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산을 옮기는 믿음과 현실

믿음찬교회 0 354 2021.11.02 13:09
산을 옮기는 믿음과 현실
마 17:19~20
2021.10.31.

이 ‘both sides now’라는 노래는 조니 미첼이라는 가수가 오래 전에 불렀던 노래인데, 방금 본 영화의 ost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올해 여름에 개봉했는데, 크게 흥행되진 못했지만 감동적인 내용이어서 한번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both sides now’ 노래의 가사는 구름, 사랑, 인생을 차례대로 말하면서 한면만이 아닌, 양면을 다 보게 되면서 알게 된 삶의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한면만이 아니라 양면을 보는 것... 비록 노래는 ‘그래서 나는 잘모르겠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바로 그것이 이 노래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많은 가수들이 부르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 노래가 말하는 그 양면을 함께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의 믿음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양면을 동시에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한 면은 산을 옮기고 능치 못할 것이 없는 놀라운 모습이죠. 이른 바 산을 옮기는 믿음, 능치 못할 것이 없는 믿음입니다. 믿으면 다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금새 달려오실 것 같은 느낌...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다른 면은 죽도록 충성하는 믿음, 자기 십자가를 지는 믿음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초라한 현실... 그것도 믿음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분명 오늘 예수님은 ‘산을 옮기는 믿음’과 ‘능치 못할 것이 없는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 본문을 가지고 이런 ‘멋진 믿음’을 그냥 말하고 싶기도 합니다. “믿으시면 다 됩니다, 믿으시면 열립니다. 믿음은 능력입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목사님들이 흔히 예를 드는 믿음 성공 예화들이 많죠. 저도 어느날 차를 타고 가면서 기독교 방송을 듣는데, 이런 설교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 어떤 집사님이 미국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했는데, 주일성수를 하면서 예수님을 잘 믿었다... 그런데 그분이 하나님 믿고 주일에 가게 문 닫고 열심히 사업을 했더니, 나중에 수백명의 직원을 둔 어마어마한 매출을 내는 큰 기업체를 만들었다... 하나님 뜻대로 살고 하나님 믿으면 정말 그렇게 축복 받는다...’
네, 이런 예화들은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하고 발전을 하던 80~90년대에 특히 많았습니다. 그때는 누구나 일을 하고 사업을 하고 회사를 다녀도... 잘 성장하고 발전했기 때문에, 하나님 믿으면 복 받고 잘 된다는 그런 설교를 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지금은 성장이 정체되고 경쟁이 심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과거처럼 늘 잘 되는 시절이 아닙니다.
15년 전 제가 전도사 생활을 할 때, 한 집사님이 시장에 가게를 새로 내었습니다. 좋은 분이고 성실한 분이셨지만 이래저래 일이 잘 안 되고 아이들은 자라고 형편이 고만고만했는데, 용기를 내어 하나님을 믿고 새로운 도전을 하셨습니다. 그때 교회는 성령사역을 한창 하고 기도를 많이 하던 때라, 그 집사님의 새로운 가게는 어쩐지 잘 될 것 같았습니다. 그 일을 두고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 그런 믿음의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 어묵 가게가 오픈하던 날 저도 그 시장에 함께 가서 예배도 드리고 통성기도도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가게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몇 개월 후에 가게를 정리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노하우 없이 단지 재료를 받아다가 만든 그 어묵의 맛은 평범했을 것이고, 또 장사도 하던 사람이 잘 하지 안 해본 사람이 갑자기 잘 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새롭게 일을 시작했는데 결과가 그렇게 되어서... 저는 한동안 그 집사님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 믿음” 하지만... 현실은 현실입니다. 현실은 또 하나의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은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밭을 심으면 밭이 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실 속에 믿음을 말하는 목사이지, 무조건 믿음을 말하는 목사는 아닙니다. 저는 모태신앙이고 교회에서 자란 전형적인 신자이지만, 그러나 지금까지 믿음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많은 일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현실을 초월해야 하지만, 현실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아주 오래 전에 교회 수련회에 참석하려던 청년 몇 명이 시냇물에 휩쓸려 익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들이 다니던 교회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교회의 하나로, 늘 담임목사님의 믿음, 능력, 기적... 그 청년들은 그런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청년들은 수련회에 뒤늦게 참석하려고 가던 길이었는데, 마침 전날에 비가 많이 와서 수련회 장소로 가는 개울물이 불어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청년들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수련회에 참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하나님을 믿고 그 개울물을 건너기로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청년들 모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 청년들은 너무 순수한 믿음을 가졌죠. 저는 신학교 기숙사 방에서 이 이야기를 읽고 믿음과 현실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가장 크게 고민했던 사건은 어느 개척교회 목사의 자살 사건입니다. 이 일화는 한 기독교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개척교회 젊은 목사가 안타깝게 자살을 했습니다. 조사가 진행되자 그 목사의 기막힌 사정이 드러났습니다.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그 목사는 그런 선택을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엔 그것이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분이 믿은 믿음과 그렇지 못한 현실 사이의 큰 괴리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부름과 소명을 확신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많은 어려움을 거쳐 신학교를 졸업했을 것입니다. 신학생들 중에는 정말 대책없이 어려운 분들이 많죠. 그러나 그분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늘 기도를 많이하고 전도사 생활을 마치고 목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믿고 개척을 했을 것입니다. 개척교회는 그가 그토록 기도하고 기다렸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되고 개척을 하면, 그때부터는 모든 것을 스스로 사역하고 감당해야 하는 환경이 됩니다. 그러나 그 목사는 교회도 안 되고 생활도 안 되고... 굶기도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 사정을 어디에 말하기도 어렵고 하나님은 아무 응답도 없으시고... 아마 그래서 그런 믿음의 혼란 속에 어느 날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몇 주 전에도 저는 같은 지방회에 있었던 한 후배 목사를 만났습니다. 저보다 2~3년 뒤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지금 목회외에 틈 나는대로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프고 무거웠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놀라운 것이지만 우리는 현실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제가 믿음 없는 목사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절대시하고 기도를 절대시하고 성령을 절대시하고 능력을 절대시하고... 바로 그것만 있으면 다 된다는 신앙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귀한 말씀’을 가지고 이런 부정적인 설교를 하는 것이 참 죄송하고 모순이지만, 우리는 그간 이런 말씀을 믿음 일변도로 과잉 해석 해왔습니다. 그래서 그런 과잉해석은 그것을 너무도 순수하게 믿었던 사람들에게 혼란과 좌절을 주었죠.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절대적으로 말씀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그것을 고민과 비판과 균형을 가지고 잘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도 단지 이 한 절만을 따로 떼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의 흐름 안에서 또 이 사건의 상황 안에서 보아야 합니다.

먼저 마태복음의 흐름 안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금 마태복음은 대부분의 말씀이 제자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16장의 가이사랴 빌립보 모임 이후 십자가의 길을 결단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도 그 길을 가고, 제자들도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변화산 체험도 하게 하셨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 마태는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예고를 16장과 17장과 20장에 모두 세 번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는 제자들을 향한 격려와 결단과 구원과 상에 대한 말씀을 배치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21장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마태복음 흐름 안에서 오늘 본문 20절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산을 옮기는 믿음에 대한 이 말씀은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격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특별한 말씀을 하신 동기를 이해해야 합니다. 강력한 위기 앞에 주시는 강력한 말씀... 이것이 이 말씀의 배경입니다.

한편, 같은 본문인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이 사건의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마가복음에는 마태복음에는 없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이 아이 아버지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아이 아버지는 제자들이 고쳐주지 못하자, 마침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에게 달려와 이렇게 요청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이 아버지는 오랜 시간 아들의 병과 귀신들림으로 인해 좌절과 절망의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소문을 듣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아이를 데리고 왔지만 실패하고, 이제 이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거의 절망의 문턱을 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그 절박한 얼굴과 표정과 목소리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숨이 넘어가는 사람에게 선비처럼 점잖게 말할 수 없죠.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강하게, 믿음의 능력의 최고치를 말씀하셔야 할 줄 믿습니다. 네, 아멘...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몇 년 전 방송에서 배우 이미영씨의 사연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분이 가수 전영록씨와 이혼하고 혼자 힘으로 살면서... 사업에 실패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남은 돈도 몽땅 사기 당했습니다. 우울증이 찾아아고 은둔 생활을 하고 자살을 시도하고... 몸이 완전히 마르고 귀신도 보이고 그야말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고 합니다.
그때 많은 지인들이 용기를 주고 자신을 도와주었는데, 특히 김수미씨가 이런 말씀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힘들더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 자식 생각만 해라. 새끼 생각만 해.” 이미영씨는 그 호통이 자기 마음에 꽂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 아버지가 놓인 그 절망적이고 처절한 상황이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특별한 말씀을 하시게 된 동기이고 배경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호통 같은 믿음의 격려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볼 때, 그와 같은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특별한 말씀은 특별하게 이해하고, 기적은 기적으로 이해하고, 일상은 일상으로 이해해야 하죠. 이 특별한 말씀을 그런 이해없이 아무 상황에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얼굴 닦는 수건을 책상도 닦고, 유리도 닦고, 걸레로도 쓰고 하면 안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은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사람에게 하신 특별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청년들은 그 개울물을 믿음으로 건너가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정말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될 특별한 상황이었나요? 위험을 무릎 쓸만한 특별한 상황이었나요? 그 순간 특별한 기도의 응답이 있었나요? 그렇지 않다면 눈 앞의 현실을 존중해야 하죠. 무조건 믿음으로 급류를 건너는 것은 차들이 달리는 차도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행동입니다.
그 집사님도 그 가게를 믿음으로 시작하면 안 되었습니다. 장사하는 법도 오래 배우고, 어묵의 맛을 낼 특별한 기술도 오래 배워야 했습니다.
그 목사님도 개척교회를 준비없이 시작하면 안 되었습니다. 모든 교회가 어렵고 힘든데, ‘내 교회는 특별하게 잘 될 수 있어... 나는 그렇게 믿어...’ 이것을 믿음이라 할 수 있을까요? 믿음은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지, 모든 상황을 무시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런 맹목적인 믿음이 되어선 안 됩니다.

믿음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일은 목사님들도 잘 못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예를 들어서 교회 건축을 하면서 그런 믿음 실수를 많이 합니다. 일반적으로 교회 건축을 하려면 건축 재정의 최소 50%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나머지는 은행에서 빌리고 갚아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목사님들은 겨우 10~20%의 돈을 가지고 믿음으로 건축을 시작합니다. 특별기도를 하고 금식기도를 하고 작정기도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간혹 기적적으로 교회를 잘 건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이자도 지불하지 못하고, 급기야 교회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는 일도 생깁니다. 제 가까이에도 그런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양산 덕계에서 상가교회를 하시다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교인 없는 좀 큰 교회를 인수하셨는데, 지방회 모임에도 잘 못 나오시고 금식기도도 하시고 많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여러분, 일상 속에서 늘 기적과 능력을 바라는 것은 좋은 믿음이 아닙니다. 좋은 믿음은 일상과 특별한 때를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는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이유가 있을 때, 특별한 하나님의 도우심과 기적을  바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고 나는 방법이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을 때, 그때에는 하나님을 특별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때에는 절망하거나 좌절해선 안 되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신 이 믿음을 100%, 200%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고 이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이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 선포하시길 바랍니다.
“주여 믿사오니 이 불가능한 산 같은 문제를 넘어가게 하옵소서...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함이 없는 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놀랍게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문이 열리고 길이 열릴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일상에서는 여러분의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준비도 하고 계획도 세우고 노력도 하고 실력도 쌓고 ...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여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믿음만을 바라지 마시고 세상에서 인정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both sides now” 믿음은 승리이기도 하고 고난이기도 합니다. 능력이기도 하고 실패이기도 합니다. 기적이기도 하고 일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한 면만을 보는 것은 믿음을 자칫 오해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우리의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때에는 더욱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아무쪼록 믿음과 현실을 함께 보시고, 엄현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시는 믿음의 사람들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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