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하나님의 그 비밀

믿음찬교회 0 99 2022.03.21 18:07
하나님의 그 비밀
계 10:1~11
2022.03.18.

오늘 우리가 읽은 이 10장은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 있는 삽입구 같은 말씀입니다. 앞서 일곱인 심판에서도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 삽입된 내용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 삽입된 내용이 무엇이었죠? 네, 그것은 7장의 144,000과 흰 옷 입은 무리였습니다. 그때 그 내용은 어떤 목적으로 삽입되었을까요? 네, 그것은 누가 그 혹독한 하나님의 종말의 심판과 환난을 통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만이 마지막 때의 어려움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구조가 일곱 나팔 심판에서도 동일합니다. 지금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 동일한 목적으로 10장과 11장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10장과 11장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10장과 11장은 불신자들이 왜 그렇게 혹독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불신자들이 왜 그렇게 혹독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말하는 10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0장이 시작되면서 요한은 한 힘센 천사를 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힘센 천사가 모두 3번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그 힘 센 천사가 큰소리로 외치는 장면은 2번이 나옵니다. 5장과 10장 이렇게 두 군데입니다.
그것이 두 군데에 불과하다는 것은 특별한 내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5장에서 힘 있는 천사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큰 음성으로 외치며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그 천사의 외침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 천사의 외침은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시다는 내용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10장의 힘 센 천사의 외침도 매우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 천사는 5장의 천사와 비교해 볼 때, 훨씬 남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천사라도 다 같은 천사가 아닙니다. 구약에 보면 신적인 천사가 나옵니다.
아브라함을 찾아와 소돔으로 갔던 그 천사 중 한 분은 여호와이셨습니다.
얍복강에서 야곱과 씨름한 천사도 보통 천사가 아니었습니다.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말씀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부모들에게 나타난 천사도 일반 천사가 아니었죠.
그런 점에서 이 천사도 보통 천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데 대개 천사는 구름을 타고 오지 않거든요.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다는 것도 정말 남다른 모습입니다. 그 얼굴이 해 같고 그 발이 불기둥 같다는 것도 그렇고...
이 천사에 대해 묘사하는 내용 전부가 다 이 천사는 일반 보통 천사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무지개는 요한계시록에 단 2번 나오는데, 하늘 보좌에 있고 그리고 이 천사 머리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펼쳐진 두루마리를 가지셨다는 것도 그렇고, 두 발로 바다와 땅을 밟고 있는 주권적인 모습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이 창조 세계에 대한 주권적인 모습입니다.
또 사자같이 외치실 때 일곱 우레의 울림이 동반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 일곱 우레는 문자적인 의미로 진짜 우레일 수도 있지만, 비유적인 의미에서 어떤 천상의 존재가 내는 소리(6:1, 19:6)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곱 우레  소리가 났다가 아니라, 일곱 우레가 소리를 내어 말했다는 점에서 비유적인 의미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렇다면 천상의 존재들이 이 천사의 외침에 화답한다는 점에서 이 천사는 결코 보통 천사로 보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모든 내용은 이 특별한 천사가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 혹은 적어도 그분을 대리하는 특별한 천사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본문이 이 천사의 정체에 대해 이렇게 소상히 진술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천사가 누구인지를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천사를 자세히 말씀하는 이유는 이 천사가 이런 특별한 천사이기 때문에 그가 하늘에서 내려와 사자처럼 외치는 내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우리의 관심을 ‘이 천사가 과연 누구이냐?’ 하는 것으로부터 ‘이 천사가 대체 어떤 말씀을 하느냐?’로 옮겨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신적인 특별한 천사는 일곱째 나팔의 새 창조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렇죠. 여섯째 나팔까지는 하나님의 심판이었고, 이제 나올 마지막 일곱째 나팔은 하나님의 새 창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또 거기에 들어갈 하나님의 새 백성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신적인 특별한 천사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새 창조를 앞두고 지금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 메시지는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7절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9절과 11절 말씀입니다.
오늘은 7절 말씀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7절은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곧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그 비밀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그것은 일곱째 나팔을 통해 이루어지는 최후 심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그런 일반적인 내용을 굳이 비밀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거창하게 전달하는 것일까 싶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그 비밀은 일곱째 나팔을 불 때가 아니라 불려고 할 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말 성경이 원어를 정확히 번역해 놓았는데, 일곱째 나팔을 불 때가 아니라 불려고 할 때 이루어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비밀은 최후 심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일까요? 일곱째 나팔을 불기 전에, 어떤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지는 걸까요?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이 비밀을 요한계시록 1장에서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1:20 말씀에 일곱 별과 일곱 촛대의 비밀이 있었죠. 그 내용과 동일합니다. 우리는 그때 거기서 비밀 즉 ‘뮈스테리온’이라는 단어가 헬라어 구약성경인 70인경 가운데 다니엘서에서만 나온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비밀을 다니엘서 말씀을 통해 살펴본 결과, 그 비밀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예상치 못한 방법인 이 땅의 박해받고 초라한 현실 교회를 통해 온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죠. 그런데 그 비밀이 지금 오늘 본문에 다시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1:20절의 비밀과 10:7절의 비밀을 어떻게 같은 내용으로 볼 수 있을까요?
네, 그것은 이 10:6~7절 말씀이 다니엘서 12:6~7절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서 11장 말미와 12장은 마지막 때 하나님의 백성의 고난과 박해,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 나라의 완성, 성도들의 통치를 차례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서 12장이 되면 12:6에서 한 천사가 이 놀라운 일의 끝이 언제냐는 질문을 합니다.
그러자 세마포 옷을 입은 다른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맹세하며 말하기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나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면 이 일이 끝난다고 말하죠.
그런데 이 다니엘서의 두 천사가 말씀한 마지막 때의 예언 내용이 요한계시록 10장과 11장의 이 신적인 특별한 천사의 말과 거의 동일합니다. 하늘을 향하여 맹세하는 모습이나 그 내용이나 특히 시간 표현이 동일합니다.
다니엘서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시간으로 표현하고, 요한계시록은 그것을 11장에서 마흔 두 달과 1,260일로 동일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곱째 천사가 그 나팔을 불려고 할 때 더 이상 지체되지 않고 이루어질 하나님의 그 비밀이란 바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현실 교회가 세상 속에서 박해와 고난을 당해 힘을 잃고 초라하게 되고 몰락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그 초라한 패배가 절정에 달할 때 일곱째 나팔이 드디어 울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최후의 종말은 그런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10장의 말씀은 11장의 두 증인의 증언과 패배에 대한 말씀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 후 마침내 일곱 째 나팔이 울리고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최종 완성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할까요?

여러분,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땅의 종말론적인 교회들은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땅의 교회들은 패배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비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이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기 때문이고, 세상이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존재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세상이 우리를 싫어하고 박해하기 때문입니다. 최후 종말이 가까울수록 교회는 박해를 받고 고난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 교회의 이와 같은 숙명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교회나 성도나 바르게 존재하려고 할 때 어려움이 많으며 가는 길이 좁아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현실 교회들의 영적인 방향을 말씀해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잘 나아가고 있는가?’ 한 번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내 우리는 ‘교회의 방향이 많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이 땅에서의 축복과 성공과 승리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그것을 좋아합니다. 고난과 신앙의 대가와 불이익을 말하면 힘들어 하고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잘 되는 것이 신앙이고, 잘 된다고 말하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실이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지금 방향이 많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교회나 성도가 일부러 그런 길을 걸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차피 안 될 것, 열심을 내지 말자’는 부정적인 의미도 아닙니다. 정상적인 성장이나 노력한 성공이나 지혜로운 승리도 다 폄훼하고 미리 포기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나 성도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그분의 뜻을 따른다는 전제 하에 거기서 오는 고난과 어려움을 감내하자는 의미입니다. 어떻게든 잘 되기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향한 타협하지 않는 삶의 방식 속에 고난을 감수하자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마지막 때의 깨어 있는 교회와 신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종말의 세상 속에서 잘 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선 안 됩니다. 그것은 위험한 목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길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올바른 길을 걷다 복을 받으면 감사한 것이고, 올바른 길을 걷다 고난을 당하면 당연한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작된 종말의 시기에 우리는 교회의 작고 초라함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걱정은 그런 외적인 초라함이 아니라 내적인 초라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정직하고 바른가?’ 그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을 도모하는 가운데 잘 되든 못 되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그 길을 가지 않고, 대신에 세상에서 초라하지 않고 멋진 교회가 되기 위해 방법을 가리지 않거나 타협하는 일이 바로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교회는 마지막 때의 그런 신실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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