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주 들르시는 벳새다에 도착하신다. 곧 사람들이 맹인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나아온다.
여기에는 맹인의 시력이 예수님의 만져 주심과 연관되면서 예수님은 맹인 같은 우리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내 주신다.
먼저 이 맹인이 예수님께 인도함을 받아서 손을 대어 주기를 원했는데 그 첫 번 만져주심은 그들과 구별하여 따로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익숙한 생활에서부터 격리 시키시는 주님이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성령께서 우리를 책망하시어 무리들로부터 떼어 놓으시는 것이다. 요16:8 이는 우리의 신앙은 철저히 개인적이고 개별적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두 번째 만져주심은 볼 수 있는 눈으로 변화시켜 주신 것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우리는 눈이 있어도 볼 수 없는 영적인 맹인으로 사는 절망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면 구별하여 주시고 그 만져주시는 손길에 순종하여 맡기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요3:3, 요3:16 예수님을 만나면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보이게 되고 세상이 보이게 된다. 게다가 자기 자신도 보게 되는 것이다.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시각(視覺)이 바뀌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이다.
세 번째 만져주심은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세미하게 고쳐주심이다.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거듭남 만이 아니라 더 많은 변화가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구원의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희미하게 보고 살아왔다면 확실히 보는 우리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요20:1-10 빈 무덤이 보이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된다고 하신다.
예수님을 개별적으로 만나는 역사가 있기를 원하신다.
대충 보는 것으로 살면 사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가족들과 이웃들과 세상을 제대로 보면서 믿음으로 살아내는 우리가 되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