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우리의 신앙과 우상숭배

믿음찬교회 0 239 2023.07.02 11:52
우리의 신앙과 우상 숭배
요일 5:21
2023.07.02.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 요한일서 마지막 말씀을 나누게 된 것을 하나님과 성도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돌아보면 요한일서는 쉬운 듯 쉽지 않은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론을 지나 두 개의 본론과 두 개의 에필로그를 살펴보았습니다. 말씀은 마치 작은 시냇물처럼 굽이굽이 맴돌며 흘러가면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많은 여지와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끝나지 않고 계속 흘러갈 것 같은 말씀이, 오늘 본문에 이르러 갑자기 끝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이 말씀을 끝으로 마침내 요한일서는 문을 닫습니다.
간혹 성경 중엔 갑자기 끝나는 말씀이 더러 있습니다. 마가복음이 그러한데, 마가복음의 원래 본문은 부활을 목격한 여인들의 놀라워하는 모습으로 갑자기 끝납니다. 요한일서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이런 의도적인 불친절한 끝맺음은 어떤 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요한일서는 이렇게 의도적인 불친절한 끝맺음을 할까요? 이것은 마치 이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충분히 말씀했으니, 이제부터는 너의 몫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은 이제부터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자기 안에 두고 돌아보고 기억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우리 성도님들도 이 말씀을 다시 보시고 잊지 마시고... 자신의 것으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갑작스런 끝맺음도 끝맺음이지만, 말씀의 내용도 무척 의외의 내용입니다. 우상에 대한 말씀은 사도 요한이 지금까지 요한일서를 말씀하면서 한 번도 말씀하지 않은 주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황의 연속인데, 1차로 갑자기 끝나서 당황스럽고, 2차로 처음 듣는 마지막 말씀이어서 또 당황스럽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이 마지막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이 말씀이 지금까지 해온 말씀과 아무 관련성이 없는지... 이런 내용을 살펴보고 은혜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네, 사도 요한이 지금 말씀하는 이 우상은 거의 대부분의 성경 주석과 학자들이 해석하는 바와 같이, 일반적인 우상과 우상숭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이 그런 일반적인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마지막에 말씀할 이유도 없고, 또 새로운 내용을 툭 던지는 그런 여유나 한가함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살펴보면, 이 말씀은 바로 앞 구절인 20절 말씀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절 말씀의 어떤 내용과 연결될까요?
네,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라는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연결을 고려하면, 오늘 말씀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아,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그런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믿으며, 반면에 그런 참 하나님이 아닌 거짓된 우상과 같은 그들의 그리스도는 결코 멀리해야 한다.”
아시는 바와 같이, 공동체를 떠난 그들의 그리스도는 인성의 예수는 없고 신성의 그리스도만 있습니다. 우리 몸의 죄를 보지 않고 우리의 영혼만 보고, 우리를 믿음으로 구원하지 않고 영적인 지식으로 구원하는 그런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그런 그리스도는 그들이 만든 가짜 그리스도이고 거짓된 우상이죠.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비록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말씀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요한일서가 지금까지 말씀해온 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은 신자들에게 확신의 신앙을 주고, 동시에 떠난 이단자과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온전히 비판하고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요한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그들의 잘못된 신앙에 대해 이렇게 당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와 같은 오늘 말씀으로부터 어떤 교훈과 은혜를 받아야 할까요?
가장 먼저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상과 우상숭배의 문제가 믿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와 무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지금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에게 우상숭배를 멀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우상숭배는 우리와 무관한 일이야...’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들의 거짓 그리스도가 그들의 우상이 되었듯이,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나도 모르게 나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이단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잘못 알았던 것처럼, 나도 하나님을 오해하고 잘못 알고 잘못 믿고 있다면,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나의 우상의 하나님이 됩니다.
종교개혁가인 칼빈은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우상의 공장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를 위하여 온갖 우상을 만들어내는 공장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대 시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언제나 수많은 우상을 만들어왔습니다. 이집트에는 태양신 라가 있었고, 풍요의 여신 이시스가 있었고, 죽음의 신 아누비스가 있었고, 황소의 신 아피스도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바알과 아세라와 아스다롯과 다곤과 몰렉이 있었고 그 외 수많은 잡다한 신들이 있었습니다. 바벨론과 그리스와 로마 같은 그런 큰 문명 세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제국의 대표적인 소아시아 도시였던 버가모는 그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원뿔 모양의 언덕에 제우스와 아테나와 디오니소스 등 각종 신전이 자리하여, 우상의 기운이 본질적으로 느껴지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버가모를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우상숭배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도 인도에는 수많은 힌두교의 신들이 있고, 이웃 일본에도 800여 잡신들이 도시마다 마을마다 정갈한 신당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상숭배의 특징은 그렇게 보이는 영역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더욱 많이 발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와 같은 보이는 우상숭배는 줄어들었지만, 그러나 권력과 돈과 성공과 자기 욕심 등 보이지 않는 우상숭배는 더 커지고 만연해졌습니다.
한편, 우리는 이와 같은 우상에 대하여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우상 자체는 아무 힘도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을 아노라”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사탄과 악한 영이 수많은 우상의 배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상은 사탄의 인형이자 가면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그 우상들을 실제로 믿거나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 언제나 우상을 만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내가 원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은 우상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가장 큰 우상은 자기 자신입니다.
로마서 1장 18절에서 사도 바울은 인간의 죄와 타락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사도 바울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직후 일어나는 첫 번째 죄와 타락을 우상숭배라고 소개합니다. “...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든 역사적 사실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상숭배는 인간의 영혼과 마음과 생각의 가장 밑바탕에 있는 오래된 뿌리이자 자기 근본적인 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높이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모두 다 우상숭배자이고, 우상숭배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그때에 땅에 거하는 자들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우상숭배라는 문제가 믿는 우리와 무관한, 멀리 떨어져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깨어있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지 않으면, 우리도 언제든지 쭉정이가 되고 가라지가 되고 염소가 되고 가룟 유다가 되고 우상숭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우상을 섬기고 우상숭배자가 되는 일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일이고, 우리는 그것이 당연하기에 달리 궁금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오늘 본문 말씀처럼 ‘우리 믿는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상숭배에 빠지느냐?’입니다. 본래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근본적으로 범죄할 수 없고 우상숭배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근본적으로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우상숭배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은 2가지 방법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도 믿고 우상도 믿는 혼합적인 방법으로 우상숭배가 일어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 그 백성을 이끌었던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게 됩니다. 그는 마지막 당부를 백성들에게 남기며, 너희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민족이 되라고 간곡히 당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신들, 특히 그중에서도 바알을 섬기는 우상숭배 빠지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바알을 섬긴 것은 바알이 비를 내리고 농사를 돕고 한 마디로 잘 살게 하는 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만군의 하나님이시고 구원의 하나님이시고 전쟁에 능한 여호와이시지만, 그러나 그들은 잘 살기 위해서는 바알에게 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바알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첫 번째 신으로 믿고, 바알은 잘 살기 위해 두 번째 신으로 믿고...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에 이런 혼합주의 신앙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의 거민들은 다 그렇게 여러 신을 섬기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바로 그것이 하나님을 저버린 우상숭배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오늘날 우리 믿는 분들 중에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이런 혼합주의 방식의 우상숭배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믿으면서 각종 미신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점이나 사주도 봅니다. 정치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신자 중에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사울 왕처럼 무당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가면 듣고 싶은 말을 해주겠죠.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대단히 싫어하시는 행위입니다.
혼합주의 방식의 우상숭배를 하는 또 다른 신자는 하나님을 믿지만, 돈을 더 사랑하고 돈의 힘을 더 믿는 신자입니다. YMCA를 만들고, 한 때 권력의 2인자의 부인이었던 박마리아는 기독교인이었지만, 매사에 사람들 앞에서 ‘돈이면 다 돼,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이런 말을 늘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권력을 탐했고 돈을 탐했고 그의 기독교적 배경은 모두 다 그녀의 야망과 출세를 위한 발판에 불과하였습니다. 사람들도 많이 죽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그녀와 그 가족들은 4.19 혁명 직후 스스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분은 기독교인으로 여러 가지 기독교적인 업적을 남겼지만, 저는 그분을 참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잘못 믿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두고 그것을 열렬히 추구한 전형적인 우상숭배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거기에 돈이나 권력이나 자기 성공이나 자기 욕심이나 자기 일이나 자기 자녀나... 그런 것들을 두면, 나는 비록 하나님을 믿어도 실제로는 우상숭배자입니다.
목사는 교회나 사역이, 부모는 자녀가, 정치를 하는 사람은 권력이, 장사를 하는 사람은 장사가, 학자는 자기 지식과 명성이, 대부분의 사람은 돈과 권력이... 보이지 않는 우상이 됩니다.
교회나 사역이 우상인 목사는 늘 교회나 사역 이야기만 합니다. 교회를 성전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교회를 하나님과 동일시합니다. 자기 자신이 우상인 사람은 늘 자기 이야기만 합니다. 모든 것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 자신이 앉아있습니다. 돈이나 권력이 우상인 사람은 박마리아라는 인물처럼 돈과 권력에 끊임없이 관심과 애착을 기울이며, 집요하게 돈과 권력을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는 부끄러움이 없는 그런 인물들을 매일 뉴스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지... 우리 성도님들은 언제나 깨어있는 참된 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상숭배를 하는 두 번째 방법은 하나님을 나의 우상의 하나님으로 믿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이 경고하는 우상숭배입니다. 이 방법은 첫 번째 방법보다 더 심각한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도 믿고 우상도 믿는 혼합주의 우상숭배도 심각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우상을 버리고 그 신상들을 깨뜨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왜곡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왜곡하여, 거짓된 우상의 하나님과 거짓된 우상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들면, 그때는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사망에 이르는 우상숭배가 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 앞에서 모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예상보다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늦어졌습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백성들의 이런 압박에, 결국 아론은 백성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본 백성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일어서 뛰놀며 그들의 예배와 축제를 벌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타락의 속도는 대단히 빨랐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기적을 맛본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하나님으로 왜곡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것을 인지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그때 모세의 결사적인 기도가 없었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다 심판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렇게 가짜 하나님을 만들고 우상의 하나님을 만드는 인간의 악함은 처음부터 인간 안에 있는 본질적인 죄악입니다. 그래서 이 죄와 타락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한 번에 쉽게 사라지거나 극복되기 어렵습니다.
우리에게 위기가 오고 유혹이 오고 영적으로 약해지면, 어려운 병이 다시 재발하듯이, 하나님을 내가 원하는 하나님으로 바꾸고 그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조선 시대 말 우리나라는 도탄에 빠졌습니다. 왕과 사대부들은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만을 위한 정치와 권력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의지할 데 없는 많은 가난한 백성들은 각종 미신과 샤머니즘과 민간 신앙과 무당과 굿 등에 빠졌습니다. 살기가 어렵고 힘들어지면, 그런 때에 거짓과 사이비가 얼마나 활개 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우리 민족의 그런 어둡고 어지러운 때에 기독교가 들어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신과 샤머니즘과 민간신앙과 무당과 굿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좋은 일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오래도록 믿던 미신 신앙과 샤머니즘과 민간 신앙과 무당과 굿은, 안타깝지만 기독교 안으로 같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네, 우리 신앙과 믿음 안에 그와 같은 잘못된 뿌리와 모습이 같이 자라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일찍부터 기독교 이단들이 나오고, 무당 같은 목사들이 나오고, 미신 신앙이 나오고, 산 기도를 하고 꿈이나 환상을 좋아하고 유달리 방언기도를 좋아하고, 자기중심적인 신앙이 나오고, 소원 성취의 신앙이 나오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신앙이 나오고,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는 모르고 저 천국만 아는 신앙이 나오고... 그렇게 옛날 우리 민족이 다른 신을 믿었던 모습 그대로, 우리 몸과 마음에 배인 그대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안에는 그런 좋지 못한 것이 많이 흘러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 안에는 그렇게 그 옛날 우상숭배 했던 흔적과 그런 신앙과 그런 하나님의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복 주시는 하나님, 빌고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 십자가에서 다 용서해주시는 하나님, 믿으면 한 번에 구원해주시는 하나님,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시는 하나님, 항상 날 위해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우리는 주로 그런 하나님을 선호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되고 나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성숙해지고...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과 은혜와 진리 안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란 사실에 대해선 별로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내가 따라가는, 그런 힘이 드는 신앙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지 않고 이런 뿌리 깊은 잘못된 신앙이 깊어지면, 결국 우리는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믿는 우상숭배로 나아가게 됩니다.
어떤 목사라는 분이 하나님을 향해 전대미문의 “하나님 꼼짝 마”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꽉 붙잡고 있을 정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특별하다... 그런 의미로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은 따로 반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못된 말이지만, 중요한 점은 바로 그 말 속에 우상의 하나님이 들어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하나님...
우리도 정말로 그분의 말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미 우상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다...  그런 하나님은 우상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을 이미 운명적으로 예정하셨다... 그런 하나님도 우상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잘하고 바치면, 하나님도 나를 잘되게 하시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신다... 그런 하나님도 우상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그런 우상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날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가지고 그분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빌어서 바쳐서 예배하고 기도해서 무언가를 얻는 신앙이 아니라, 기쁘나 슬프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삶과 산 제사를 기뻐하시는 참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무쪼록 우리 성도님들은 오직 참되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만 믿는, 깨어있는 아름다운 신앙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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