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된 종말론
계1:1~3
2021.05.28.
요한계시록을 펼쳐서 첫 부분을 읽는 사람에게 인상적인 것은 종말의 임박성입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여기서 ‘반드시 속히 일어난다’는 말이 무척 두드러지죠. 이 내용은 3절에서 다시 반복됩니다. “... 때가 가까움이라.”
‘이 일이 속히 일어난다’와 ‘때가 가깝다’라는 말씀은 요한계시록을 읽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강하게 다가옵니다. 저도 청년 때 혼자 요한계시록을 펼쳐서 읽을 때, 이 내용이 강하게 마음에 부딪혔습니다. 이런 종말의 임박성은 요한계시록 전체에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접하는 많은 사람은 이와 같은 종말의 임박성에 자연스럽게 큰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영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늘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시한부 종말론이 나오고, 또 비록 시한을 정하지는 않아도 지금은 마지막 때라는 무분별한 임박한 종말론이 나오게 됩니다.
시한부 종말론으로 가장 유명한 사건은 19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기독교 종말론에 대한 큰 불신을 남기고 끝났죠.
사이비한 시한부 종말론 외에도 신천지 같은 대부분의 이단은 그 중심에 임박한 종말론이란 잘못된 종말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임박한 종말론 때문에 일상과 삶의 의미를 온통 잃어버리고 맙니다. 이 모든 것은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그 임박함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만들어진 종말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임박하다고 말씀하는 이 내용을 바르게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1980년대 이후 요한계시록 성경연구가 상당히 발전하게 되었는데, 특히 요한계시록과 구약성경과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가 큰 진전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요한계시록이 구약성경을 상당히 인용하고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신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다양한 구약성경을 언급하거나 암시하고 있는데, 그 중 이사야서가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에스겔서와 다니엘서가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책의 분량을 감안한 비율로 본다면 다니엘서가 가장 많고, 또 그 중요성에 있어서도 다니엘서가 가장 큽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상당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중 한 가지 사실은 요한계시록 1장이 다니엘서 2장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서 2장의 내용을 잠깐 말씀드리면, 다니엘서 2장에는 큰 신상 환상이 나옵니다. 그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두 팔은 은이고 배와 다리는 놋이고 그 종아리는 쇠고 그 발은 쇠와 진흙이 섞인 신상입니다. 그런데 큰 돌이 나와서 이 신상의 발을 쳐서 부숩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 환상을 해석해 주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마지막에 모든 세상 나라를 쳐서 무너뜨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다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니엘서 2장이 그 주제와 문맥과 본문 표현에 있어서 요한계시록 1장에 깊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학자들은 요한계시록 1:1절이 다니엘서 2:28~29과 45에서 직접적으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서 2:28은 “그가... 반드시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이고, 계시록 1:1은 “하나님이...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보이시려고...”입니다. 다니엘서가 ‘후일에 될 일’이라고 말한 것을 요한계시록은 ‘속히 일어날 일’이라고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요한이 이 부분을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면 요한은 왜 그랬을까요? 왜 요한은 다니엘서가 ‘먼 후일에 될 일’이라고 한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것을 ‘속히 될 일’이라고 말했을까요?
네, 그것은 다니엘이 환상 중에 보았던 그 하나님의 나라가 이제 요한의 시대에서 이미 실현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바라본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임했죠. 그리고 그 나라는 자라기 시작했고 최종적인 완성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렇게 바꾼 것입니다. 요한에게 있어 그 일은 마치 비탈에서 돌이 굴러가기 시작한 것과 같습니다. 지금 막 그 돌이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마침내 그 돌은 완전히 산 아래로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것을 ‘속히 일어날 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상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면, 이 ‘속히’라는 말은 단순한 양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의미대로 ‘이제 금방 아버지가 퇴근하고 오신다’는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임했고 시작되었고 이제 자라고 있고 그 완성은 확실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속히’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세상의 역사는 그 절정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이후로 세상엔 종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성경이 말씀하는 내용이죠. 성령님이 각 사람에게 임하시는 것도 종말론적인 현상이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된 것도 종말론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종말은 시작되었고, 그것은 마치 비탈에 굴러가기 시작한 돌과 같습니다. 그것은 불붙은 도화선과 같습니다. 비탈이 얼마나 긴지, 도화선이 얼마나 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침내 돌은 비탈을 굴러 산아래에 닿을 것이고, 불붙은 도화선은 폭발하게 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확실성에 비추어 또 그런 영적인 역사 단계의 의미에서 요한은 ‘속히’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때가 가까움이라’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도 단순히 시간의 양적인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죠.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날은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에, 그런 영적이고 철학적인 의미에서 때가 가깝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에서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첫째, 우리는 무분별한 임박한 종말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시한부 종말론이나 무분별한 임박한 종말론은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시간 및 그날에 대한 이해가 낮은 수준입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문자적으로 또 표면적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종말이 금방 오는 것처럼,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유혹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결국 사람들의 영혼과 돈을 노립니다.
일부 정통 교회에서도 임박한 종말론을 무분별하게 강조하는 교회가 간혹 있습니다. 그런 가르침으로 교인들을 구속하고 헌신과 충성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요한이 말하는 임박함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그런 잘못된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우리는 성경적인 올바른 종말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져야 할 성경적인 건전한 종말론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시작된 종말론’입니다.
종말론이나 세상의 종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종말이 시작되었고,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신앙 속에 ‘그날이 언제이냐, 그때가 언제이냐’ 하는 것은 중요한 내용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그것은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사실 종말의 시간을 아는 것은 큰 소용이 없습니다. 백화점 문 여는 시간과 놀이동산 문 여는 시간을 아는 것이 중요할까요? 중요한 것은 살 수 있는 돈이 있느냐, 놀이동산에 들어갈 표가 있느냐 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그 시간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언제 주님이 오시더라도 주님을 맞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건전한 종말론입니다.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도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새삼스럽게 종말론을 가지고 호들갑 떨 필요가 없죠. 우리는 시작된 종말론 속에 하루하루 깨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신앙이 올바른 것이고, 그런 신앙은 일상을 해치지 않습니다. 일상을 해치는 종말론은 잘못된 종말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임박하다는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그날을 바라보며 성실하게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며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