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책임이 없다는 것을 입증함에 있어 구원의 보편성과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언급하고 있다.
첫째, 구원의 보편성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심에 있어 그 어떤 차별도 두지 않으셨다(11-12절). ‘누구든지’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신다(행 10:34-35).
하나님이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신 주님이시며, 그들에게 주님은 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주님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13절).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마음으로 예수 믿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며, 전인격적으로 신뢰함을 의미한다. 또한 예수가 누구든지 쉽게 만날 수 있는 분이심을 뜻한다. 특별한 사람만이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부르지 못할 사람은 없으며, 누구든지 예수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차별 없는 구원의 복음이 우리의 편견이나 차별에 의해 가로막혀 있지는 않는가? 이 세상에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없다. 구원받아서는 절대 안 되는 사람도 없다.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둘째, 이 구원의 보편성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아름다운 발’이 되어야 한다(14-15절). 바울은 복음을 통한 구원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보내심 – 전파함 – 들음 – 믿음 – 부름의 단계이다.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면, 전파하고 듣고 믿고 부를 수 없다. 전하는 사람이 있기에 부르는 일도, 믿는 일도, 듣는 일도 있는 것이다. 믿음은 보내심을 받는 데서 출발하고, 전파하여 들음을 통하여 믿음이 생긴다.
복음이 전달될 수 있는 것은 전파를 통한 방법 밖에 없다. 우리가 복음을 듣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발이 되어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아름다운 발이 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발’이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복음 전파가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임을 잊지 말고, 발로 복음을 전하여 그 빚을 갚아가는 성도들이 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