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시대 유대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각각 다르다는 반응 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심으로서 우리의 듣는 태도에 대하여 돌아보게 하신다.
1-2절에서는 시기와 장소와 전하는 자에 당부하시는 말씀이다. 백성들이 모두 모이는 특별한 절기로 하고 그 장소를 성전 뜰로 하신 것은 동시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모든 말을 전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고 당부 하신다. 예레미야는 그대로 순종하여 실현 했다.(8,12,15) 그러면 어떤 내용의 말씀이 었나? 여호와 말씀에 순종하라 그리고 율법을 행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지금 예배하러온 이 장소인 성소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4-6)
그러면 이 메시지를 들은 자들의 반응은 어떠하였는가?(7-) 먼저 성전이 삶의 터전이되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다. 이들은 바로 예레미야를 기소하여 죽여야 한다고 하면서 고관들과 백성들을 선동까지 한 것이다. (8-,11-)
다음은 고관들과 백성들이다. 똑 같은 메시지를 들었지만 이들은 비교적 냉철하게 말씀을 들었으며 비록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설득에 넘어가지 아니하고 오히여 객관적으로 방관자의 입장에 있었다.(16-)
이런 가운데 말씀을 제대로 들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지방장로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예레미야를 변호하기 위하여 히스기야와 미가선지자 그리고 지금 왕으로 있는 여호야김왕과 우리야선지자를 비교하고 있다.(18-19) 히스기야는 마가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여 나라를 구했고 반대로 지금 있는 여호야김왕은 우리야 선지가의 경고 메시지를 듣고 애급에까지 찾아가 잡아오도록 하여 처참하게 죽이고 나라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고 고발한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를 죽이는 일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변호를 한다.(20-23)
마지막으로 예레미야의 설교를 들은 사람 가운데 사반의 아들 아히감은 적극적으로 예레미야 구명 운동을 펴서 아무도 죽이지 못하도록 구해 낸다.(24)
이상에서 본 봐와 같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으로부터,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들은 자들이 이렇게 다르게 반응하는 것을 우리에게 일러 주시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우리는 설교를 들을 때 어떤 태도로 듣고 있는가를 돌아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어떻게 듣는가는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말씀을 듣고 온전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옴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시고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여 예배가 예배가 되며 말씀이 말씀이 되는 참된 부흥으로 우리 모두 심령이 좋은 땅으로 열매가 충만 하기를 기원드린다. 어떻게 듣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