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다. 예수님께서 선두로 걸어가시고 제자들은 뒤따라가고 있었다. 뒤따라가는 제자들이 서두르시는 예수님을 보고 놀라워하고 있다. 갑자기 예수님께서 일행을 멈추게 하고 둘러 앉혀놓고 왜 걸음이 빠를 수 밖에 없는지를 말씀 하신다. 간단하게 ‘나는 죽으러 간다.(33-34)
예수님의 머릿속에는 온통 십자가의 가시관이 가득차 있다. 그런데 제자들의 머릿속에는 전혀 다른 영광의 면류관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동상이몽이다.
예루살렘으로 동행은 하지만 제자들의 속셈은 예수님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들의 속셈이 금방 들통나 버린다. 바로 요한과 야고보의 돌출행동이다.(35-37)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예수님은 저희들 위해 죽으러 간다는데 저들은 권력에 눈이 멀어 있었던 것이다.(38-40)
예수님께서 감당하실 십자가의 쓴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시고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물으신다. 그런데도 건방지게 함부로 주님의 쓴잔과 주님의 세례를 우리도 감당 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나서고 있다. 실로 가관이다. 출세와 성공에 눈이 어두워 보이는 게 없어진다.더니, 이 제자들이 그렇다. 그래도 예수님은 너희들이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다치자 그러나 내 좌우편에 앉히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지 내가 임의로 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하신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나머지 말없이 지켜보던 다른 10명의 제자들의 모습이다.(41) 다른 사람이 잘되고 복 받는 꼴을 보지 못하고 분개하는 속물이 되어 있는 제자들이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들을 타 이르신다.(42)
이방인들의 질서와 제자들의 질서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제자들의 삶의 방식은 전혀 다른 것이라 하신다.(43-44) 섬김이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의식구조를 뒤집어서 전혀 다른 질서와 다른 태도로 변화되라고 하신다.(45)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동상이몽에서 벗어나 주님과 같은 꿈으로 살기를 촉구하신다. 우리는 교회에 출석하거나 비대면으로 모니터 앞에 있더라도 딴 생각하고 있은 것은 아닌가? 말씀을 묵상하거나 기도하면서도 다른 마음으로 주님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낸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보이는 것이 두렵고 보이는 것에 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속사람을 하나님 앞에 드러내 놓고 성령님으로 스캔하시도록 허락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섬김받는 것을 좋아하고, 기를 쓰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야 하고, 주님의 것을 내 것으로 삼고 욕심을 부리고 살았다면 십자가로 대수술을 받는 회개의 역사가 있기를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