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막 9:14~24
2024.09.27.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한 아이를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마태와 누가도 이 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와 누가에는 이 사건에서 아이의 아버지가 나오지 않고, 다만 제자들의 실패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마가복음만 이 사건에서 아이의 아버지를 말하는데, 그러면서 그 아버지를 통해 우리에게 귀한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이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변화산에 올랐다가 내려오셨습니다. 그런데 내려오셨을 때 남은 제자들에게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귀신 들린 아들을 데려왔는데 제자들이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큰 무리가 모여 있는데, 귀신은 그대로 있고 제자들은 서기관들과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아마도 예수님의 마음을 매우 불편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이것은 예수님의 한탄과 책망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을 포함하여 거기 있는 서기관들, 사람들,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 모두가 믿음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한탄과 책망 속에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오자,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이 어릴 때부터 그랬다고 말하고, 귀신이 아들을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그런데 이 말이 예수님의 불편한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예수님의 말씀이 무척 단호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래서 예수님께 소리쳤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이상이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거두절미하고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이 말씀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예수님의 말씀은 무척 자주 설교되는 인기 있는 말씀입니다. 많은 설교가 이 말씀을 가지고 믿음을 강조하면서 믿으면 다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 됩니까? 다 이루어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안 되는 일은 우리 현실 가운데 많이 존재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믿음을 매우 강하게 말씀하시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믿음에 대해 매우 강하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11장에도 나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그런데 우리는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읽을 때, 그때의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11장에서 그렇게 강하게 믿음을 말씀하신 이유는 이제 앞으로 성전이 없어지는 새로운 시대와 비상 상황이 오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성전을 통해 신앙을 지켜왔습니다. 모세의 성막이 다윗과 솔로몬 성전이 되고, 포로 귀환 후에는 스룹바벨 성전을 거쳐 지금 헤롯 성전이 세워져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이 보이는 성전을 없애실 것인데, 그러면 그들은 이제 어떻게 신앙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런 강력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9장에서 예수님께서 이 아버지에게 하신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상실된 시대 가운데 귀신은 날뛰고 있고 제자들마저 속수무책입니다. 특히 그 아이의 아버지는 오랜 시간 귀신들린 아들로 인해 좌절과 절망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믿음은 사라지고 가혹한 악의 현실만이 온통 그 아이의 아버지를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영적인 눈으로 보셨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지금 거의 숨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죽어가는 사람을 앞에 둔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셔야 할까요?
점잖게 이야기할 수 없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인간의 믿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수준을 말씀해 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씀이 이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몇 년 전 한 방송에서 배우 이미영씨 사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전남편인 가수 전영록씨와 이혼하고 혼자 힘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믿었던 사람에게 큰 사기를 당하고, 연이어 사업에 실패하고, 우울증에 걸리고, 은둔 생활을 하고, 자살을 시도하고... 그런 가슴 아픈 이야기를 말했습니다.
몸이 완전히 마르고 귀신도 보이고... 삶을 포기하여 그야말로 죽음의 문턱 까지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배우 김수미 씨가 이런 말을 자기에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힘들더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 자식 생각만 해라. 네가 휘청거리면 안 돼. 새끼 생각만 해” 그래서 그분이 김수미 씨의 그 호통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서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아이 아버지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예수님은 그 아이 아버지가 이렇게 말할 때 절망의 눈빛을 보셨을 것입니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귀신과 악에게 유린당하는 절망적인 상황... 그 아버지는 매일 매일이 고통이고 절망이었습니다. 믿고 찾아왔던 제자들도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니 그 아버지에게 무슨 믿음이 남아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모든 상황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강력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말씀을 그런 상황을 먼저 이해하면서, 이 말씀을 무분별하게 일반화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믿으면 다 되는 것 아닙니다. 믿어도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믿어도 잘 준비해야 합니다.
또 아무리 믿고 노력하고 준비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도 무조건 쉽게 기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내 믿음 대로 다 되면 그건 도깨비 방망이이고 우상이지, 신앙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의 건전한 믿음의 삶은 하나님의 뜻과 이 땅의 현실과 우리의 노력과 원수의 훼방과 때와 시기 등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지는 종합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은 궁극적으로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이 말씀을 상황과 대상에 대한 이해 없이 무조건 ‘나 중심’으로 믿으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 아이 아버지와 같은 절망에 빠진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이 아버지와 같은 특별한 상황에 처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그때에는 이 말씀을 믿어도 되고, 또 믿어야 합니다.
정말 절망적이고 비참하고 어렵고 힘들고 숨이 넘어가는 상황이 오면... 그때가 되면, 이 말씀을 100% 아멘으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말씀을 선포하시고 외치시고, 또 그대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오직 주님을 믿으시고... “믿사오니 제 앞에 있는 이 불가능한 산 같은 문제를 넘어가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특별한 말씀입니다. 무분별하게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특별한 어려움의 순간에 이 말씀은 천금 같은 말씀이 될 줄 믿습니다.