사 곧...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16:0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16:13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이상의 보혜사로서의 성령님에 대한 말씀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성령님에 대한 한 가지 뚜렷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네,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돕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어떤 목표를 가지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깨우치시고 가르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령님은 내가 어렵고 힘들 때, 나를 위로해주는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나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고 성장시키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성령님의 목표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혜사로서의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진리... 지금은 생소한 말이 되었지만, 이것은 한때 모든 교육의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대학의 표어에는 진리라는 말이 필수처럼 들어있었습니다. ‘진리는 나의 빛’ 어느 대학의 표어일까요? 대학의 표어가 ‘진리’ 하나만 있는 대학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안타깝게도, 진리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교육도 진리를 잃어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시대가 그렇게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속고 속이고... 그렇게 어두움 가운데 살아갑니다. 저마다 옳다고 주장하며 안개 속을 헤매며, 내 안에도 얼마나 많은 거짓이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진리는 더욱 소중합니다. 진리의 영되신 성령님께서 우리 곁에서 불 밝혀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세상의 어둠과 거짓 속에 길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이 성령의 사람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흔히 우리는 성령의 은사나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면... 그 사람을 성령의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들은 그런 이해 속에 그간 수많은 성령 집회를 열심히 개최해왔습니다. 병자도 치유하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유행처럼 그런 집회나 세미나들이 참 많았습니다. 저도 자의 반 타의 반 그론 많은 집회와 세미나에 참석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과 요한일서의 이 말씀을 잘 살펴보면, 성령님의 주된 사역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주된 사역은 우리를 깨우치시는 것이고 진리 안에서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목표는 진리이고,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어가십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성령의 사람의 특징이 죄를 발견하는 데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시면, 우리는 밝은 눈으로 나의 죄와 잘못을 곧 발견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이 우리 곁에 계시면, 우리는 진리 안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무엇을 통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까요?
평화로운 자연의 모습이나 사랑스런 아이들의 모습이나 좋은 책이나 아름다운 음악이나 놀라운 우주... 성령님은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도 하시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예수님을 증언하고 그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그렇게 우리를 하나님의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의 특징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의 성장입니다. 말씀이 말씀으로 끝나지 않고, 말씀으로 자신을 보게 되고 타인을 보게 되고 세상을 보게 되고, 분별력을 얻게 되고, 마음과 생각이 변화됩니다.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점점 참과 진리로 나아가고, 또한 마음의 평안과 평화를 얻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늘 곁에서 위로해주시고, 가르쳐주시고, 힘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우리가 성장하고 깨우치고 선하고 자유롭고 평안하게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령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고 가만히 있으면, 그런 역사가 내게 이루어질까요?
네, 우리도 성령님과 동일한 목표를 공유해야 합니다. 즉 진리가 우리 삶의 한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이건, 사실과 진실과 진리를 내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은 진실과 연결되어 있고 진실은 진리와 연결되어 있고 진리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사실이나 진실을 외면하거나 보지 못하는 사람이, 진리를 본다든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급적 내 생각이나 내 이익이나 내 입장으로 쉽게 판단하거나 생각하기보다는, 최선으로 사실을 보고 진실을 보려고 하는 삶의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한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돌아보고... 그러면 우리는 점점 바르게 보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무엇을 바로 보는 사람이 되면, 우리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깨닫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깨우친다는 말이죠. 깨우친다는 것은 나의 잘못된 생각의 껍질을 깨뜨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말 그대로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잘못 알고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깨우쳐야 진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와 같은 연습을 해야 합니다. 바로 보는 연습, 깨닫는 연습... 왜 우리가 그런 연습을 해야 합니까? 내 느낌이나 감정대로, 내 입장이나 주관대로 늘 하던대로 판단하고 생각하면 안 될까요?
네, 그러나 그것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역사입니다. 좋은 선생님은 언제나 학생의 잘못을 고쳐주시죠. 학생의 잘못이나 실수를 부드럽게 고쳐주시지, 그것을 그냥 두는 선생님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님도 우리를 항상 고쳐주시고 바로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 생활과 말씀 생활과 가정 생활과 실제 생활 속에서, 비록 불편하고 힘들어도, 그런 성령님의 역사를 아름답게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처음엔 불편한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내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해야 하기도 하고, 내 생각을 양보해야 되기도 하고, 내 생활을 고치기도 해야 하고...
그러나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가르쳐주시는 대로, 깨우쳐주시는 대로, 감동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가십니다. 그것이 성령님께서 우리 곁에 계신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한번 조용히 성령님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늘 우리 곁에 계신 성령님께서 지금 내게 말씀하신다면, 어떤 것을 말씀하실까? ...’
내 부끄러운 모습에 대해 말씀하실까? 내 걱정이나 염려에 대해 말씀하실까? 내 생각이나 고집에 대해 말씀하실까?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각에 대해 말씀하실까? 나의 바쁜 혹은 안일한 생활에 대해 말씀하실까?...
성령님은 우리에게 해주실 말씀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아마도 그저 말없이 품어주시고 등에 손을 얹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성령님의 사랑과 위로와 조언과 감동 속에 성장하고 참과 진리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오늘 요한일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날에 우리의 대언자가 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나의 대언자가 되시고 나의 보혜사가 되시는 것은 그날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임하는 오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사랑과 진리의 역사를 잘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때론 의지하고, 때론 위로 받고, 때론 깨닫고, 때론 책망 받고 ... 그래서 거짓은 아무리 작아도 불편하고 견딜 수 없고, 진실과 진리는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늘 기쁘고 좋은...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세상은 우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거짓과 어둠으로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라도 미혹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여러분과 저는 우리 곁에 항상 계신 그분의 역사를 따라, 늘 진리가운데로 걸어가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