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주시는 다섯 번째 메시지이다. 이들의 문제는 환경이나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그 백성들의 내면의 문제라는 것을 드러내 주고 있다. 바로 교만이라고 하신다. 이를 설명하시기 위하여 특이하게 두 가지 실물을 들어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첫 째가 베띠이다. (1-7) 이스라엘 사람들의 복식에서 띠는 신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중에서 정교하게 짠 베띠는 명예와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11) 하나님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이렇게 귀하게 사용하실 목적을 두고 계셨는데도 물에 졌듯이 교만하여 세속에 썩어 쓸모없이 되어 버린 것이다.
두 번째로는 가죽부대이다. (12-14)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백성들로 하여금 모든 가죽부대들에 포도주를 채워 하나님의 임재로 기뻐하도록 하였으나 모든 거민들( 왕들, 제사장들, 선지자들 모든 예루살렘 주민들)이 포도주에 취하여 서로 싸우고 충돌하며 서로 상처를 주고 가정이 파괴 되고 만 것이다.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은혜를 오남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의 열락에 취하여 징벌을 벌어 드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두 가지 실물교육을 통하여 교만의 원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 하고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는 완악함 즉 교만이라고 하신다. (10, 15, 17 )
왜 말씀을 멀리하면 교만하게 되는 것일까? 말씀이 없으면 나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말씀이 없으면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버리고 하나님 없이도 잘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마음은 결국 자신을 우상으로 삼고 예배하며 자신을 섬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자신의 판단과 생각이 가장 옳은 것으로 여기면서 하나님을 재끼고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을 섬기도록 강요하는 큰 교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이 없으면 심히 부패하게 되는 것이다.(렘17:9-10) 이렇게 말씀 없이 사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명예를 실추 시키시고 파멸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신다.(15-21)
그런데 정작 이런 심판이 임하게 되면 얼마나 하나님 없이 살아온 것에 익숙해 졌는지 그들의 마음에 이르기를 ‘어찌 이런 일이 내게 닥쳤는고?’라고 할 정도까지 되었다고 기록 하고 있다.
결국 하나님 없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에 옳은 데로 이리 저리 막 살다가 엄청난 수치를 당하게 된다고 마지막으로 경고하신다. 두 번이나 반복하여 ‘네 치마가 들리게 된다.’는 표현을 하신 것이다. (22-26)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서는 특이하게 메시지를 맺고 있다.
27 내가 너의 간음과 사악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네가 행한 음란과 음행과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지를 가름 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가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보고 계신다. 얼마나 안타까워하시는 가?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지 말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말씀 하실 때 들을 수 있는 귀가 되도록 성령 하나님께 간구 하여야 할 것이다. 내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