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오병이어 기적의 의미

믿음찬교회 0 277 2021.08.09 17:56
오병이어 기적의 의미
마 14:13~21
2021.08.08.

우리는 지금 마태복음 연속 강해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강해설교를 하는 교회가 다소 적고, 또 연속 강해설교를 하는 경우는 더 적은데... 그런 점에서 우리 교회는 왜 강해설교를 하는지... 그 취지에 대해서 잠깐 설명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강해설교는 성경본문을 먼저 잘 해석하고 그리고 그렇게 찾은 의미를 우리 삶에 적용하는 설교 방식입니다. 강해설교는 일장일단이 있는데, 단점은 성경을 잘 모르는 분에겐 설교가 좀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것이고, 장점은 성경에 조금 관심이 있고 알고 싶은 분에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강해설교는 성경을 가르쳐주고 그래서 자기 신앙을 갖도록 돕는 점에 큰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강해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설교자도 원해야 하고 신자도 원해야 합니다. 설교자와 신자가 같이 그런 마음을 가지면, 강해설교는 무척 좋습니다. 성경이해를 통해, 자기 신앙을 만들고 제자를 만들고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좀 딱딱해도 강해설교를 하는 이유는 목사가 성경지식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고상한 목회를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안에 서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당장 우리 신앙이 좋아지거나 뜨거워지지는 않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달라집니다. 열매가 맺어지고 우리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께서 이런 취지를 이해해주시고 강해설교를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들에핀믿음찬교회는 강해설교를 사랑하고 꾸준히 듣는 교회다...’ 이런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라고 하는 오병이어는 복음서의 유명한 대표적 기적입니다. 오병이어는 유일하게 4복음서가 모두 기록하고 있는 특별한 기적입니다. 대개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있는 기적이 요한복음에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기적은 요한복음도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기적입니다.
그러면 어떤 면에서 오병이어 기적이 특별한가... 그것은 3가지입니다. 첫째는 이 기적 자체가 놀랍고, 둘째는 이 기적의 의미가 중요하고, 셋째는 이 기적을 전후로 예수님 사역이 많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기적 자체, 기적의 의미, 기적의 결과... 이런 3가지 점에서 이 기적이 특별하기 때문에 4복음서가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선 기적 자체가 놀라운 것이죠.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도 놀랍지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고 남았다는 이 기적은 정말 우리 현실 세계를 완전히 뛰어넘는 기적입니다. 세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듯이 떡과 고기가 그렇게 증가하였습니다. 그건 우리 현실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그러나 우리 현실 세계의 많은 일들이 차원이 달라지거나 양자역학의 세계로 들어가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잘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차원과 세계를 예수님께서 그 순간에 여셨다고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무튼 과거엔 이런 예수님의 기적을 도저히 믿지 못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이 기적을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에 축사하시고 나눌 때 사람들이 다 각자 가지고 온 먹을 것을 꺼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설명은 더 믿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흥분해서 예수님을 쫓아와 왕으로 삼고자 했을까요? 왜 그 사건 이후 유대와 로마 당국은 예수님을 본격적으로 체포하고 죽이려 했을까요? 다 각자 자기 도시락을 들에서 먹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그런 모든 일련의 일들은 오병이어 기적이 성경 말씀처럼 사실임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오병이어 기적은 그 의미가 더 놀랍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은 인간의 빵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기적은 어마어마한 기적입니다.
인간의 빵의 문제는 다른 말로 ‘먹고 사는 문제’이죠. 죽음이 인간 최대의 문제라고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에 인간 최대의 문제는 다름 아닌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수고를 다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오병이어 기적은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적의 정치사회적인 파장이 어마어마합니다. 가난한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우리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혁명도 가능하고, 나라를 새롭게 세우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 기적 후에 그런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을 해산시키고 제자들을 서둘러 보내고 그 자리를 떠나셨지만, 이튿날 상당수 백성들이 예수님을 쫓아왔습니다. 이 내용은 요한복음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서 그들에게 실제 떡이 아니라 생명의 떡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그 소동은 끝나고... 오히려 예수님과 유대 백성의 사이는 결정적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튼 그 사건은 엄청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유대와 로마 당국은 긴장했고 예수님에 대한 체포를 서두르게 됩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때부터 자의 반 타의 반 대중 사역을 접으시고 이제 남은 기간 제자 사역에 힘쓰시게 됩니다. 남은 기간은 정확히 1년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난 때가 유월절 즈음인데, 예수님은 다음 유월절에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의 사역의 장소가 갈릴리를 벗어나게 됩니다. 갈릴리 사역은 이제 거의 끝이 났기 때문입니다. 더 할 것도 없고 더 할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한동안 이방 땅으로 가셨다가 갈릴리 북부로 가시고, 그리고 마침내 유대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이 오병이어 기적은 그 기적 자체가 놀랍고, 그 기적의 의미가 놀랍고, 또 그 기적의 결과와 파장이 유대와 로마 당국은 물론 예수님의 사역 자체에 큰 영향과 변화를 주었기 때문에, 4복음서가 모두 기록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와 같은 오병이어 기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기적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주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이 기적은 예수님이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적은 실제적인 기적이고, 배고픈 유대 백성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준 기적입니다. 그래서 이 기적의 의미는 명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빈 들의 유대 백성들을 떡과 물고기로 먹이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 기적은 매일 우리 앞에 먹을 것을 내려주시고 우리 현실 문제를 다 해결해주신다는 의미가 아니죠. 이 기적은 우리에게 무엇이 절박하게 필요하고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과 우리 주님께서 놀랍게 채워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영적인 종교이고 내세의 종교이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종교입니다. 오늘 우리의 아픔과 고통과 문제를 해결하는 신앙입니다. 이런 우리 신앙의 현실성과 구원의 현실성은 그 어떤 종교보다도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수많은 인물들도 그렇게 하나님을 믿었고, 신약의 수많은 신자들도 그렇게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의 필요와 문제를 만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셨는지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에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왜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을까요? 네, 그때가 유월절 가까운 시기라고 말씀드렸죠. 그러니까 일반적인 경우, 그 사람들은 여기 예수님을 만나러 올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명절을 지키러 올라가야 하죠. 그런데 왜 그들이 안 올라가고 여기 있을까요?
네, 가난하고 돈이 없기 때문에... 여비도 없고 예물 준비할 돈도 없고... 그러니 가고싶어도 못가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거기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에게 나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병자들도 많고, 또 저녁이 되었는데 대부분 밥 먹을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난해서 끼니마다 밥을 먹지는 못하더라도, 대체로 저녁에는 밥을 먹죠. 제가 정약용 선생에 대한 책을 보니까, 그분이 젊은 시절 암행어사로 지방을 순회하면서 백성들의 가난하고 힘든 삶을 목격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정약용 선생이 가난한 농민의 집을 보니까, 아침에 밥 먹을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아이들은 그저 마당에 나와 힘없이 놀고 있고, 어른들은 일어나자마자 일하러 나가고... 그러다가 저녁 무렵에 부모들이 돌아와 그제서야 부엌에 불을 피우고 밥 먹을 준비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루에 겨우 한 끼를 먹는데, 그걸 저녁에 먹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예수님과 함께 빈들에 있는 이 백성들은 저녁인데도 밥 먹을 생각을 안 하는 겁니다. 예수 영화를 보니까 이 장면을 잘 표현해 놓았습니다. 다들 도리없이 그냥 앉아 있는데, 예수님이 그런 백성들을 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서는 떡을 만들지 않으셨지만, 사람들을 위해 이 기적을 행하시기로 마음 먹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적의 위험성을 아셨지만, 그러나 그들의 어려운 현실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만약 여러분들이 그때 거기 있던 백성들과 같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다면,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이 현실적인 문제를 주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제가 이것이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는 살 수 없습니다...’ 꼭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우리 신앙의 목적은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갈 힘도 있고 자유도 있습니다. 열심히 성실히 살아가야 하죠.
저도 늘 주님께서 저를 인도하시길 기도하지만, 현실 문제에 대해서는 잘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개인마다 좀 다른 신앙 스타일의 문제인데, 작은 일까지 다 기도하는 분들도 있고 중요하고 큰일 위주로 기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낫다 할 문제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향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중요한 문제 앞에 방법은 없고 나는 능력이 없을 때, 그때에는 전적으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밖에 방법이 없기도 하지만, 그때가 우리의 소원과 필요를 아뢸 수 있는 결정적인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에는 하나님을 잘 믿다가, 결정적인 그런 순간에는 오히려 기도 안 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을 의지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런 결정적인 상황에 놓이시면 꼭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할 때 하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 오병이어 기적이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와 우리의 가장 현실적인 필요를 주님께서 아시고 해결해주신다는, 그런 귀한 기적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이 기적은 우리의 먼 미래를 보여주는 영적인 기적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이 우리의 배고픔과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기적이지만, 그러나 단지 그것이 전부라면 이 기적은 그렇게 특별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오병이어 기적은 하나의 큰 상징입니다. 어떤 상징인가... 네, 오늘 19절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네, 바로 주의 만찬 장면이죠. 26:26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여러분, 이 두 말씀이 우연히 일치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는 동일한 단어로 오병이어와 주의 만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병이어의 그 식사는 바로 주의 만찬을 상징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주의 만찬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예수님과 제자들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식사한 그날의 만찬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네, 그것은 언젠가 그날에 하늘에서 가지게 될 메시아 만찬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26:29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와 같은 메시아 만찬은 이사야서에서 이미 예언된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사25:6~8)
그러므로 오병이어 만찬는 주의 만찬과 동일하게 종말의 메시아 만찬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단지 밥 한 끼 먹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배고픔이 사라지고 우리의 눈물이 다 씻어지고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영광스러운 그날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여러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왜 그토록 유명할까요? 그것은 그분이 그린 작품이 예술적으로 뛰어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결국은 그 작품의 의미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작품은 단순히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이라는 의미를 넘어, 그날의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질 최후의 메시아 만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다빈치가 그 그림을 그릴 때 그런 이해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복음서가 말씀하는 최후의 만찬엔 그런 종말론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최후의 만찬 그림을 감상할 때 단순히 십자가라는 깊고 어두운 의미만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메시아 잔치라는 영광스럽고 찬란한 의미를 발견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오병이어 기적은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위해 베풀어주신 귀한 기적입니다. 먼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서의 잔치를 바라보게 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 우리를 그날의 잔치 자리에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불쌍한 우리들의 밥 한 끼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날의 하나님 나라로 우리를 초대하시기 위해 이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와 같은 영광스러운 잔치 자리에 다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는 자연만물을 넘어서고, 보이지 않는 악의 세력을 넘어서고, 인간 최대 문제인 죽음을 넘어서고, 또 인간 최대 문제인 빵과 떡을 넘어서고, 그리하여 마침내 인간 최고의 영광인 그날의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그런 궁극적인 나라입니다.
이 오병이어 기적은 우리들에게 오늘의 현실을 극복하게 하고, 나아가 그날의 영광스런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귀하고 아름다운 기적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들에핀믿음찬교회 성도님들은 이 기적이 보여주는, 이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와 미래 속에서 큰 은혜와 복을 경험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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