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제사장 2
계 1:4~6
2021.06.18.
우리는 지난 시간에 요한의 첫 번째 인사말 내용인 왕과 제사장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 첫 번째 인사말을 왕과 제사장으로 바꾸어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요한은 이렇게 당시 박해와 현실 앞에 두려워하는 초라한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말씀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이 말씀을 가지고 어떻게 살기를 원하실까요?
첫째,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적인 모습에서 왕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네,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은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고 그렇게 무조건 믿고 살아라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죠. 예를 들어 자기가 공주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든지, 자기가 세상을 구원할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든지 하는 것이죠. 그런 사람들처럼 현실을 착각하고 자기 혼자 왕이라고 믿고 살자는 그런 말씀은 아닙니다. 그건 사이비한 신앙이죠.
제가 드리려는 말씀은 그것을 바라보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영적인 선물과 새로운 신분을 우리의 초라한 현실 속에서도 믿음으로 바라보자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왕이라고 하는 그 영적인 모습을 내 현실 속에서 바르게 적용하며 살자는 의미입니다.
왕은 권위가 있죠. 품격이 있고 기품이 있고 당당하죠. 무엇을 뒤에서 숨어서 하거나 비겁하거나 비굴하거나 비열하게 행동하지 않죠. 저는 지난주 문대통령이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 스페인 국왕과 왕비가 문대통령을 맞이하는 의전 장면을 생방송으로 지켜봤습니다. 기마대가 선두에 서서 문 대통령이 탄 차를 호위하는데, 그 차는 왕실 소유의 특별한 국왕 전용차였습니다. 왕궁의 광장에 들어서자, 기마대가 옆으로 비켜서고 그 차만 앞으로 나아가서 왕과 왕비 앞에 멈추었습니다. 문대통령이 차에서 내리자 스페인 국왕와 왕비가 최고의 예우를 하며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을 그렇게 환대해주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 매우 뿌듯했습니다.
왕의 모습이란 것이 그런 것이죠. 영광스럽고 영예롭죠. 함부로 말하거나 누군가를 깍아 내리거나 상스러운 행동을 하거나 그러지 않죠.
저는 예전에 대천덕 신부가 살아계실 때 강원도 태백에 있는 예수원을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예수원은 평평한 좋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곡에 있는 비탈진 땅에 있죠. 그런데 그 비탈진 땅에 몇 채의 건물을 정갈하게 잘 지어놓았습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엄숙한 분위기가 있죠. 이튿날 한낮에 밖에 나와 그 비탈에 지어진 건물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그 비탈진 건물 옆으로 작은 꽃들을 두세 송이씩 나란히 심어놓았습니다. 제가 듣기로 그 꽃은 대천덕 신부님의 사모인 현제인 여사가 심어놓은 것이라 했는데, 참 예뻤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니까, 이 비탈진 외진 땅을 이렇게 아름답게 가꾸시는구나... 네, 신앙은 그렇게 우리의 거친 현실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원로 중 한 분인 박영선 목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서울 남포교회를 오랫동안 섬기시고, 책도 많이 쓰시고, 그 교단에서도 존경 받고 큰 영향력이 있는 분입니다. 제가 그분이 쓴 로마서관련 책을 보았는데, 그분은 다른 목사님들이 말하지 않는 좀 독특한 말씀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로마서를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얼마나 깊이 일하시는지... 그런 큰 구원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영광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많은 목사님들도 하시는 말씀이죠. 그런데 그 다음 말씀이 독특했습니다. “그러니 명예롭게 사십시오” 그분은 이 말을 책에서 여러 차례 반복하셨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은 결국 하나입니다. 박해받는 그때의 두려운 현실에서도, 부조리한 이 시대의 가난하고 답답한 현실에서도, 거친 땅 외진 곳에서의 소외된 현실에서도, 우리는 당당하게 품위있게 아름답게 명예롭게 영적인 왕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사회적 지위가 높고 낮고를 떠나서, 무슨 일을 하든지 어디서 살든지 누구 앞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교통법규 같은 것도 웬만하면 다 지키고 사시길 바랍니다. 새치기 하거나 빨간 불인데 건너가고 그러지 마시길 바랍니다. 웬만하면 양보하고 그렇게 운전하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왕으로서 살아가는 것... 이건 현실을 착각하는 것이 아니죠.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도 아닙니다. 현실 속에서 더 진정한 미래의 현실을 지금 여기서 추구하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과 현실 속에서 당당하고 기품있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빕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적인 모습에서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사장의 가장 두드러진 모습이 무엇일까요? 네, 그것은 거룩함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제사장이 어떻게 세워지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나와 있죠.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가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출 40:13)
우리는 그런 말씀을 보면 제사장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백성 중에 구별하여 세우신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으로 제사장이라는 의미는 우리가 삶과 현실에서 그렇게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왕의 모습과 또 다른 모습입니다. 깨끗하고 구별되고 높고 거룩한 모습... 그래서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모습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런 영적인 모습이 있으시길 빕니다.
또 제사장의 특징은 제사장이란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맡았다라는 사실입니다. “또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신31:9) 아시는 바와 같이, 언약궤를 메고 운반하는 것도 다 제사장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율법과 언약궤를 수호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또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하라는 의미이죠.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그런 역할을 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스라엘 역사 속에 제사장은 결국 타락해 버리고 말죠. 하나님을 위한 제사장이 아니라,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세상 종교의 제사장들이 되어 버리죠. 그래서 하나님은 말라기서에서 이렇게 제사장들을 책망하십니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말2:7)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말씀을 통해서 제사장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 말씀과 뜻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만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들이 세상 속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가족 안에서 그런 하나님의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무조건 하나님을 말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올바른 삶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현실과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성경적으로 신앙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모습이 오늘날의 제사장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전도이죠.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주는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가 왕이라는 사실, 제사장이라는 사실... 비록 요한의 인사말 중에 잠시 스치는 말씀이지만, 여기에 참 큰 뜻이 담겨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성도님들은 이런 영적인 자존감과 정체성을 깊이 가지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