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가 오리라
마 10:16~23
2021.05.02.
마태는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의 제자 파송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앞부분인 1~15절까지는 예수님의 제자 파송과 파송 지침이 나오고, 뒷부분인 16절부터는 예수님의 제자 파송 설교가 나옵니다.
이 예수님의 제자 파송 설교가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안에는 모두 5개의 주요 말씀이 있죠. 첫 번째는 산상수훈이라고 하는 제자도(제자의 삶), 두 번째는 오늘 본문의 제자 파송, 세 번째는 천국 비유, 네 번째는 교회, 다섯 번째는 종말. 그래서 이 제자 파송 설교는 마태복음 5대 말씀의 하나로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내용상으로 봐도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자세와 각오로 살아야 하는지를 말한다는 점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좋든 싫든 지금 예수님의 제자로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의 파송 설교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대체로 이 말씀은 우리 교회와 신자들의 소위 인기 있는 말씀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힘든 내용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안 보는 말씀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마태복음의 주요 말씀 중 하나로서, 또 세상에 파송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서 우리가 귀담아들을 말씀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어떤 말씀을 하시고 있는가... 16~42절까지 여러 번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몇 가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제자들에게 마냥 ‘하나님이 너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다’고 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현실주의자처럼, 너희는 자기 능력과 자기 지혜를 가지고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을 삼가라’입니다. 이것은 박해에 대한 예고이죠.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세 번째는 ‘할 말을 주시리라’입니다. 이것은 박해 중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순간에 간섭하시고 개입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네 번째는 ‘끝까지 견뎌라, 피하라’입니다. 이것은 박해를 대하는 자세와 방법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 것으로 어려움이 올 때 끝까지 견뎌야 하죠. 그러나 한편으론 피피할 수 있을 때 피해야 합니다. 견디는 것과 피하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내용이지만, 우리는 상황과 현실 속에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16~23절까지 예수님은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여러분들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마지막에 조금 특별한 말씀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박해를 당하면 피하라는 말씀 후에, 너희가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피하지 못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네, 이 말씀은 박해를 당하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예언이죠. 그런데 이 예언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의미일까요? 그래서 너희의 박해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소망의 의미일까요? 이 말씀은 성경의 대표적인 어려운 말씀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는 이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최선으로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과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선 생각할 것은 마태복음 안에 이 말씀과 비슷한 말씀이 또 하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마24:32~34)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이른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난다...’ 오늘 본문과 상당히 유사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이 일이 다 일어난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앞에 있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의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30~31)
그래서 이 24장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어두워지고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고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시고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이 택하신 자들을 모을 것이다. 너희가 이 모든 일을 보면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이 모든 일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비슷한 이 두 말씀, 즉 10:23 말씀과 24:30~34 말씀을 같이 생각하면 ‘인자가 오신다’는 이 말씀의 의미를 예수님의 재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누가 봐도 이 말씀의 분위기는 종말론적인 분위기이고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큰 문제 하나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이 말씀한 그 재림의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사실입니다. 박해를 피하는 제자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주님이 재림하시고,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의미가 되죠. 그러나 아시다시피 주님의 재림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도 기다리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주님의 재림이라고 해석하면 이런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이 틀린 것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고 이 의미를 재림이라고 안 보기도 쉽지 않고... 우리는 마치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이런 해석상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어떤 분은 예수님이 임박한 종말론에 사로잡혀 잘못된 말씀을 하셨다는 외람된 말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나 이 세대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그 시간을 최후의 재림과 맞추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잘 살펴보면, 구약에 하나님께서 오시고 주께서 오신다는 말씀이 나오고, 신약에도 인자가 오시고 그가 오신다는 말씀이 더러 나오는 것을 봅니다. 특히 요한계시록 말씀에 그런 표현이 있습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느니라(오시리라x)”(계1:7),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계2:16),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여기서 ‘오신다’는 이 말씀들은 다 현재형이고, 의미상 미래를 가리킨다고 해도 먼 미래가 아닙니다. 즉 최후의 재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 것이죠.
계 1:7 말씀은 왕이신 예수님께서 지금 이 시대 속에 오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계2:16 말씀은 예수님께서 지금 버가모교회에 임하여 그 교회의 니골라당과 싸우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계3:20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문을 여는 자에게 개인적으로 임하여 그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오신다’는 말의 의미가 재림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오시는 것과 같은 그러한 사건과 일이 발생할 때, 그것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역사적이든 개인적이든 성경은 그것을 주님께서 오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이 아닌 ‘인자의 오심’이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께서 직접 내려오시는 것처럼 자신의 왕권을 이 땅에 행사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어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것은 단순히 앉아계신다는 의미가 아니죠. 하나님의 아들로서 또 왕으로서 통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막연한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실제로 이 세상과 이 세상 역사에 간섭하시고 개입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악을 멸하시고 선을 세우시고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보호하시고 이기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런 왕이신 예수님의 왕권 통치가 우리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뚜렷하게 임할 때, 성경은 그것을 ‘그의 오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분이 연약한 우리에게 오신다면 그것은 한없는 위로와 은혜가 되겠죠. 박해 받고 고통 받는 교회와 신자에게 오신다면 그것 역시 한없는 힘과 능력이 될 것입니다. 반면에 악한 자들에게 그 오심은 두려운 심판이 될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아직 아니지만, 하나님은 악인과 악을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두려운 교훈이 될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인자의 오심은 예수님의 왕권 통치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의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이 말씀에서 인자가 오신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최후의 재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박해하는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왕권 통치 즉 유대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그때 과연 예수님은 오셨는가? ... 네 그것은 성취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은 그 인자의 오심을 AD 70년경의 예루살렘 멸망으로 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교회를 박해한 유대인들은 로마에 대항하여 AD 66년 유대 로마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곧 끝날 것 같았던 그 전쟁은 로마의 내부 사정으로 지지부진하였는데, 결국 AD 70년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고 그들은 약 5개월간 최후의 항전을 하게 됩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때는 유월절 기간으로 수많은 순례객도 거기 있었는데, 결사 항전을 위해 식량을 불태워 많은 사람이 굶어 죽고, 자식을 죽여 인육을 먹는 끔찍한 일도 발생하고, 그러는 가운데 도망가는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아마도 오늘 본문 21절 이 그런 상황을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극단적 믿음과 혼란과 내분 속에 마침내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맙니다. 항복을 거부하고 결사 항전한 유대인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은 로마군은 무자비한 진압을 했고 성내의 대부분의 사람을 죽이고 성전 역시 완전히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네, 마태복음은 그와 같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마태는 예루살렘 멸망을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왕권을 가지고 오신 두려운 사건으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오리라... 그것은 예루살렘의 심판과 멸망을 의미하는 예수님의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과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
대개 우리는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마지막 그날에 오시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최후의 그날에만 오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왕권 통치는 하늘에서 이루어졌고, 이제 그 통치는 이 세상과 땅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그분의 오심은 계속 성취되고 있는 것이죠. 그분의 오심은 이런 반복되는 예비적 성취 속에 마침내 온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권을 가지고 지금 오신다는 이 사실을 새롭게 깨닫고 큰 위로와 도전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의 오심은 종말의 전 시대 속에 이루어지고, 교회적으로 이루어지고, 또 개인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의 오심은 악과 악인에겐 심판이고, 그의 백성과 제자에겐 큰 위로와 능력과 새 역사가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보면, 세상이 얼마나 악하고 부조리한지 알 수 있습니다. 개인과 사회 속에 뿌리 깊은 악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금 실수하고 잘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악을 선택하고 양심을 버리고 명백한 거짓말을 하고 미워하고 지배하고 빼앗고 짓밟는 사람이 많습니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세상의 악은 짙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당수 우리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가 힘들고, 큰 위기감을 느낍니다. 거짓과 악은 득세하고, 그 힘은 강하고, 우리는 악한 세상을 고치거나 이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피난처 같은 교회 안에만 모여있고 싶습니다.
한편 이런 상황 속에 일부 신자들은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신앙 따로 삶 따로 이중적인 생활을 합니다. 주일에는 신자이지만, 평일에는 신자가 아닙니다. 한 주간 누구보다 세상적인 사람으로 삽니다. 그러면 고민할 것도 갈등할 것도 없죠. 그러나 그런 이중적인 생활은 제자의 본분을 잃은 모습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도망쳐서도 안 되고, 세상 속에서 세상적으로 살아도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제자로서 당당히 살아갈 때, 진정한 전도도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인자가 오리라’하신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악하고 부조리한 이 현실에 그분의 왕권 통치가 임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하늘 보좌에 왕으로 좌정하신 예수님께서는 그저 하늘에만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고 되어 있지만, 기도만 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자신의 왕권을 행사하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악의 세력을 꺾으시고, 의로운 믿는 자를 구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좀 바꾸어야 합니다. 악의 힘이 강하고 대단한 것 같지만, 그러나 사실 악은 계속 주님의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계속 악의 세력을 멸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제자로서 이와 같은 주님의 통치를 믿어야 하겠습니다. 선과 악이 싸우고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서 우리는 그런 주님의 오심을 믿어야 합니다.
왜 그것을 믿어야 할까요? 그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어두운 세상 속에서 꿋꿋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들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고... 그날의 최후 승리뿐만 아니라 오늘의 승리를 믿으며 살아가는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런 믿음을 나누고 고백하는 공동체입니다. 진실은 드러나고 정의는 승리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가깝고 주님은 살아계시고 통치하신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그런 믿음으로 서로 격려하는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악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너무 힘들어하고 위축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지금 다스리시고 지금 오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비록 예루살렘 멸망과 같은 엄청난 사건은 자주 일어나지 않겠지만, 우리 삶과 시대 가운데 오래된 악이 무너지고 악한 것이 무너지고 새 시대가 열리고 새 역사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런 주님의 오심을 믿고 용기있게 사는 것이 세상 속에 사는 제자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무쪼록 물러서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지금 있는 곳의 악과 부조리를 믿음으로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거기 동조하지 마시고 그렇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깨끗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바른 말을 할 때는 바른 말을 하고, 결단할 때는 결단하고, 피해야 할 때는 피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의 개인 삶에 주님께서 오실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인자의 오심은 예루살렘 멸망 같은 역사적인 큰 사건이기도 하지만, 우리 삶과 심령에 임하는 개인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주적인 분이시지만, 동시에 지성소 법궤 위 그룹의 날개 끝 한 지점에 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 한 사람을 위해 우리 삶과 심령에 오시는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께서 왕의 위엄과 권위로 우리에게 오셔서 식사와 교제를 하신다면, 우리에게 새로운 힘과 길이 열릴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과 심령과 가정에 그런 주님의 오심이 있으시길 빕니다. 저도 그런 개인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아직 믿음이 없는 저희 우주를 주님께서 만나주시기를... 군 생활을 잘 마치고 새길로 인도하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여러분의 삶과 현실과 문제 위에 주님께서 오시기를 간절히 원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들에핀 믿음찬교회에도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새 역사를 주시고 새롭게 이끌어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