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의 상징
계 1:1~3
2021.06.04.
요한계시록은 대부분 요한이 본 환상과 요한이 들은 말씀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그와 같은 시각적인 방법과 청각적인 방법으로 요한에게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요한은 환상 속에서 많은 그림과 장면들을 보았습니다. 요한이 처음 눈으로 본 것은 일곱 촛대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촛대 사이에 거니시는 인자 같은 이를 보았습니다. 4장 이후 요한은 하늘 문을 보고 하늘 보좌를 보고 또 거기에 있는 수많은 모습들을 봅니다. 5장에서는 두루마리 책도 보죠. 이처럼 요한계시록에는 요한의 눈을 통해 본 수많은 시각적 환상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시각적인 내용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해석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많은 분들이 요한의 환상을 문자 그대로 이해합니다. 즉 환상을 사실적인 모습이라 이해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신다고 하니, 하나님이 실제로 그렇게 앉아 계시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또 그분의 오른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다고 하니, 실제로 그 두루마리 책이 하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떨어진다고 하니, 실제로 마지막 날에 그런 재앙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불가피하게 상징으로 볼 수밖에 없는 부분만 상징으로 보고, 나머지는 사실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이와 같이 사실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시를 읽을 때 시의 묘사를 사실 그대로 이해하지 않죠. 이런 시가 있습니다. “그대의 슬픔이 어느 간이역의 코스모스로 피어난다면, 나는 그곳에 푸른 하늘을 드리우고 밤새도록 별빛의 숨소릴 내려놓을 것이다...” 이 표현을 사실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요한계시록도 그렇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의 장르는 예언과 묵시와 편지가 혼합된 것인데, 그중 묵시 비중이 큽니다. 계시는 하나님의 계시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지만, 묵시라는 장르 안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의 장르가 묵시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그 표현이나 묘사가 기본적으로 비유적이고 상징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요한계시록의 특성은, 단순히 학자들이 요한계시록을 학문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자체가 스스로 말씀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1:1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시작하는 1:1에는 두 개의 주목할 만한 동사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에 나오는 ‘보이신다’는 동사이고, 다른 하나는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에 나오는 ‘알게 하신다’는 동사입니다.
두 번째 ‘알게 하신다’라는 동사를 먼저 살펴보면, 이것은 헬라어로 ‘세마이노’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2가지인데, ‘알게 하다’라는 일반적인 의미가 있고 아울러 ‘상징으로 나타내다’, ‘상징으로 보여주다’, ‘상징으로 의미하다’라는 보다 전문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후자의 의미로 쓰일 때가 더 많습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모두 5번 나오는데, 3번이 ‘상징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또 이 단어는 많은 묵시 문서에서도 ‘상징하다’는 의미로 흔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세마이노’와 함께 1:1에 쓰인 다른 단어는 ‘보여주다’라는 ‘데이크뉘미’입니다. “하나님이...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시를 환상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요한계시록 안에서 7번 나오는데 모두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세마이노’와 같은 의미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1에 나오는 이 두 단어를 통해 요한계시록이 어떤 책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인 요한계시록은 환상의 책이고 상징의 책인 것입니다.
요한에게 보인 환상은 상징을 담고 있고, 상징은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상징이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상징이 하나님의 뜻을 비유로 나타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요한계시록은 환상의 책이고 상징의 책이고 비유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꼭 잊지 말아야 할 내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환상과 상징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해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 대표적인 분들이 바로 세대주의입니다. 그분들은 요한계시록 전체를 그렇게 문자적으로 읽고 최후 종말의 순서를 다음과 같이 만들었습니다.
1) 이스라엘 민족의 땅의 회복, 2) 교회의 휴거, 3) 7년간의 환난, 4) 적그리스도의 통치, 5) 예루살렘을 차지하려는 악한 나라들의 모임, 6) 그리스도의 재림과 악한 나라들의 멸망, 7) 천년 왕국, 8) 천년 왕국 마지막에 사단의 최후의 반역 및 아마겟돈 전쟁, 9) 새 하늘과 새 땅 및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
상징과 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요한계시록을 쭉 읽으면 이런 순서가 나오죠. 이런 종말의 시간표는 우리 교회와 신자들에게 익숙합니다. 이같은 문자적 세대주의 해석이 한국교회 초기부터 들어왔고, 계속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비록 과거엔 대중적인 해석이었지만, 지금은 낡은 해석이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해 문자적인 해석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요한계시록을 잘못 해석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방금 소개한 세대주의 해석이 그 예입니다. 그분들은 요한계시록을 문자적으로 보고 나름의 종말의 시간표를 만들었지만, 그 결과는 한 마디로 불건전한 종말론입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그 시간표를 바라보면서 ‘지금은 종말의 어느 때 즈음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종말의 어느 때에 해당한다’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신앙과 삶을 불안하게 하고 종말론에 치우치게 합니다. 나아가 이런 방식을 이단이 그대로 모방하여 많은 사람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해 문자적인 해석을 해선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유치한 해석을 낳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7에는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정말 최후의 날에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이 의미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것이 낯설고 유치해 보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이 ‘구름’과 같이 문자 그대로 해석할 때 이상하고 유치한 내용들이 많습니다. 1:16에 예수님의 입에서 날선 검이 나온다는 말씀이 있죠. 만약 예수님의 실제 모습이 이 표현 그대로라면 얼마나 이상할까요? 5장에 가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죽임당한 어린양이 나오는데, 그 어린 양은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습니다. 그 모습이 실제라면 그 어린양의 모습은 정말 기괴하고 이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말씀 및 상징들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문자적인 이해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 요한계시록의 환상과 상징은 문자를 넘어 바르게 해석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상징은 항상 해석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정은 기독교 바깥의 신탁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탁은 상징적인 말로 주어지기 마련입니다.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징은 해석을 필요로 하기에, 요한계시록 중간 중간에는 해석 천사가 나옵니다.
여러분,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라는 가곡을 아시죠? 이 가사도 바로 상징입니다. 호수는 시인의 자기 마음을 상징하죠. 그런데 그 상징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왜 자기 마음을 호수에 비유할까요? ‘자기 마음이 넓다’, 혹은 ‘자기 마음이 호수처럼 깨끗하다’라는 걸 의미할까요? 바른 해석은 무엇일까요?
그런데 그것은 노래의 다음 가사에 잘 나옵니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 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이 호수라는 것은 자기 마음이 넓다거나 깨끗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향한 전적인 사랑과 헌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노래의 상징에 대한 바른 해석입니다.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고도의 상징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바른 해석이 꼭 필요합니다.
앞서 우리는 1:7 말씀의 구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그 구름은 진짜 구름일까요? 아니면 상징적인 구름일까요? 그런데 살펴보면, 1:7은 요한이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다니엘서 7:13을 암시하고 인용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 7:13을 살펴보면, 그 말씀은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적 왕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다니엘서 말씀을 인용하는 계1:7은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오심만이 아니라 현재적 오심도 말하는 포괄적인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그 구름이란 결코 실제 구름일 수 없습니다. 상징이죠. 그 구름은 하늘과 땅이라는 두 영역을 연결하는 수단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 날에 꼭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믿으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날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오실지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1:7이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요한계시록의 많은 상징들에 대해서는 본문을 진행해 나가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요한계시록 말씀을 기본적으로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그 말씀들을 바르게 해석하여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요한계시록은 미래를 엿보는 비밀의 책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역사하는 살아있는 말씀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이같이 상징을 해석하는 시각을 꼭 가지고 읽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